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2월, 26세의 어린 나이에 장애인교회와 선교회를 설립하면서 감격과 설렘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첫 설교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연이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원의 임명장을 받은 뒤, 이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라 여기며 30년 동안 오직 장애인들과 이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과 고통을 함께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의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목회자, 사회복지사, 국가인권위원의 직책이 모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십자가 사랑의 사명임을 고백합니다.
설립 초기인 198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5·18 사태 등 사회적으로 엄청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기에 장애인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춥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울었던 나날과 사회적 냉대와 멸시는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사역을 회고하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고통 속에서도 신도들과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행복했던 시절을 각각 1, 2부에,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던 기막힌 기적들과 앞으로의 희망을 3, 4부로 나누어, 4년 전에 출간한 『하나님이 보이는 거울』 증보판으로 엮었습니다.
소아마비라는 장애와 극한 가난 때문에 꺾일 수밖에 없었던 나를 지금까지 세밀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사랑해 주고 천사가 되어 준 많은 후원자들, 함께 울고 웃으면서 동역해 준 성도들, 믿고 따라 준 장애인 천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서문 중에서
천사가 된 불신 남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우리의 기도를 이렇게 빠른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만 눈물을 줄줄 쏟고 말았다.
한참 동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울기만 하다가 간신히 눈물을 닦고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현실과 쌀이 떨어져 철야하며 간절히 기도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계속 눈물이 쏟아져서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하나님이 당신을 천사로 사용하셔서 우리의 양식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묵묵히 듣고 있던 그가 갑자기 휙 뒤로 돌더니 부인을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여보!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데, 그걸 모르고내가 당신을 핍박하였소. 너무 잘못했소. 여보, 용서해 주시오.”
그때부터 부부는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특히 부인 집사님은 그토록 큰 핍박을 하다가 한순간 변해서 회개하는 남편을 보며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보며 나도 덩달아 울고 말았다.
그 후 그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장애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천사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또한 문방구 계통의 유통업을 하며 많은 학용품을 신망애 장애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아, 하나님의 방법은 도무지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짐작할 수가 없다.
교통사고에서 피어난 꽃
3일째 되던 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아버님 혼자 병실을 지키고 계셨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치고 나자 아버님이 “경찰을 통해 사고 경위를 들었습니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이더군요” 하시며 악수를 청했다. 얼떨떨한 상태에서 악수를 나누고 나자 아버님이 이것저것 물으셨다.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몇 명이며,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특히 고대병원으로 보낸 어린이는 상태가 어떤지, 치료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꼼꼼하게 물으셨다. 마치 후원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이라 하늘이 도왔다고 하시며 덕분에 자기 아이도 살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가 매고 있던 가방을 보여 주셨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사주었다는 가방은 걸레처럼 너덜해져 있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책들은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땅에 떨어질 때 가방을 깔고 썰매를 탄 덕에 아이는 다치지 않고 가방만 상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후에 아들을 퇴원시켰다. 경찰에 잘 이야기해 놓았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며 좋은 일 열심히 하라고 격려까지 해 주셨다. 부랴부랴 병원비와 위로금 정도를 준비해 다시 병원을 찾은 나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부모님 손에 전달해 드렸다. 봉투를 건네자 극구 사양하시면서 장애인 아이 치료비로 쓰라고 돌려주셨다. 퇴원을 하면서 나누었던 굳은 악수와 따뜻한 미소, 가슴 벅찬 격려와 뿌듯함을 선물로 더해 주신 그분의 뜨거운 사랑이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경미한 사고라도 나면 몇 개월씩 누워 합의금을 요구하는 시대에 정말 그분은 천사가 아닐 수 없다. 사망 사고가 될 수도 있었고, 횡단보도였기에 구속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이 책가방을 통해 에벤에셀의 능력을 보여 주신 것은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데 크나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자상하고 아량 있는 좋은 분을 만나게 하셔서 교통사고를 통해 사랑의 꽃을 선물로 받게 하신 멋진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