1 새롭게 뭉친 무리
나무 그늘에서 걸어 나온 스톰은 멈춰 서서 등과 다리를 쭉 폈다. 그리고 태양의 개가 내리쬐는 아침 햇볕을 받으며 기분 좋게 땅바닥을 발톱으로 긁었다. 햇볕은 매끈한 스톰의 등에도, 살랑살랑 움직이는 풀잎 위에도 따뜻하게 쏟아져 내렸다. 해가 나니까 토끼, 쥐, 다람쥐 냄새도 더 진하게 느껴졌다. 스톰은 코를 킁킁대며 부드러운 산들바람 냄새를 맡았다. 사냥견들에게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나뭇잎이 자라나는 눈부신 계절이 되자 스톰의 마음도 희망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처음으로 사냥을 도맡아 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았고, 무리의 베타인 럭키가 변함없이 자신을 믿어 주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럭키는 늘 그랬지.’
스톰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때 고독한 개였던 금빛 털의 베타에게서 받은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스톰은 고개를 돌려 자기가 이끄는 사냥견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최고의 개들이 모여 있어.’
스톰은 가슴이 뿌듯했다. 오랫동안 스위트의 무리에 속해 있던 스냅은 늘 뛰어난 사냥 솜씨를 자랑했다. 미키는 원래 줄에 묶인 개였지만 솜씨 좋은 야생 개들에게서 사냥감 쫓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블레이드의 무리였던 사나운 개 애로우는 집중력, 절제력, 정확도가 굉장히 뛰어났다. 그리고 미친 개 테러의 부하였던 위스퍼는…… 뭐랄까, 과거엔 자기 알파의 비위를 맞추면서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썼지만, 지금은 테러의 끔찍한 위협에도 꿈쩍 않을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었지만, 스톰이 보기엔 최고였다. 스톰이 태어나기 전, 땅의 개는 큰 으르렁거림을 일으켰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다양한 무리의 개들이 하나로 뭉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미키와 스냅 같은 개들은 굉장히 특이한 배경을 갖게 되었다. 스위트의 무리였던 스냅은 이전에 늑대 개의 무리이기도 했다. 또한 미키는 원래 긴 발과 함께 지냈었지만, 큰 으르렁거림이 도시를 파괴하고 세상을 바꿔 놓는 바람에 모든 개들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덩달아 야생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어쨌든 이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모든 개들이 함께 힘을 합치게 되었다. 모두 새롭게 뭉친 무리를 위해 자신의 힘과 솜씨를 쏟아붓고 있었다.
스톰은 이전에는 럭키가 왜 그렇게 큰 으르렁거림 이야기를 강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들의 대결전’이라고 불린 어마어마한 전투를 직접 치르고 나자, 으르렁거림이라는 재난이 럭키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뒤바뀔 정도의 충격을 겪은 뒤 살아남게 되면, 그 기억이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발 딛고 있는 땅, 코에서 느껴지는 냄새, 귀에 들려오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이 온통 위협적이거나 무섭게 보이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전에 없던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얼음 같은 바람의 계절 동안 사냥감은 앙상하게 야위었고 잡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나무에서는 새로운 싹이 자라나고 나뭇잎이 자라나 덤불이 풍성해졌고 풀밭은 새로운 생명이 가득한 초록빛으로 변모했다. 스톰은 오늘 사냥을 재빨리 성공적으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저 구멍을 파 봐.”
미키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스톰은 안절부절못하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미키와 스냅은 아침 내내 스톰에게 사냥에 대한 조언과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스톰도 다 컸고 오늘 사냥 책임자도 스톰인데, 눈치 없는 미키는 자꾸 스톰을 아기 취급했다.
“저기 말이야, 보여?”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농장 개 미키는 스톰이 이를 악물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저 언덕 너머 구멍 말이야.”
미키가 얕은 계곡 반대편, 자작나무 묘목에 둘러싸인 풀밭 속 구덩이를 주둥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뭔가 있을 것 같네요.”
스톰은 짜증을 꾹 참고 가까스로 대답했다.
“저기를 둘러싸고 사냥감이 튀어나오게 하는 거야. 바로 옆에 물이 흐르고 있으니, 저긴 토끼 굴 같군.”
미키가 계속 말했다.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미키.”
스톰이 매섭게 말했다.
미키는 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는 주둥이를 핥았다.
“내가 뭐 잘못 말했니, 스톰?”
“아니, 그게 아니라…….”
미키가 살짝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스톰은 말투를 누그러뜨리고 미키를 핥아 주었다.
“미안해요, 미키. 제가 너무 집중했나 봐요.”
미키는 그저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뿐이었다. 옛날에 속수무책으로 버려져 있던 스톰과 한배 형제 둘을 구해 준 것도 미키와 럭키였다. 미키는 늘 스톰을 보살펴 주었다.
‘하지만 나도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날 그냥 내버려 둬.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단 말이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