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사는 약 8000만 한민족이 삼팔선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된 나라를 속히 이뤄내 평화롭게 살기 위해 예수의 삶과 교훈을 최고의 가치로 믿고 따르는 한국 기독교인이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은, 약 50년 동안 이른바 주체사상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거부했거나 또는 기독교를 전혀 접하지 못했던 이북 동포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체계적인 서술, 즉 통일 후의 기독교 신학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인의 삶, 신앙, 신학으로는 통일 후 이북 동포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북한 동포가 같이 만날 날을 대비해 화해신학의 서설이라도 장만하고자 이 책을 쓴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랑이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라는 격언에서 보듯이 우선 한국 기독교인이 알아야 할 것은 이북 민중의 머리에 가득 차 있는 주체사상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른바 “김일성주의”라고도 불리는 이북의 주체사상은 사회주의 이북의 핵심 사상인데, 그 사상을 이해하려면 공산주의 사상의 뿌리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상부터 알아야 한다. 필자는 본서에서 공산주의 시조인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기독교를 왜 그리고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먼저 살피고, 다음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정치와 경제 전반에 접목시킨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의 사상을 알아보며, 마지막으로 김일성과 그의 추종자들의 기독교 비판을 살피려 한다. --- pp.5-6, 서문
왜 이북에서 기독교가 전멸되었는가? 김일성 정권이 기독교를 철저하게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왜 충돌했는가? 마르크스주의가 이북을 점령하던 1945년경 이북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제 해방 직후 김일성 정권을 세운 소련의 레닌의 공산주의 정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구체적으로 논하겠지만 레닌이 김일성 정권을 세우면서 이북의 민주 세력인 기독교의 박멸은 예고되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처음부터 기독교 지도자들을 하나 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 p.21, 제1장
……이북의 종교비판은 휴머니즘적 무신론에 근거했다. 어떠한 휴머니즘인가? 과연 그들이 종교를 거부함으로써 얻었다고 자부하는, 또는 얻기를 노력하는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먼저 ‘휴머니즘’이란 말부터 정의 내려야겠다. 그 개념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철학, 르네상스, 자연주의, 계몽주의의 경험론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의 휴머니즘이 있다. 또 통속적인 휴머니즘이라면 이웃에 대한 선한 의지, 선한 행위와 같은 느낌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논구의 목적을 위해 휴머니즘을 다음과 같은 입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적극적인 인간의 가치를 확인하는 입장이다. 그런 입장에서 사람이 존경받을만한 고귀한 존재로 다뤄져야 한다. 이런 휴머니즘의 개념으로 이북의 휴머니즘을 깊이 조명해보려고 한다. --- p.103, 제2장
‘메시아주의’란 낱말을 목적을 지향하는 진술이 포함된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메시아주의는 다음의 선언을 내포한다. 즉, 인간이 오랫동안 소망하고 노력해왔던 어떤 목적을 인간 스스로가 달성할 수 있다는 선언을 내포한다. 인간의 숙원인 모든 사회적 억압의 완전한 제거와 또한 인간이 그의 실존 안에서의 실제 모습과 그가 그의 본질에서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 사이의 구별의 종국적 제거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선언! 여기에 ‘메시아주의’의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위대한 임무를 추진하고 선동하는 행위자는 반드시 하나님, 즉 초월자에 의해 임무를 명령받은 신적 메시아를 일컫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간이 세운 계획이나 실천을 가속시키고 추진하는 행위자를 일컫는다. 즉, 인간이 인간 자신의 메시아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새 인간’이 자기 자신의 메시아일 수 있다. 메시아의 개념이 이토록 신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고 매우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p.173-174, 제3장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가 이와 같은 이북의 무신론, 휴머니즘, 메시아주의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에 있다. 김일성은 인간의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무신론을 주장했고 그것이 곧 인간주의요 메시아주의라고 선언했다. 한국 기독교인은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같은 핏줄인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 불원간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절체절명 앞에 우리는 서 있다. 통일 후에 만날 이북 메시아주의에 대해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북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내용과 형태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 것은 김일성의 잘못된 독재정치가 그 기본에 있기는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면 당대의 교회가 이북 민중을 위한 사회적·역사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북 인민의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북 교회가 초월적인 신앙 때문에 민중의 지상에서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투쟁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교회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통일 후 이북에서는 기독교가 인민의 지상에서의 행복한 삶에 크게 공헌함으로써 이북 인민의 이 땅 위에서의 평화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크게 공헌한다는 칭찬을 받도록 해야 한다. --- pp.222-223, 제4장
이 연구의 목적은 한반도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한국 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 준비를 위해 먼저 이북 공산주의가 이북 기독교를 어째서 없애버렸는지를 알아야 했는데, 그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김일성 사상의 기초가 되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살펴야 했다. 나아가 김일성을 앞세우고 이북을 점령한 소련 공산주의의 사상과 실천, 즉 레닌의 공산주의 사상과 실천을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당대 기독교가 어떤 형태의 신앙과 삶을 갖고 있었기에 이북 공산당이 기독교를 그토록 무섭게 핍박하고 박멸했는지를 알아야 통일 후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북 민중과 만나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화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pp.280-281, 제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