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시간이든 상관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기쁨과 즐거움,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인생을 누리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간에 가장 보편적인 이름을 붙여본다면 아마도 ‘휴식의 시간’일 것이다. 내 엄마가 만족스러운 인생이라고 표현한 인생도 바로 본질에 집중하는 시간을 누리는 것이었다. 암이라는 병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는 삶에서 엄마를 벗어나게 했고,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자신과 가족, 인생과 죽음, 삶의 의미에 집중하는 시간 말이다. 엄마는 우리가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현재를 누리며 산다면 인생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휴식에 대해 가르쳐준 내 첫 번째 스승은 바로 엄마였다. (‘2장 휴식의 발견’, 63~64쪽)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도 된 듯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믿음은 종종 내면 깊은 곳에 숨어서 우리의 자존감을 무척 예리하게 건드린다. 아무리 활동적이고 많은 방면에 자신감을 보이는 성공한 사람이라도 솔직한 심정을 물어보면, 정말 편안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기는 힘들다고 대답할 것이다. 제일 큰 원인은 사회에 깊이 퍼진 목표와 성취 지향적인 가치 판단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능력과 생산성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성장을 방해하는 ‘멈춤’은 비난한다. 이런 사회의 시각이 우리가 어려서부터 절대적으로 영향받는 가정의 원칙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그러는 과정에서 괴테가 “더할 나위 없는 호사”라고 칭찬한 ‘영혼의 안정’을 찾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3장 왜 우리는 휴식이 어려울까’, 75쪽)
아드리안 아저씨는 양질의 휴식을 경험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했다. 젊은 사람이 아주 편안하고 침착한 태도로 사는가 하면, 노년이 되어서도 진정한 휴식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으니 굳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저씨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휴식의 기쁨과 즐거움, 휴식이 가진 생명력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그리고 어떻게 휴식을 누리고 싶은지는 오로지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개개인의 생각은 자유롭게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더 많은 휴식을 누리거나 더 활발하게 살기로 결정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내면의 욕구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저씨는 우리 자신이 오랜 분주함에 익숙해져 무의식중에 얼마나 서두르는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얼마나 산만하게 살며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지는 관찰해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일상을 느긋한 태도로 바라보고, 절대로 무엇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관찰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휴식은 느긋한 삶의 태도이자 의미 있는 인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평생 걸어야 하는 발전 과정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3장 왜 우리는 휴식이 어려울까’, 103쪽)
고아에서 무척 단순하고 소박한 나날을 보내면서 나는 자연과 가까워졌다.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환경에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지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많은 시간을 해먹에 누워 졸거나 책을 읽으며 한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자 내 감각은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몸의 감각을 새롭게 발견했고, 모든 것을 더 세심하게 보고 느끼게 되었다.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리면, 내가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 햇빛의 기분 좋은 따뜻함을 느끼고, 바다의 찬 공기가 피부에 스치면 피부 세포가 부르르 춤을 추는 것도 생생히 느꼈다. 내 후각은 더 예민해져 인도의 향기, 즉 땅의 냄새와 짭짤한 공기 냄새를 생생하게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흙먼지로 지저분하고 뾰족한 돌이 울퉁불퉁 솟은 길을 자주 맨발로 걷곤 했는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땅을 향한 믿음이 자라나는 듯했다. 그렇게 내 생각은 깊어졌고, 내 몸의 감각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몹시 놀라운 경험이었고, 나는 이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4장 진정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136~137쪽)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더 많은 휴식과 여유를 바란다. 이는 자유로운 공간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기로 작정하면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외적 휴식’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외적 휴식을 규칙적으로 누리기가 쉽지 않으며, 생생한 일상의 체험으로 경험하는 일도 쉽지 않다. 반면, 많은 종교와 문화에서 행해지는 정신 수행인 명상은 가장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내면에서 발견해 ‘내적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명상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신을 현재에 머물게 하며, 느긋하게 깨어 있는 고도로 편안한 상태를 몸과 마음이 경험하게 만든다. (‘5장 마음까지 쉴 수 있는 사원 생활’, 190~191쪽)
