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이 어떻습니까? 맑습니까 흐립니까? 비는 오지 않으니 장터가 이리 시끌시끌하겠지요. 나는 여러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눈먼 할멈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할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할멈이 아니오. 나는 여러분이 듣고 있는 이 목소리의 주인일 뿐이오.
나는 소금 장수입니다. 할멈의 몸을 빌려 내 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겠지요.
어차피 이 이야기가 다 끝나야 무슨 소리인지 분명하게 잡힐 터. 그냥 계속하겠습니다. 소금 장수 이야기, 내가 겪은 무시무시한 일을…….
하루는 내가 소금가마를 지고 길을 가다 어느 고개 아래에 이르렀다고 했지요. 이럴 때는 누구든 쉬었다가 가게 됩니다. 그쯤에서 한숨 돌리지 않고는 지게 지고 고개를 넘을 수 없는 일입지요. 그날은 중간에 한 번쯤 쉴 수도 있었는데 고개 아래까지 내처 가보자 하고 부지런히 걸어왔던 터라 지게를 진 어깨와 등이 몹시 욱신거렸습니다. 무릎이 아픈 것도 물론이었지요. 길가 아름드리에 지게를 받쳐 세워놓고 바위에 얼마간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근 개울에 가서 물도 마시고 얼굴도 씻고 해서는 다리를 뻗쳐보자고 풀밭에 누웠더랬지요. 그러고 또 얼마간 있다가 무심코 옆을 보니까 무슨 뼈다귀 같은 게 있지 뭐겠습니까. 짐승의 뼈가 아니라 사람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할멈이 아니오」중에서
셋째는 집안의 괴변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이슥한 밤에 방에서 나가 먼저 외양간을 둘러봤지. 그리고 숨어 지켜보기 시작했어.
단단히 마음먹고 나섰지만 졸음이 몰려왔지. 다리를 꼬집어 가며 졸음과 싸우던 셋째는 어디선가 방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를 들었어. 누군가 마당으로 나왔는데, 달빛이 푸르스름하니 흐릿하긴 했지만 누이동생임을 알아볼 만은 했어.
누이동생이 마당 가운데서 홀딱, 홀딱, 홀딱 재주를 세 번 넘지 뭐야. 그리고는 여우로 변해 있는 거야. 셋째는 비명을 막느라 제 손으로 입을 힘껏 가렸지. 누이동생이 여우였다니! 집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한 무더기 꽃을 피워 올리는 듯하던, 그 귀엽고 예쁘던 누이동생이 요물이었다니! 치마저고리를 입고 서 있었지만 그것은 여우였어. 누이이고 여우인 그것이 부엌으로 들어가. 그리고 나오는데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네. 셋째는 제 심장 고동치는 소리를 낮추려고 애를 쓸 뿐 달리 뭘 어찌할 수가 없었지.
어느새 여우이자 누이인 그것은 외양간으로 들어가고 있었어.
날이 밝고 소가 죽어 쓰러진 것을 아버지와 함께 보고 나서도 셋째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어. 졸았느냐는 아버지의 다그침에 놀란 듯 아니라 하고는 고개를 저었지.
제가 지켜본 바를 털어놓은 것은 이틀이나 지나서였어. 재주를 넘어 여우가 된 누이가 소 꽁무니에 손을 쑥 넣어서는 소가 음매 하며 잠시 움찔하는 사이에 뭔가를 끄집어내 한입에 날름 먹어 버린 일, 다시 재주를 홀딱, 홀딱, 홀딱 세 번 넘더니 도로 사람이 된 누이가 제 방으로 들어간 일.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셋째 아들을 쳐다보았어. 아버지 얼굴이 차차 일그러지며 노기가 들어차더니 고함이 들려왔지.
“하나뿐인 누이를 시샘해도 유분수지! 어디, 거짓말을!”
화가 난 아버지는 그따위 소리를 계속하려거든 썩 집을 나가라고까지 소리쳤어.
