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놓인 이 책은 전형적인 독일 학풍의 구약 문헌 역사 연구서다. 알다시피 우리가 구약이라 부르는 문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단행본” 문헌이 아니다. 수많은 인간 저자가 수세기에 걸쳐 생산해 낸 역사적 문헌이다. “역사적”이란 말은 각 권이 역사 속에서 특정한 시기에 생산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각 권 안에 다양한 역사 층이 전승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저마다 저자가 따로 있는 책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다양한 전승이 녹아 있기에 그리 간단한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각 권마다 이름이 있고, 고유의 이름이 있는 각 권이 여러 권 모여 좀 더 큰 뭉치 문헌을 이루고, 큰 뭉치 문헌이 최종적으로 구약성서 혹은 히브리성서이라는 단일 문헌을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은 구약 문헌을 전승사적 측면에서 다루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문헌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필수적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고대 근동과 구약 문헌사』(Literaturgeschichte des Alten Testaments)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구약 문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려면 반드시 “문헌의 역사”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헌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당한 지적 추측과 유식한 가설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약 문헌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전승(예. 제의 및 지혜 전승, 서사 전승, 예언 전승, 율법 전승)을 찾아내는 일, 또한 다양한 전승이 어떻게 수정되고 보완되며 덧칠되었는지를 살피는 일, 각 본문이 가리키는 역사적 정황을 추측해 내는 일 등을 살펴보는 문헌 역사 연구는 치밀한 노력과 상당한 지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 책의 저자인 콘라드 슈미트 박사는 독일 학풍의 특징인 역사적 치밀성을 갖고 구약 문헌의 역사를 나름 일관성 있게 제시한다. 이 점에 있어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구약성서 문헌 발전 역사는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문헌의 복잡한 상호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이 책의 목적을 잘 보여 준다. 그는 구약 문헌이 기원전 1세기 즈음에 거의 완성된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 위에, 구약 문헌의 역사 시기를 크게 앗수르 이전 시대, 앗수르 시대, 바벨론 시대, 페르시아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셀레우코스 시대 등 여섯 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구약의 각 권을 해당 시대에 맞게 문헌 전승사적 차원에서 살핀다.
이 책의 유용성은 구약 문헌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려줌으로써 사회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 본문을 무역사적 비역사적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서가 어떻게 “자라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마 한국의 복음주의 권에 속한 신학생이라면 “불편한 성서관”을 만나게 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서구 학자들이 구약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하는 방식의 한 부분인 구약 문헌사 연구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구약이라는 문헌을 역사적으로(통시적) 살펴본 개론적 연구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저술 목적을 인용함으로 추천의 글을 마치려 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구약의 내적 역사적 형성 과정의 난해함과 함께 주제의 일관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했기를 바란다.
적어도 저자의 바람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구약성서 문헌사 연구의 필요성
구약성서에 대한 문헌사적 접근법은 성서의 지고한 권위에 대한 불온한 도전이 아니며, 더구나 구약성서를 고대 근동 문헌의 하나로 격하시키려는 반신학적 반동도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정말 커다란 오해다.
성서 각 권이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떨어진 책이 아니라면, 다양한 성서 사본의 존재를 인정하고 본문의 원래 의미를 찾아가는 본문비평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구약성서의 기반이 되는 히브리어 성서, 그 표준인 마소라 본문을 읽어 보더라도 일부 단어와 표현은 “구전”(Qere)의 형태로 주어진 것과 “저술”(Ketiv)의 형태로 주어진 단어가 다르게 표기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신약성서를 펼쳐 마가복음 16:9-20에 달린 각주를 읽어 보라. 분명 가장 오래된 고대 사본에는 이 본문이 없다는 설명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 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부분이 어떻게 오늘날 개신교의 성서에 포함되었으며, 오랜 동안 어떠한 과정을 거쳐 당신의 책상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콘라드 슈미트가 언급했듯이, 성서의 참된 신적 권위는 “본문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는 이렇게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역사주의 비평학의 도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는 아마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성서의 무오성을 믿는다면 어떻게 성서의 본문을 비평하고 성서 형성 과정을 설명하려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성서비평학을 공부하고 성서 문헌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무오성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왜 그럴까?
첫째, 서구 복음주의 교회는 본문비평을 거부한 적이 없다. “성서의 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The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은 명백히 성서 최초의 원(Original) 텍스트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 미국 복음주의 성서학자의 다수가 정경-문학비평을 따르고 있으나, 방법론에서 형식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를 공부하고 거부할 부분은 거부하고 이용할 부분은 해석학에 활발히 적용하고 있다. 성서가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임을 입증해야 하는 우리에게 비평학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
둘째, 복음주의 신학은 “무오성”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피력해 왔으며 최근까지 “성서의 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을 재정의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이 전통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서의 신적 기원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도 무오성을 지키기 원하는 교회는 다음의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교회가 가진 성서는 오류가 없는 완전한 텍스트이며 성서를 완전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조금 다르게 질문해 보자.
“당신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가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서 판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참으로 수많은 영어 번역본과 고대어 역본과 사본의 홍수 속에서, 특히나 쿰란 공동체에서 발견된 무수한 성서 원문, 다양화된 최종 형태의 본문 앞에서 우리가 가진 성서 번역이 최초의 원본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나아가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 책의 저자인 콘라드 슈미트는 “구약성서가 어떠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저술되고 발전되고 최종적인 정경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광범위한 질문에 대답한다. 슈미트는 현재 스위스 취리히대학교(Universitat Zurich) 교수이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하이델베르크대학교(Ruprecht-Karls Universitat Heidelberg)에서 교수직을 감당할 만큼 독일 구약신학에 정통한 학자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완전히 새로운 학설은 아닐지라도, 저자는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의 명맥을 이어 구약 문헌사를 수정, 보완, 집대성하여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만약 구약 문헌학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신학도라면 데이빗 카(David Carr), 토마스 뢰머(Thomas Romer), 에어하르트 블룸(Erhard Blum) 같은 학자의 책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 저술도 한계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오경 신학의 오랜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과 형식/편집비평은 최근 수십 년간 상당한 비판에 직면해 왔다. 또한, 여전히 J, E, JE, D, P와 같은 문헌의 도식을 구분하고 결합하는 가정을 사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이론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며 반드시 수정 과정이 필요하다. 구술 전승과 문헌 전승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면 도식적인 방식으로 문헌학의 역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저자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서 각 권의 저술 연대를 지정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성서 각 권이 수세기에 걸쳐 저술과 제작을 반복해 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는 더욱 분명해 진다. 예를 들어, 저자는 욥기의 대부분은 페르시아 시대에 저술되었지만, 욥기 28장과 32-37장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본다. 상당수 편집비평가가 이러한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비교적 크게 동의를 받고 있으나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확한 저술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페르시아와 헬라 시대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계적인 방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저자는 자주 고대 근동 문헌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이스라엘 문헌이 정확히 구약성서의 어떤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회피되거나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거나 정확성이 결여된 부분이 눈에 띈다.
콘라드 교수는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을 결정하면서 “한국 교회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의향을 물어 본 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두말할 나위 없이 “Yes”였다. 고도로 조직화된 비평학을 공부하면 할 수록 점차 성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나 삼위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속설이 오랫동안 한국 신학계에 있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신학함”을 방해하는 것은 그 무엇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몰이해”와 “반지성적” 태도다. 따라서, 성서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될 독자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고 읽어 보라. 그리고 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로 이런 가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라.”
아무쪼록 구약성서의 형성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시의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
2018년 4월
취리히 그로스뮌스터에서
- 권지성 (박사, 스위스 Universitat Zurich 리서치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