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에게 전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먹고 자세히 읽은 적이 없던 책인지도 모릅니다. 구약 성경에서 잠언과 욥기와 함께 지혜서의 한 권으로 분류되지만, 참고와 인용만 했지 오경이나 역사서와 예언서처럼 권위 있는 말씀으로 동등하게 존중했는지 질문해봅니다. 전도서는 아주 짧은 책이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읽지 않으면 피상적인 읽기로 그치고 마는 책입니다. 저는 너무 감사하게도 전도서 본문이 지닌 아름다움과 당혹스러움이 매력적이었기에, 자세히 읽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학위 논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이자 옛 지혜 선생님(전 1:1; 12:9-10), 코헬렛의 글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릴 삶의 작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지혜서들이 역사보다는 창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코헬렛의 지혜 역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들과,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는 모든 활동이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가르쳐 줍니다. 코헬렛의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삶의 모든 영역, 곧 일상에서 발견되는 삶의 양식입니다. 계절의 순환과 별들의 움직임, 동물들의 세계는 하나님이 질서를 수립하셨다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밖으로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를 발견하고, 안으로는 창조질서의 리듬에 따라 때로는 고된 일로, 때로는 휴식과 즐거움으로, 때로는 균형 잡힌 도적적인 행위들로 날마다의 삶을 채워가게 됩니다.
우리가 옛 지혜 선생님, 코헬렛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모든 현실의 통치자 하나님을 자연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서 발견하는 일입니다. 고대인의 삶이 현대인들의 삶과 다르다할지라도, 역사를 뛰어넘는 초시간적 개념이 지혜 속에 존재합니다. 전도서에서 말하는 지혜의 추구와 가르침은 ‘위로부터의 신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학’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세상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질서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사람(“아담”)이 태어나 다시 자기가 왔던 흙(“아다마”)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경험들과 관계됩니다. 코헬렛은 삶의 경험과 관찰들을 너무도 당당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하기 때문에 신앙의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당혹스러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수긍하고 따르게 되는 삶의 원리와 숨은 질서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삶의 짧음을,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때로는 더 열렬히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삶이 형통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은밀한 슬픔이 있음을, 그러나 슬픔 뒤에 도사리고 있는 평화를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인도해준 코헬렛의 지혜는 아름다운 혁명 그 자체입니다. 많은 신앙의 독자들이 현대인이 당면한 삶의 속도감에서 잠시 물러나 좀 더 느리게 하나님이 지혜 선생님을 통해 주신 지혜의 말씀, 전도서 읽기를 권합니다.
전도서를 읽어내는 것은, 전도서만의 독특한 히브리어 구문법과 낱말들의 모호성 때문에 좌절감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사전과 히브리어 구문론 책들을 뒤지며 보낸 시간은 정말 값진 것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박사학위논문, “코헬렛의 열쇳말과 모호성의 수사”의 내용과 형식을 조금 읽기 편하게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이 책은 저의 지도교수이셨던 류호준 선생님께서 책으로 출판할 것을 제안하셨고, 격려해 주셔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수채화를 좋아하시고, 평범한 일상에서 이어지는 순례의 길에 가치를 말씀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나눴던 자잘한 이야기들이 잔잔한 행복을 주곤 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저의 신앙과 학문의 참 선생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백석대학교 구약한 교수이신 김진섭 박사님, 김의원 박사님, 송병현 박사님, 그리고 김진규 박사님의 진심어린 격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은퇴 후 『나무들의 집』을 섬기시는 임종수 목사님의 응원과 격려 역시 참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한국구약학총서 시리즈 020호로 선정해 주신 한국구약학연구소장 차준희 교수님과 프리칭아카데미 대표 임태현 목사님, 그리고 디자인으로 멋진 옷을 입혀준 이성희 팀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감격과 즐거움으로, 때로는 지지부진한 일상의 어지러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진성과 아들 지훈과 첫 작품의 감사와 기쁨을 나눌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이 첫 번째 책은 팔순을 넘기면서 노인성치매로 자주 생각의 길을 잃어버리시는 어머니, 그러나 딸들을 위한 기도만큼뫀 잊지 않으시는 오정순 권사님께 헌정합니다. 끝으로, 간결하지만 깊은 통찰이 담긴 지혜말씀들에 속도를 늦추어 듣고,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새벽별처럼 빛나는 지혜와 은총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