사원은 결코 그물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가볍게 삶의 여유를 즐기는 장소가 아니다. 사원의 삶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관찰하는 훈련이 전부다. 그럼에도 휴식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휴식은 즐거움, 감사, 평정심, 현재에의 집중, 그리고 만족과 같은 유익한 삶의 측면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 내면의 정신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침묵과 사색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신체적, 정신적, 심적으로 긴장을 하며,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다 바쳐 깊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내면의 태도를 관찰하고 유익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지, 우리의 내면이 얼마나 깊이 자아에 중독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유롭게 마음을 열 수 있고, 그로 인해 놀라움에 매혹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5장 마음까지 쉴 수 있는 사원 생활’, 224~225쪽)
이혼은 내 인생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이는 고통스러운 빈 공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이자 친구이며 영적인 동료를 잃었다.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난 나는 이제 완전히 새롭게 혼자 인생을 만들어가야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가장 먼저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내게 무엇이 가장 본질적인 것인지 다시 느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인지 쉬고 싶은 욕구가 컸는데, 크리스토퍼의 존재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로 생각을 나눴다. 그는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여유와 내면의 안정감을 전염시키는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도 깊은 느긋함이 생길 수 있을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의 관점은 내 이해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네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은 무척 값진 시간이야. 인생이 우리가 딛고 있던 바닥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앗아 간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생의 근원적인 공백과 마주하게 되지. 평소에 우리의 의식은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면 하는 소원과 기대로 막혀 있거든. 너는 지금 이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야.” (‘7장 또다시 찾아온 위기’, 266~267쪽)
휴식 시간에는 깊은 회복이 가능하다. 자기 자신과의 친밀감과 인생의 작은 부분에서 느끼는 기쁨이 다시 활짝 피어나게 된다. 그러면 감사의 감정과 살아 있다는 느낌이 생기고, 이 느낌은 다시 명상의 도구들을 예리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의도적으로 호흡을 따라가면서 정신을 현재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점점 더 능숙하게 각성된 의식과 자유로운 편안함 사이를 오가게 되었고, 이 두 가지 정신 상태가 상호간에 유익한 자극을 주는 것을 경험했다. 당연히 명상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명상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이들은 명상을 배울 때 꼭 익혀야 하는 필수 규칙들 없이도 정신이 각성되고 고요해지는 놀라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8장 부드러움이라는 돌파구’, 302~303쪽)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하며 괴로워하는지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내가 지난 30년간 이와 관련해 발견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휴식을 통해 집중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나는 집중력 명상이 일상적인 업무에 매우 실용적이며, 나아가 업무 부담과 우리 시대의 실존적인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원에서 그리고 그 후 방석 위에서 명상하며 배운 것들은 사무실 의자와 회의실에서도 간단히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과 구분하고,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분하기 위해, 그리고 긴장과 완고함을 휴식과 편안함으로 바꾸기 위해, 정신을 가라앉히고 집중하며 뭔가에 깊이 몰두하며 멈춰서 사색하는 것이다. 해로운 유혹을 견디려면 ‘아니오’나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경험이나 일터와 생활 환경,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걱정 ‘한가운데서’ 내면의 공간을 찾을 수 있다. 폭풍의 눈 속에서도 충분히 안식과 냉정함을 찾을 수 있다. (‘9장 인생의 나침반을 휴식에 맞추다’, 345~346쪽)
우리는 휴식이 무척 멀리 있고, 심지어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휴식을 경험하려면 대단하고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휴식은 이미 우리 가까이 있다. 일상 한가운데 숨어 있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휴식을 마치 섬이나 오아시스처럼 느끼지만, 만족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며 압박이 없는 짧은 순간들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이를 간과하기 쉽다. 휴식은 우리의 바쁜 일상에,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 속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생에 휴식이 없다고 확신하거나 주장하지 말고, 정신을 휴식에 집중하고 감각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휴식을 모르고 지내서 휴식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9장 인생의 나침반을 휴식에 맞추다’, 352~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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