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기간에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명성을 얻은 유명 인사들을 통해 ‘성공’이란 단어를 학습한다. ‘성공’이라는 단어로 유명 인사들을 지칭하는 이유는 일단 사회적 활동을 통해 물질적인 재화와 사회적인 지위를 얻기 쉽지 않을 뿐더러 부, 권력, 명예 등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지만 소수의 사람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성공이 일종의 ‘신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성공의 사회적 개념과 목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공’의 개념은 하나의 틀로 고착되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면 결국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된다는 논리가 여전히 통용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사회 구조와 제도를 논의하기보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으로만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의 법칙을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그대로 요구할 수 있을까.
- 프롤로그에서

인기 아이돌 가수의 대중매체 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아이돌 가수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10대도 점차 늘어난다. 아이돌 가수의 팬 층은 연령대가 다양하지만, 10대들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아이돌 가수를 바라본다. 그들을 유명 연예인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꿈이자 미래의 직업군으로 생각한다. 빠르게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돌 가수 준비를 했다고 알려진 어느 아이돌 가수의 데뷔 과정은 같은 꿈을 꾸는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또한 아이돌 가수가 10대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아이돌 가수를 상징하는 군무가 10대들에게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학교 축제에서뿐 아니라 보통 때도 친구들과 춤이나 노래를 즐기는 것이 현재 10대들의 모습이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이 동시대 문화로 향유된다는 점, 아이돌 가수의 해외 공연과 글로벌 팬덤 등의 정보를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 등은 10대들이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중요한 근거이자 동기로 작용한다.
- 1부 왜 아이돌, 아이돌 연습생일까

학원형 기획사나 기획사 모두 연습생들에게 연습 이외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학원이나 기획사 대부분이 서울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가 멀거나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은 학교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신이 가수, 연기자, 모델 등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는 방법은 학원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기획사 관계자나 학원 선생님 역시 혹독한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데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습생 들은 소속사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인터뷰 대상자들도 학교보다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학원을 가기 전 들려야 하는 곳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만 출석 일수를 채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학원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부족한 잠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또래 친구와 선생님은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점에 처음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면서 점차 무관심해졌다. 그러다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시 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으로 인식되어 꾸중을 듣곤 했다.
- 2부 연습생이 되기까지

아이돌 가수가 속한 기획사는 곧 한류 기획사로 인식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경험하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활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많은 기획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이돌 가수 데뷔를 준비한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연습생들이 속한 기획사에는 체계적인 연습 지도 방식이 부재하는 듯했다. 기획사는 오디션을 통해 아이돌 연습생을 선발하고 계약을 맺지만, 대부분 춤 연습과 몸무게 관리에 집중했다.
인터뷰에 응한 연습생들은 모두 기획사에서 뭔가 특별한 연습 지도를 받길 원하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를 데뷔시키기까지 기획사가 지불하는 비용이 5억에서 10억까지 된다는 내용의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돌 연습생을 데뷔시키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인터뷰 대상자들을 통해 연습생 생활을 들여다보니, 연습용 지침이 부재했을 뿐만 아니라 희망 고문을 전제로 한 착취가 빈번했다.
- 3부 신기루 같은 연습생 생활

20대가 경험하는 처절한 현실적 담론은 10대 지원자들이 중심이 되는 아이돌 연습생 준비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서 노래와 춤 등의 연습 지도를 받아야 하고,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10대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받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한다. 학원비뿐만 아니라 학원형 기획사에 높은 등록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전폭적 지원이 없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르바이트를 꼭 병행해야 한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연습생들은 다른 연습생들보다 큰 경제적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구조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 4부 버거운 현실의 무게

