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밝은 세상을 위하여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상상하고 꿈꿔온 대학의 모습은 이랬다. 고등학교 때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는 곳,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곳, 친구(동기)들과 같은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할 수 있는 곳,‘캠퍼스 잔디밭에 누워서 책 읽는’분위기가 물신한 곳…….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이런 상상은 99% 틀렸다. 대한민국 대학교에 너무 큰 걸 바랐던 것 같다. 최고 수준 대학에 어울리지 않게 강의는 형편없다. 588만 원짜리 학원에 온 기분이랄까? 사학이라 그런가?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 폭풍처럼 쏟아지는 과제, 마감 하루 전날 밤에 대충 답 찾아 베끼는 상황의 연속이다. 졸업장을 따러 온 건지, 깊이 있는 공부를 하러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남부럽지 않게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수능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겠지만 고등학교 3학년 3월에‘EBS 수능특강’을 사면서부터 수능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하였고, 여름방학 때 공부한답시고 학교에 나가 책상으로 평상을 만들어 드러누워 공부했고, 9월 모의고사를 끝내고는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녔으니, 그럴 만하잖은가. 여유 있게 고등학교 생활을 영위하면서 나는 여유만큼 많이 주어진 시간을 통해 나의 미래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였다. 그리고 전문계고교로의 진학을 결정할 때 그랬듯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수능 성적을 알고는 나에게‘왜 의대에 안 지원하고 이런(공대) 델 넣었냐’고 물었다. 이들의 의아해 하는 눈길에서 나는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점수가 우선시되는, 이런 게 대학이고, 이런 게 사람들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구나, 하는 것을 한마디로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대학교의 교문 통과만을 목표로 12년의 교과과정을 치열하게 밟는다. 그건‘반드시 대학에 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무지막지한 사회의 압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명령이다. 애시당초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미 점수에 맞춰 대학이 결정되어 있다. 운명은 이미 점수가 결정해 버렸다. 대학은 또 그런 자들을 위해 그저 그런, 남들이 보기 좋은, 이를 테면 취직하는데 유리한 과목들을 가르친다. 상황이 이러하니,‘대학교’는 사회적인 의무교육의 압박에 철저히 복무하는, 돈만 받아먹는 졸업장 인쇄기로 전락했고, 졸업장은 사람들에게 학벌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종잇장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 요상한 사실은 그렇게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이 고졸취업자를 가리켜‘사리분별 없이 어린 마음에 단지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매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전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내 친구 몇몇도 대학 진학만이 유일한 길인 양‘취업하는 후배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고졸취업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대학 진학을 강요하는 풍조는 명백하게‘틀린’것이며, 사라져야 한다. 수천만 원짜리 졸업장을 놓고‘너 이거 안 사? 안사면 사회 나가서 힘든데.’하고 협박(?)하면서‘대학’을 배우러 온 학생을 만만하게 보는 대학교에게, 그런 대학교에 적응해 버려서 진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내가 가엽다. 대학 진학 말고도 다른 길이 있음을, 그 다른 길도 모두 가치 있는 길들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취업은 학교 다니면서 맨날 놀기만 하던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을 깨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들이 모두 가치 있는 길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건 무슨 인간 육성 게임이 아니다. 사는 데 무슨 정석이 있고, 공략법이 있겠는가.‘무조건 대학 가세요’는‘부모님을 공경하세요’라는, 정말정말 기본적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진학이나 취업과 같은 일들은 충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선택은‘진리’가 되고, 어느 하나의 선택은 특별히‘틀린’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대학 진학’이라는 강제된 미래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좀 더 많아질 것은 당연하다.
뭐, 현실 세계에 아직도 남아 있는 대졸자와 고졸자의 대우, 임금 차이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것들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실천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나아가려는 시도조차 멈춘다면, 이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당장 수험생 생활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 또한 대학을 선택했고, 조금 실망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나의 더 높은 꿈을 위해 졸업은 할 생각인데, 내가 만약 (그 규모가 작든 크든) 어느 단체의 인사권을 쥐게 된다면, 학력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거나 하는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으리라 맹세한다.
대학을 선택한 자인 내가 대학을 선택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 책을 썼다. 이왕에 준비하는 수능, 세운 목표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수동적인 공부‘되는’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공부‘하는’자가 되기 위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 그 이야기는 그대가 쳐다볼 수 있는 목표이기에 당신에게 조금 더 밝은 세상을 열어주는 열정을 깨워 줄 것이다.
2012년 1월
호 두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