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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

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

: 정계 은퇴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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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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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0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9g | 152*210*20mm
ISBN13 9788927802952
ISBN10 892780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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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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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종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저자는 1993년 정보사령부가 퇴직한 특수부대 요원들을 테러 요원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한해 뒤인 1994년에는 상문고에서 자행돼왔던 무자비한 교내 폭력과 교사들의 성적조작, 학부모들로부터의 강제 기부금 모집 등 학내 비리를 추적 보도해 그해 한국 기자상을 수상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1년 6개월 동안 시경캡을 지냈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건, 인육을 먹은 조직폭력배 지존파 사건, 마포 가스 폭발사건, 한의사 친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군 사건, 여자 승객 수십 명을 납치 살해한 택시운전사 온보현 사건 등 각종 사건사고 취재를 지휘했다.

1996년 정치부로 발령을 받은 저자는 신한국당을 출입하면서 이회창, 박찬종, 이인제씨 등을 담당했다. 그뒤 관훈클럽의 지원을 받아 1년간 스탠퍼드 대학에서 미국 기자들과 함께 1년간 나이트펠로우 십 연수를 마쳤다. 귀국 후 1999년 1년간은 법조 캡으로 일했다. 검사들이 변호사로부터 떡값을 받은 대전 법조비리와 검찰 수뇌부에 대해 검사들이 집단 항명한 이른바 검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밍크코트 로비 사건,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사건 등을 취재했다. 2001년 정치부로 자리를 옮긴 뒤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동교동계에 반발하고 나선 정풍운동을 취재했고, 이인제와 노무현의 격돌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다. 또 2002년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최고 권력의 실상을 지켜봤고 2003년부터 3년간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와 미 의회 등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정치를 취재했다. 2006년 귀국 후 중앙일보 정책사회 부장을 거쳐 현재 사회부분 부에디터로 재직중이며 중앙일보 고정칼럼 「시시각각」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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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책의 편집자 입니다.
2012-01-16
김대중, 그리고 나의 아버지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맏사위였던 아버지가 대구 출신의 둘째 이모부, 온양 출신의 셋째 이모부를 불렀다. 명절도 아닌데, 오실 때마다 잊지 않고 용돈을 챙겨주시던 이모부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어린 내게도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전날 아버지 당신이 낚시 가셨다가 잡아온 붕어와 메기를 손질해 매운탕을 끊였다. 저녁을 자시면서 자연스레 약주를 한 잔 하셨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아버지는 씩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 슨상님이 이번엔 꼭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면서 이모부 두 분에게 한 표를 호소했고, 이모부 두 분은 웃으면서 “아이고 형님, 김대중이 어떻게 대통령이 됩니까? 술이나 자시죠.” 했다. 술자리가 파하자, 나와 동생은 이모부 두 분에게서 두둑한 용돈을 챙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해 대선에서는 ‘보통사람’을 외치던 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때도 김대중은 다시 한 번 떨어졌다. 고향이 목포였던 나의 아버지는 ‘김대중’ 이야기만 나오면, 집안 어른을 대하는 것처럼 평소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어머니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허무하고도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가 김대중과 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이등병을 달고 자대에 배치 받았을 때 김대중은 군 최고통수권자, 즉 대통령이 되었다. 군에 있는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는 내게 김대중에게 표를 던질 것을 종용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서운한 마음이 명치끝을 쳤다. 지독하다 생각했다. 계속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김대중도, 그를 지지하는 아버지도.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가 그에 관한 책을 편집하게 되었다. 삶의 고리가 이렇게 이어지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나의 아버지는 정계은퇴부터 대통령 당선까지의 김대중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만드는 내내 궁금했다. 흡족해 하실까? 아니면 화를 벌컥 내며 던져버리실까?
난 아마 흡족해 하실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잘했다.’ 칭찬해 주실 것 같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그렇듯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 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느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8월 19일
당신의 아내 이희호

남도의 땅, 전라남도 고흥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나에게도 ‘큰바위얼굴’ 같은 우상이 있었다. 정치인 ‘김대중’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1972년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는데, 초가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동네 어른들이 ‘김대중’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이 인쇄된 선거 팸플릿을 주워 집에다 갖다 놓고 날마다 바라보았다. 누가 내게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면 나는 “김대중 총재님 비서요.”라고 말하곤 했다. 자기 자식이 정치인 비서가 되겠다고 하면, 아마 요즘 부모님들 같으면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전라도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른들은 오히려 깔깔대고 웃으며 좋아했다.

