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엄경은 그 어떤 경전보다 뜻이 풍부하고 이치가 정연하여 평생을 두고 곱씹어 사유하고 공부할 경전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 귀한 경전인 만큼 이 경을 만나는 인연도 귀한 것일까? 여러 문헌에서는 능엄경이 전래된 인연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세세히 전해주고 있다.
당나라 때의 어느 날 반자밀제(般刺密帝, Paramiti, 한역으로 極量)라는 중인도 스님이 홀연 배를 타고 광주에 도착하여 제지사란 절에 머물렀다. 오래지 않아 스님의 해박함과 사물을 꿰뚫어보는 지혜로 인하여 많은 대중들이 찾아와 공경하였다. 그의 행장 안에는 능엄경 10권이 모셔져 있었는데, 스님은 바로 역경작업을 착수하셔서 705년 5월에 이 경의 번역을 완성하였다. 『속고금역경도기』에 의하면, 이때 오장국의 스님 미가석가(彌伽釋迦)가 한역하고, 광주자사를 지낸 방융(房融)이 필수하였으며, 순주 남루사의 스님 회적(懷適)이 증역을 하였다. 반자밀제 스님은 어찌된 일인지 능엄경의 역경이 완수되자마자 곧바로 서쪽으로 배를 띄워 돌아가셨다 한다. 이로써 능엄경이 중국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6p)
- 반자밀제 스님 이전에 천태 지의(智?, 538-597)선사가 일찍이 능엄경의 명성을 듣고, 경을 한번이라도 친견하고자 18년간 조석으로 서쪽을 향해 절을 올렸지만 끝내 보지 못하시니, 지금도 천태산 정상에 남아있는 배경석(拜經石)에서 스님의 안타까운 염원이 전해질 뿐이다. 또한 현장 법사가 바로 나란타대학에서 다년간 유학하신 후 귀국(645)하면서 많은 경전을 가져왔지만 끝내 능엄경은 가져오지 못하셨으니, 능엄경을 만나는 인연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희유한 것이다. 1300여 년이 지난 오늘 능엄경을 마음껏 펼쳐들고 공부하는 후학으로서 반자밀제 스님의 보살심에 지극한 감사의 예를 올린다. (7p)
- 능엄경이 이 땅에 전해진 것도 오래되어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 스님이 공식적으로 경을 가져온 것으로 확인되지만, 사실상 신라시대에 이미 당나라 유학승들을 통해 이 땅에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자밀제 스님의 보살행으로 능엄경이 세상에 나오고 중국에서 한역되었지만, 우리의 입장으로는 어찌 보면 아직까지 해제되지 않은 또 하나의 금령이 남아있으니, 바로 언어의 문제이다. 현존하는 능엄경은 한자로 된 한역본(漢譯本)이 유일한데, 이 한자가 과거에는 소수 식자층의 전유물로, 오늘날 우리 한글세대에게는 불편한 타국의 언어로서 자리하여, 우리가 경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에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많은 석학과 대덕스님들의 노고가 있어왔지만, 능엄경의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세세하게 뜻을 밝힌 것은 원조 각성 큰스님의 『능엄경정해』가 제일이라. 비유하자면 언어와 뜻의 금령으로부터 제2의 해제이자 역경을 이루신 것과 같다 함이다. 이번 원산 동명 스님의 법공양 인연으로 『능엄경정해』를 토대로 『한글 능엄경』을 엮어내었으니, 후학으로써 새삼 원조각성 대강백 스님께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8p)
- 대세지보살께서 중생에게 깊은 이익을 주시기 위하여 오로지 염불법문만을 주창하시기를, 마치 집 떠난 아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생각하듯 중생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생각한다면, 곧바로 부처님 은혜를 입어 원인의?염불하는 마음과 결과의 깨달음이 서로 합치되고, 즉시 근본으로 되돌아가고 마음의 본원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다. 대세지보살께서 말씀하신 바, 육근을 모두 다잡아(추슬러)?깨끗한 염불심을 계속 이어가는 수행법의 미묘함은 가히 말로 다할 수 없다. 대세지보살님께서 갖추신 공덕은 한계가 없으며, 아미타불을 보필하여 자비의 배를 운행하시며,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심은 관세음보살님과 꼭 같고,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심도 보현보살님과 다르지 아니하다. 중생으로 하여금 원인을 닦음에 널리 6근ㆍ6진ㆍ6식을 사용토록 하여, 과를 증득함에 모두 원통진상(圓通眞常)을 얻도록 하신다. 염불하는 중생을 모두 거두어 서방정토로 돌아가게 하시니, 이 막중한 은혜는 영겁에 잊을 수 없도다. 나무 서방극락세계 무변광치신(無邊光熾身: 가없이 치열하게 빛나는 몸)?대세지보살. _인광대사의 대세지보살송(大勢至菩薩頌) (222p)
-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을 특별히 25원통법의 최후에 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난은 다문제일로서 부처님의 법문을 어느 누구보다 가장 잘 문지(聞持)한 이유이다. 둘째, 사바세계가 음성교체이므로 귀로 듣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근원통을 최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셋째, 처음부터 불생멸심으로 수행함에는 반문공부(返聞工夫)인 이근원통이 좋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깊은 뜻을 살펴보면 모두 사바세계에 있는 아난에게 한하여 이근원통을 제일의 원통으로 선정하신 것이니, 아난과 상근기에는 이근원통법이 가장 적절한 법이 된다. 그러나 상ㆍ중ㆍ하근기에 두루 통하는 법은 오직 염불법인 근대원통이다. 그래서 대세지보살의 근대원통을 오근ㆍ육진ㆍ육식ㆍ칠대의 뒤에다 두신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도 근(根)에 해당하는 법이며, 현재 아미타불을 보좌하시는 좌보처보살이시다. 능엄회상에서는 단 하나의 법만을 선택하셨기에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만 합격이 되고 그 외의 법은 제외된 것이다.(법의 억양抑揚일 뿐이다) _각성스님,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 서문’ 중에서 (232p)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