---「여우 누이와 세 오빠」중에서
지네 색시 만나 저는 살아났습니다. 돈궤까지 얻었습니다. 제가 짊어지고 온 건 돈궤입니다만, 실은 그건 작은 겁니다. 글공부 그만두고, 장사라도 배워보자는 마음 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떠났지요. 곧 거지꼴이 됐습니다. 그쪽으로는 더 재주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처럼 죽을 마음 품은 사람들을 지네 색시가 준 돈으로 살리면서 장사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실은 마을로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렇더라는 겁니다. 돈궤보다 더 큰 뭐가 있다는 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저 장터 마을에는 왜 큰 곳집이 있고 사람이 모이는지 정도는 알게 됐습니다. 우리 마을이 정말 한갓진 곳이어서 한갓진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됐습니다. 마을을 장터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지금보다 더 훈기가 도는 곳으로 만들 생각은 있습니다. 네네, 술도 좋군요. 잠시 훈기 돌게 하기엔 좋지요. 맞습니다. 먼저 우리 마을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 모이는 곳으로 여기를 손보겠습니다.
앞으로 해보려는 일 말씀이시지요? 무슨 일이 될지 기다려주십시오. 두꺼비 사당과 지네 비석이 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돈궤에 억만금이 들어 있어서 하려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집 한 식구 평생 살기엔 분명 넉넉하나 흥청망청 써버리자면 두어 달 만에 다 바닥날 돈일 뿐입니다.
나무에서 내려가 먹었던 떡이 저를 살렸습니다. 장터 주막에서 나눈 국밥이 누구를 살렸습니다.
---「지네 처녀와 보낸 삼 년」중에서
말 난 김에 제대로 기억해둬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강아지 한 마리를 잘 끊이지 않을 삼줄에 매어서 호랑이가 많은 산으로 올라갔군요. 가서는 무슨 나무에 강아지를 붙들어 매어두었겠군요. 얼마 있으니 호랑이가 떼로 나타났고 말이지요. 강아지를 본 호랑이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었겠지요. 그 중에 제일 앞선 놈이 덥석 물었겠다. 그런데 이게 기름칠을 해놓은 강아지인지라 미끄덩하고 그냥 뱃속으로 들어가더란 소리 아닙니까?
아, 네. 그러니까요. 그러고서는 내처 똥구멍을 미끄덩하고 빠져나왔고 말이지요.
한발 늦어 허공이나 물어뜯던 호랑이들은 멈칫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휙 나타난 강아지를 보고서 말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는 얼른 정신 차린 놈이 있었겠지요. 나서서 냉큼 낚아채는 놈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놈도 기름칠한 강아지는 물어뜯지 못할 수밖에요. 그냥 뱃속으로 꿀꺽 삼켰겠지요. 기름칠한 강아지는 이번에도 뱃속에서 미끄덩하고 똥구멍으로 빠져나갔을 일이고요. 아, 이렇게 호랑이들이 차례대로 달려들고 나니, 이런, 이런 모습이 될 수밖에요.
기름칠한 강아지가 질긴 삼줄을 목에 맨 채로 여러 호랑이 뱃속을 들고났으니, 달려들었던 호랑이들은 입구멍과 똥구멍이 꿰이게 되었으니, 이건 마치 곶감 꼬치 같군요.
---「호랑이는 모를 이야기」중에서
입이 벙긋벙긋하면서도 대감은 또 울상이 되더군요. 제 몸뚱이를 연방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대감께서 주신 돈만큼 약을 샀더니 효험이 이 정도밖에 없군요. 아, 그래도 약을 더 먹으면 틀림없이 더 효험을 볼 수 있는 병이니 천만다행입니다. 약값을 좀 더 주시면 더 사다 바치겠습니다. 아니면 저도 집안 일이 있어,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는 잘 계산해서 덧붙인 것이었습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입지요. 그놈의 대감 어쩌나 보려고 그 말 했더니 납작 엎드리듯 하며 나를 붙잡더군요. 자기 병 다 나을 때까지는 제발 옆에 있어 달라면서 말이지요.
이번에도 대감은 내가 천석지기 팔아 마련한 돈 정도를 내놓았습니다.
그리해 내가 약탕기에 담아온 약으로 대감은 몸통까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네 다리가 돼지 아니겠습니까? 나머지 돈도 다 받을 일이 남아 있었지요.
