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성 모
성경은 진리의 책이다. 진리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영원한 진리를 만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경은 해석의 책이다. 진리는 해석되어야 하고 현실에 적용될 때 의미를 획득한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그러므로 성경해석과 적용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또한 영감의 책이다. 성경 각권의 저자들이 영감을 받은 것을 기록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이 성경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변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1620년 국가종교의 탄압을 피해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청교도들은 그들 자신을 영국 국왕의 종교탄압과 압제를 피해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온 출애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였다. 그들에게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같은 영국의 국왕들은 애굽의 바로오였다. 그들은 현대판 바로오의 압제를 피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신세계를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침내 찾은 것이다.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게 영국 탈출과 아메리카 대륙진출이 출애굽의 성경 이야기를 자신들의 삶에 적용한 사건이었다면 나는 동일한 성경이야기를 중독으로부터의 탈출과 회복에 적용한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중독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중독자들의 삶의 모습 그대로이며, 가나안은 중독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자유인들이 들어가는 회복의 땅인 것이다.(출애굽 이야기를 실제의 삶에 영감 있게 적용한 사례들이 어찌 이들 사례뿐일까 만은)
이 책은 철저하게 성경을 통해, 성경 속에서 중독으로부터의 치유와 회복의 길을 찾고자 중독자들과 함께 성경을 묵상하고 해석하며 치유의 실제에 적용해 온 17년 중독치유사역의 결과물이다. 나의 17년에 걸친 사역경험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형태의 해악적 중독을 퇴치하고 중독에 걸린 이들을 해독시키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다! 라고 말한다. 왜인가? 성경에는 ‘구원과 치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사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며, 그 ‘구원과 치유’를 이루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공을 초월해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며, 기적 같은 ‘구원과 치유’의 역사가 이곳 라파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듯이 오늘날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음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먼 옛날의 신화와 전설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살아 있는 오늘의 이야기인 것이다.
‘성경과 중독’이 정말 깊은 관계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려면 중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때는 알코올중독자였다가 믿음을 통해 회복의 길에 들어선 회복중인 중독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내린 정의를 주목하여 보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상숭배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주 일어났던 얼마나 소름끼치는 정신적 상태였던가! 우리는 사람들을, 감정을, 물건을, 돈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숭배해 오지 않았던가!”(『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71쪽)
‘성경과 중독’에 대한 우리의 논의와 고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자신들 스스로를 중독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사람, 감정, 물건, 돈,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신으로 숭배해 왔다고 고백하는 이 사람들을 치유하는 길은 무엇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그들이 사로잡혀 있거나 묶여 있는 우상숭배의 정신상태(그 상태를 성경은 죄라고 정의한다)로부터 그들을 구출해주거나 풀어주는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이 건강에 대해 “참된 건강은 살고자 하는 힘, 고통을 겪는 힘,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힘이다. 건강은 내 몸의 상태가 아니라 그것은 내 몸의 다양한 상태들을 극복하기 위한 영혼의 힘이다”라고 정의했던 것처럼 중독의 치유란 우상숭배에 찌든 병든 영혼의 상태를 건강한 영혼의 상태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성경이 이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은 중독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오늘날 중독에 걸린 이들을 누구에게로 데려가 치료해야 할까? 그들을 나에게 데려오라 말하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거나 심리학자, 상담가일 것이다. 그들은 중독을 뇌의 질병으로 보기도 하고 정신장애(Mental Disorder), 즉 마음의 병으로 보는데 이 역시 중독현상에 대한 적확한 진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나는 중독을 정신장애, 마음의 병이라는 관점을 확고히 견지하는 가운데 이들 영역(정신분석학, 심리학, 상담학 등)에서 구축한 치유성과들을 성경의 관점에서 통합 적용하려는 노력을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다.(성경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마음에 관한 책이 분명하다)
중독의 치유와 관련된 수많은 성경구절이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구절을 고르라면 나는 에베소서 4장 22-24절 말씀을 꼽는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렇다.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이란 욕망에 따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중독된 것을 추구하며 살던, 썩어 없어질 낡은 습관을 따르던 삶, 곧 옛 사람의 삶에서 심령이 새롭게 됨으로 이제 더 이상 헛된 욕망을 따르지 아니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영감 받아 쓰여 졌고, 수천 년 동안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이 성경보다 중독자의 심령을 변화시켜 거듭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더 좋은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중독은 중독된 그것에 묶이는 것이다.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이다. 알코올, 도박, 성, 게임, 마약 등등에 묶이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이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자유와 해방의 노정을 보여주는 모세오경은 그대로가 중독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하게 되는 회복과 치유의 여정에 다름 아니다. 구약의 선지서들은 우상숭배와 온갖 탐욕으로 타락하여 계명을 어기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들을 향한 예언자들의 통렬한 고발인 바, 중독을 조장하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여기에 빠져 허덕이는 개인들을 향한 준엄한 경고의 말씀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의 지혜문학서들을 통해서 우리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참으로 요긴하고 다양한 지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독치유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며, 성령에 따라 사는 제자들의 삶,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며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삶, 심령의 변화를 받아 거듭난 자의 삶, 곧 거룩과 성화에 이르는 삶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중독을 치유하여 회복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니 그것이 가장 확실한 치유와 회복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과 성화’야말로 중독으로부터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중핵적 개념인 것이며 그 중심에 성경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까닭인 것이다.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중독으로부터 회복의 길을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적절한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성경을 해석하며 적용하는데 있어서 그릇되거나 어긋남이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있으나 이 책을 내보냄은 중독을 퇴치하기 위한 긴박하고 시급한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의 발로에서 임을 전하고 싶다. 거룩한 성경을 중독치유와 회복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성경해석의 기본원리인 ‘성경의 충족성과 명료성’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부족한 필자에게 있음을 밝힌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지수리 회복의 땅에서 …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