“심기를 귀찮게 할지 모르지만, 다시 정계에 복귀하시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DJ가 눈을 번쩍 부릅뜨면서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아니 장 비서,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DJ가 다시 평상시 얼굴 표정으로 돌아가 말했다. “방금 전에 나에게 뭐라고 했어요? 내가 다시 정계 복귀하면 당선될 수 있다고?” “예,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DJ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보고서가 그거여? 알았으니 나중에 하지 그래. 나 정치 안 해요.”
하지만 그게 DJ의 본심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하겠습니다.” 내가 보고서를 들고 일어서자, DJ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 동지, 그 보고서는 놓고 가지 뭐하러 가져가.” “그럼 놓고 갈까요?” DJ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놓고 가세요.”
초조한 마음으로 비서실로 돌아가 DJ로부터 반응이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1시간 반쯤 지났을까, 나를 찾는 벨 소리가 울렸다. 다시 서재로 내려갔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된 DJ가 나를 보고 말했다. “이 보고서 나 아직 안 봤는데, 이런 거 앞으로 올리지 마세요. 올려서도 안 돼요. 기왕 올린 거니까 내가 갖고 있겠지만 누구한테도, 우리 집사람한테도, 가족들 누구한테도, 장 동지가 이런 걸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요. 장 동지도 절대로 외부에 이런 게 누설되지 않도록 하고. 이 보고서는 내가 외부에 나가지 않게 보관하고 있겠어요.” DJ는 그러면서 책상 서랍을 열어 보고서를 넣고는 열쇠로 잠갔다. 내실을 막 나서려는데 DJ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런데 장 동지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예, 드골과 카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총재님을 연결시켜 봤습니다. 물론 당장 복귀는 말도 안 되고요.” “그래요, 알았어요.”
DJ가 그 보고서를 읽고 힘을 얻어 정계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다시 정치를 시작하시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DJ는 다음 날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마루에 올라오고, 마당에 나가 개도 보살피고, 평소대로 참새에게 쌀알을 뿌려주기도 했다.

“제 40년 정치 역정에 대한 평가는 역사와 국민에게 돌립니다. 하늘과 땅,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40년간 갈고 닦은 정책을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게 참으로 한스럽고 가슴 아픕니다.” 어느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DJ는 더 이상 정

1995년 7월 18일, DJ는 마침내 정계에 복귀했다. 목표는 단 하나, 네 번째로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돌이켜 보면 그건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인, 너무나도 두려운 도박이었다. 또다시 패배한다면, 그는 죽는 날까지 ‘약속을 밥 먹듯 어긴 정치인’이란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판이었다. 정치를 떠나도 더 이상 원로 대우를 받을 리 만무했다. 그 경우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기록할지 생각하면 DJ는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한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될 터였다. 지지자들은 DJ를 ‘온갖 시련을 극복한 불굴의 지도자’로 칭송하고, 정적들조차도 그의 끈질김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를 게 뻔했다. 세상의 평가와 인심이란 게 원래 그랬다. DJ는 무엇보다도 한평생을 꿈꿔 온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게 된

DJ는 어지간해서는 참모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고생했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보스를 위해 뭔가 했다는 생각에 우쭐하거나 자만하는 참모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어제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오늘 태만하면 DJ는 금방 냉정해졌다. DJ의 눈길을 받기 위해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듯 계속 뭔가를 해야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참모들은 다 그랬다.
예를 들면, 1996년 당시 국민회의 박지원 기조실장은 부천에 살았다. 걸핏하면 기자들과 술자리를 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에 들어갔지만, 박 실장은 다음 날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산 자택으로 보고를 왔다. 새벽 출근길에 박 기조실장이 DJ 자택 앞에 차를 세워 놓고 그 안에서 운전기사와 둘이서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져 있는 걸 본 적도 많다.“이제 들어가야죠.” 하고 소리치면, 박 실장은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매무새를 만진 뒤 보고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DJ의 용인술은 참 지독했다. 하지만 성과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백미는 1996년 12월 6일 여의도 63빌딩 중국집 백리향에서 있었던 개그맨 부부들과의 만남이다. 탤런트 출신 정한용 의원이 주선했다. 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DJ가 말했다. “나도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개그맨들은 복잡한 걸 쉽게 설명하고 청중을 웃기는 재주가 있어요. 그 비결을 배워야겠어요.” 나는 속으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정치인도 그 정도 정성을 보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의 주제는 ‘정치와 웃음’이라고 했다. 최양락과 팽현숙, 이봉원과 박미선, 김학래와 임미숙 부부가 참석했다.

너무 기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해야 했다. 그리고 DJ에게 최초의 당선 축하인사를 했다. “약 40만 표 차이로 당선이 확정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셨습니다. 총재님, 축하드립니다.” 나는 DJ가 뛸 듯이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표정이 담담했다. “장 동지도 고생 많았어요. 그런데 내일 아침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주무십시오. 당선 인사를 정리해 놓았으니 아침에 보시고 정정해 발표하시면 됩니다. 국립묘지 참배, 내외신 기자회견 등 나머지 스케줄은 다 짜여 있으니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래요, 들어가 눈 좀 붙여야겠어요.”
일산 자택 밖에서는 수천 명의 지지자가 몰려와 밤새 ‘김대중’을 연호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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