기획사 연습생 생활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문제는 합숙 생활이다. 기획사는 연습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대신 연습생들을 24시간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숙소 생활을 하지 않고 출퇴근하는 연습생들은 현실적으로 24시간 감시가 어렵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것으로 통제했다. 따라서 기획사 관계자들은 연습생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금지하고 사진, 문자메시지, 통화 기록 등 모든 것을 살펴봤다. 특히 연습생들끼리 기획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자신들에 대한 불리한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사진도 보고 문자도 보고 엄마랑 통화한 내역까지 다 봐요. 저랑 엄마랑 얘기한 거를 왜 볼까요? 사장님이 저희한테 명령하듯이 “휴대폰 갖고 와” 그래요. 그러니까 문자 주고받은 내용을 지워요. 솔직히 우리도 사람인지라 불만이 있으면 뒤에서 사장님 욕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지우기도 하고, 남자 친구랑 대화한 것도 싹 다 지워요.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느라 정말 피곤했어요.”
- 5부 어른들은 왜 그러죠?

“아이돌 양성 시스템을 잘못되게 만드는 가장 중심에 대중매체가 있어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세상에서 제일 잘못한 듯 보도하고요. 제일 만만하니까 비판하는 거죠. 이 산업 자체를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요인은 오히려 외부적인 요인이 많은 것 같아요.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은 순수한 의도로 잘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직업인으로서 내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봐요. 그리고 데뷔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를 악무는 경우들도 많은 것 같고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건 언론이나 제작사이에요. 어른들이 변하지 않아서 생기는 괴리에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지 않을까 싶어요.”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를 준비하는 연습생들은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걸고 준비하지만, 기획사의 교육 시스템이나 관리 시스템이 연습생들의 생각과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답했다. 데뷔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돌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은 더욱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준비를 하지만 그런 노력의 결과에 좌절하는 연습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6부 그럼에도 내 꿈은 아이돌

<b>『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b> <br/>‘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인권 소외 지대에 놓여 있는 소수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로 엮은 서울연구원의 기획 시리즈이다. 한 사회의 인권 상황은 차별받고 힘없는 소수자(minority)의 삶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알아야 이해하고, 공감해야 공존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다.<br/><br/><b>[왜 마이너리티인가?] </b><br/>보통 마이너리티는 ‘육체적·문화적 특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불평등한 차별 대우를 받아서 집단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이돌 연습생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지만 사회적 차별이나 부당함, 인권 침해 등의 문제에 저항하거나 외부에 고발할 수 있는 힘이 약하거나 없는 약자에 해당된다. 특히 아이돌 연습생과 연습생 지원자들은 기획사 관계자에게 차별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무조건적으로 참고 견뎌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이 책에서는 10대 아이돌 연습생을 마이너리티 그룹으로 규정했다. <br/><br/><b>[인터뷰 대상] </b><br/>아이돌 연습생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이돌 연습생 6명과 아이돌 산업 관련 전문가 3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획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소속 연습생이 기획사 밖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어느 곳에 들렀는지 등 사생활을 관리한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연습생 생활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기란 쉽다. 성공한 아이돌 가수는 대중의 환호와 선망의 대상이고 늘 화제의 중심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신화나 이미지 뒤의 과정과 체계는 선별적으로만 알려지고 대부분 가려져 있다. 저자는 아이돌 연습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성찰한다. 책에 기술된 연습생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고통은 연민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연습생의 개인적 ‘속’ 생활을 들여다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현재의 기획사 체계와 문화 산업의 현실 속에 침해되고 있는 이들의 인권, 교육권, 노동권의 문제를 공론화시킨다. 이 책은 우리가 즐기는 아이돌 문화 생태계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동후(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가끔 아이돌 연습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적어도 한두 명은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들은 어렸고 그들이 처한 현실은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벅찼기 때문이다. 더욱이 힘든 현실만큼 그들이 그 현실을 버텨 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는 사실에 어른으로서 가슴이 아팠다. 어째서 성공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 행복하게 준비하면서 성공하는 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인가. 그건 어쩌면 어른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성공신화이자 시스템이 아닐까. 이 책은 아이돌에게 비춰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그 연습생 과정에 놓인 부조리한 시스템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시선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강요하는 신기루 같은 성공신화를 직시하게 한다.
정덕현(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