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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을 마시다

수은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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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86g | 140*210*20mm
ISBN13 9788993676273
ISBN10 899367627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여름 내내 블래키와 함께 온 들판을 쏘다녔다. 블래키는 내게 주변 세상의 새로운 기하학적 공간을 보여주었다. 엉겅퀴와 명아주가 제멋대로 자란 들판의 끝자락이나 자갈길, 울타리, 또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이 경계가 아닌, 빛과 소리, 그리고 기본적인 요소들로 구분되는 공간이었다. 블래키와 함께 나는 건초더미와 사과나무, 체리나무, 그리고 높이 쌓아 올린 브리즈블록 위를 오르는 방법을 배웠고, 블랙베리 덤불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석회암 구덩이와 말벌집, 그리고 곡물 밭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수렁과 덫을 멀리하는 방법도 배웠다.--- p.17

나는 비몽사몽인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솔잎이 자라나오고 신고 있는 부츠에서 나무딸기가 튀어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잠에서 깨자 방 안에서 숲 냄새가 났다. --- p.27

아버지는 제거한 내장을 테이블 밑에 있는 금속 양동이 안에 던져넣었다. 연분홍색 가죽과 뼈, 그리고 지방을 모두 빼앗긴 새는 신문지 위에 누워 있었다. --- p.30

성당 안은 마치 늪지대처럼 창포와 토사 향으로 가득했다. 나는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교구 신부님이 성령 강림에 대한 구절을 읽자, 배 모양의 설교단이 신부님과 함께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서 땅바닥으로 미끄러졌다. --- p.55

이 족제비 같은 의사는 어머니에게 책장 옆에 커다란 고무나무가 서 있는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진료실 안 가리개 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입고 있는 하얀색 가운으로 청진기의 귀꽂이를 닦은 후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가까워서 그의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더 가까이 오더니 마치 점토 덩이를 건네듯 그의 성기를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있는 힘껏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 p.56

정오쯤에는 금속 머그잔에 수중 전열기를 넣고 물을 끓였다. 그리고 끓인 물에 온도계를 넣었다. 수은이 들어 있는 용기가 터지면서 은색 구슬이 침구 위로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들을 모았다. 잠시 망설여졌다. 하지만 크비에치엔 의사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알약을 먹듯이 은색 구슬을 삼키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자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온 내장을 게워내려는 듯 심하게 구토가 나왔다. 결국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에게 수은을 삼켰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 p.57

잠시 후에 발가벗은 낫카가 욕조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꺼끌꺼끌하게 면도한 그녀의 사타구니가 내 허벅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진홍색 젖꼭지에 균형 잡히지 않은 몸이 물속에서 마치 배 부분이 길게 늘어난 딱정벌레처럼 보였다. --- p.118

우리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둥그런 우물 안에 앉았다. 큰 라즈보스가 꿀과 색이 비슷한 끈적끈적한 액체를 비닐봉지 안으로 떨어뜨렸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봉지를 들이마셨다. 눈앞이 안 보이는 두터운 침묵 속에서 핏줄이 펄떡이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하얀색 해파리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납작해지는 비닐봉지 밑으로 물고기 떼가 점점 많아지더니 지느러미로 내 코와 목을 간지럽혔다. 나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방수 재킷을 덮고 누워 있었다.
큰 라즈보스는 내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나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가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을 때 나는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는 부드럽게 나를 저지했다. --- p.127