그리해 나는 삼천석지기 재산 다 찾았고 대감은 원래 제 몸을 다 되찾았습니다.
나는 벼슬자리야 끝내 얻지 못했지만 대감으로부터 은공 잊지 않겠다는 소리 여러 번 듣고 대접도 후하게 받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대감 댁을 나왔지요.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하는 소리도 우렁차게 하고서 말입니다.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중에서
옛날에 새를 잘 잡는 총각이 있었어.
우연히 제 재주를 알게 된 총각은 주위 어른이나 친구들이 뜯어말리는데도 남의집살이 집어치우고 세상을 떠돌았지.
새 하나는 귀신같이 잡았어. 참새든 메추라기든 겨냥만 제대로 하면 다 잡을 수 있었다니까. 산중이나 들판에서는 잡은 새 불에 구워 요기를 했겠지. 장끼와 까투리를 쌍으로 허리에 매달고 가거나 하다 보면 신기해하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겠지. 그때는 그 사람에게 잡은 새 넘겨주는 대신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이지. 옷을 얻기도 하고 잠자리를 얻기도 하고 말이야.
몇 날 며칠 붙들고서 새 잡는 법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나 봐.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지. 삼시 세끼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었지. 좋았지. 그래도 오래 한 곳에 머물지는 않아. 어디든 머물다 보면 묻는 사람들이 나온단 말이야. 이름은 뭐냐. 부모는 누구냐. 어느 고을에서 살았느냐. 재주는 어떻게 익혔느냐. 그 총각 자세히 이야기하는 법이 없어. 부를 때 새샙이라 부르면 된다, 뭐 그 정도만 시원하게 털어놓을 뿐이었다니까. 주위에서 새잡이 났다느니 해대더니 언젠가부터 새샙이라 부르더라는 사연, 뭐 그 정도도 잘 말하지 않았다니까.
한번은 어떤 동네에서 가을에 새 쫓는 일을 맡게 됐네. 막을 짓고 머물며 곡식 지켜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부탁받고서였지.
종우야, 너도 여기 와 들어봐라. 이 고모가 이야기를 막 시작한 터이니 앉아 들어봐라. 이번에는 새샙이 이야기다.
---「새털옷 신랑」중에서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의 작업은 입말투와 현장성을 살려 옛이야기를 복원하고 계승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주로 복원과 계승에서 내용적인 측면과 관련한 사항들을 말한 셈입니다. 이제 서둘러 말하려 하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과 관련한 것인데요, “유쾌하거나 통쾌한” 이야기들인 「호랑이는 모를 이야기」와 「은진미륵도 배꼽 잡을 일」과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에 대해서는 내용 해설을 생략하고 입말투와 현장성에 대한 형식 논의로 신속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소설은 혼자 읽는 것이고 옛이야기는 마주 앉거나 둘러앉아 하고 듣는 것이지요. 옛이야기를 제대로 복원하겠다면 옛이야기의 근원상황, 그러니까 마주 앉거나 둘러앉아 하고 듣는 상황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고독한 독자로서 소설을 읽을 때 작가는 곁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어느 곳 어느 때 소설을 쓰고 기계적 인쇄의 과정을 거쳐 미지의 우리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옛이야기를 하는 사람, 구연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듣는 우리 앞에 있어야만 하지요.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 차이가 바로 소설과 옛이야기 사이의 거리입니다.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는 소설이되 옛이야기입니다. 그냥 소설이 아니라 옛이야기를 복원하고 계승한 소설이라는 것이지요. 복원이나 계승은 그것이 함께 논의될 때 결코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 됩니다. 이 작업의 복원은 박물관용 복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을 지워버리고 옛것 그대로의 육체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새것과 다른 옛것의 특징을 발견해 그 근본정신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계승은 새것이 상실해버렸으나 옛것에는 있는 것 가운데 계승할 가치가 있고 또 계승할 수 있는 것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나는 옛이야기의 특징 가운데서도 복원할 수 있고 복원할 가치가 있는 것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계승하려 합니다. 그것을 나는 입말투와 현장성으로 요약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작가노트: 옛이야기란 무엇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