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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의 일기

어느 나무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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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54g | 140*210*20mm
ISBN13 9788963707471
ISBN10 896370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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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란 박사뿐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의 아들을 죽인 독일군의 총알을 내 몸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아들은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나이 어린 레지스탕스였다. 나는 그의 처형용 기둥인 동시에 그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 있는 기념물이었다. 죽음이 제2의 탄생이라고 굳게 믿는 조르주 란은 지난날 그의 아내가 그랬듯이 내가 그의 아들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영혼의 수호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하나만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기를 멈추면, 이 모든 인간의 기억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p.11

“호주에는 어떤 품종의 난초가 있는데, 그 난초가 피우는 꽃에는 아무 곤충도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이 난초는 수정하기 위해 한 가지 계략을 꾸며냈지. 말하자면 생식기관을 암컷 말벌의 형태로 만드는가 하면 그 냄새를 모방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면 수컷 말벌은 사랑의 밀회를 위해 꽃으로 달려들어 교미를 하려고 애쓰는 거지. 수컷은 아무 성과 없이 다시 떠나지만 본의 아니게 온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가짜 말벌들을 수정시키게 되는 거야.”---p.91

“괜찮습니다.” 드레퓌스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자, 행운을 빌겠네.” 늙은 장군이 자신의 고문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내게도 행운을 빌어주게. 접붙인 게 잘되라고.”
옛 도형수는 우리의 고문자가 초가집을 향해 멀어져가는 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내 몸통에 이마를 기댄 채 껍질 속에 손톱을 박아넣더니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모든 슬픔이 나를 뚫고 들어와 심목에 도달했다.
모든 것을 석화시킨 그 마음속 고통의 무게, 마음속 비밀의 무게…… 그것은 아마도 나의 가장 무거운 추억인지도 모른다.---p.217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 어린 마농이 뱉은 나의 배 씨앗이었다. 씨앗은 내가 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휴면중이었던 것이다.
이졸드에게 아직 달려 있는 몇 개의 잎사귀 사이에서 바람이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왔구나.”
나는 그 씨앗에서 내 존재의 향기가 풍기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새로운 성장에 나 자신을 맡겼다. 내 기억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삶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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