8월이 끝나갈 무렵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갔다. 그는 그린 호수 가장자리에 낚싯대를 펼쳐놓았다. 자꾸만 잠이 쏟아졌는데, 이상하게도 왼쪽 팔에 감각이 없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잠에서 깼다. 폴리폼을 깎아 만든 선명한 색깔의 낚시찌가 물 위 에서 일렁였지만, 더 이상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 정오도 안 된 시간, 첫 잉어가 미끼를 물기도 전에 50세가 된 소년은 숨을 거두었다.
--- p.149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학의 연금술.”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시인 비올레타 그레그의 첫 데뷔작 속 주인공 비올카는 1980년대 폴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보낸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마을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오가는 유쾌하고 엉뚱한 수다, 소문으로 그쳤던 교황의 마을 방문, 굳게 잠긴 재봉사의 은밀한 방 등 그녀가 간직해온 추억들을 명확하고 강렬하며 독특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강한 남성들의 약탈적인 모습도 담아낸다. 비올레타 그레그의 데뷔작은 누구나 자라면서 겪는 이상하고 낯선 경험들에 시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글귀로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는다.
- 『뉴욕타임스』
“따뜻하면서도 반항기 가득한 유머가 담겨있으며 이제는 사라진 시골의 삶을 애도하는 한편 폴란드 역사의 어두웠던 시기를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수은을 마시다는 저항과 개성을 그 뼈대로 삼고 있다.”
- 타임스 문예 부록
“이 책을 미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과도 같다. 그레그의 능숙한 첫 소설은 매력적이기도 하고 유혹적이기도 하며 때로는 사악하기까지 하다.”
- 커커스 리뷰스(별점 리뷰)
“그레그의 소설 데뷔작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문체가 적절히 섞여 있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은 마치 뜨거운 여름날 야외에서 수박을 먹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감각적인 디테일이 하나하나 살아있다.”
- 북 리스트(별점 리뷰)
“가슴 아프면서도 생기 넘치는 그레그의 소설은 매혹적이고 감각적인 디테일이 풍부하게 살아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영국에서 거주하는 폴란드 출신의 시인 비올레타 그레그가 처음 쓴 이 소설은 황홀할 정도로 함축적이며 보석처럼 빛난다. 후안 파블로 비야로보스의 토끼굴 아래로, 유리 헤레라의 세상의 종말 전에 나타나는 징후들, 그리고 하미드 이스마일로브의 죽은 호수를 비롯해 최근 들어 최고로 손꼽히는 번역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 가디언
“비올레타 그레그의 첫 소설은 비현실적이고 혼란스러운 활기로 가득하다. 수상 경력이 있는 시인 그레그는 서정적인 문체를 통해 비올라의 삶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위험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 파이낸셜 타임스
“수은을 마시다는 매혹적인 동시에 사악하다. 자서전이기도 하면서 동화이기도 한 이 소설은 비올카의 매력만큼이나 충분히 황홀하다.”
- 아이리시 뉴스
“그레그의 글은 빈틈이 없으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그녀의 날카로운 감성이 디테일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점차 어린 비올카가 마치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활기차고 재치 있으며 호기심이 많은 그녀가 믿음과 가족, 섹스, 그리고 정치로 뒤얽힌 어두운 숲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이 마치 우울한 동화를 보는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차갑고 투명한 술을 연속으로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실 때마다 조금씩 더 취하면서 말이다.”
- 사라 페리 (에식스의 뱀의 저자)
“이상하면서도 익숙한 이 중편 소설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자서전과 동화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하는 이 소설은 마법과 위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 사라 봄 (스필 시머 팔터 위더의 저자)
“때로는 사악하고 때로는 사랑스러운, 그 외에도 더 많은 매력이 담겨있는 이 이상한 책을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다.”
- 에비 와일드 (노래하는 모든 새들의 저자)
“이 책은 마치 추억처럼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다.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나 문틈 사이로 잠깐 마주친 광경처럼 말이다. 들으면 안 될 것 같거나 고개를 돌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 데이지 존슨 (펀의 저자)
“작은 보석처럼 빛나는 책이다. 신선함과 정직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비올레타 그레그의 글은 엘레나 페렌테와 토베 얀손과 많이 닮아있다.”
- 캐리스 대이비스 (갤런 파이크의 구원의 저자)
“수은을 마시다는 아름다움과 정치, 도덕, 폭력, 그리고 희망의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삶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로완 히사요 뷰캐넌 (당신처럼 무해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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