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 영국에서 유행한 프랑스식 로맨스는 스퀴데리 부인(Madelaine de Scudery)의 『클렐리아Clelia』로 대표되는데, 정상적인 남녀의 관계가 역전되어 여성의 지배적이고 전제적인 힘과 남성의 굴욕적 사랑이 그 기본 양식이다. 로맨스는 여성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벗어나 남성에게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환상을 제공하므로 여성 독자의 마음을 끌며, 바로 그 점 때문에 가부장 사회에 의해 젊은 여성 독자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매도된다.
작가 레녹스는 『여성 키호테』에서 로맨스 작품에 심취되어 사회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세계에 집착하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당대 영국의 합리적인 가치관과 안정된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비현실적인 과거 영웅시대의 위험한 관습들을 비판하고, 이런 왜곡된 가치관에 쉽게 빠지는 것은 주로 여성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이상적인 여성상과 바람직한 여성의 역할을 추구하는 당시의 예절 지침서나 설교집, 도덕적 에세이에서 주로 보이는 교훈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로맨스를 풍자하는 작품인 만큼, 로맨스 법칙과 형식이 자주 제시되어 오히려 환상세계의 매력이 종종 부각되는 등 은연중에 교훈적 전통의 맹점, 사회현실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18세기 영국에 있어서 소설, 로맨스, 리얼리즘, 여성의 관계를 검토해보는 좋은 자료가 된다. ---pp.38~39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당대의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는 성실하고 영리한 여성들에게 행복한 결혼을 선사함으로써 남성 중심적 사상에 순응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이 시치미를 떼거나 장난으로 돌려버리기는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언행에서 그녀의 깊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항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사회 관습에 대해 도전적이고 체제 비판적인 여성들, 자신의 본능과 내면의 열정에 따라 거침없이 행동하는 부도덕한 여성들, 천박하고 경제적 이해타산을 따지는 여성들, 결혼을 위해 교태와 음모 꾸미기를 서슴지 않는 여성들의 행동과 대화에서 우리는 작가의 위장된 목소리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이다. ---pp.88~89
『프랑켄슈타인』에서 작가가 집필 도중에 겪은 여성으로서의 체험 양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괴물은 산고 끝에 출생한 태아의 이미지를 가지며, 생명의 창조를 위해 몰두하고 창조 이후 깊은 잠에 빠지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산고를 겪는 산모의 이미지를 갖는다. 괴물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태아의 성장기를 연상시키며, 빅터는 기형인 태아를 유기한 비정한 부모가 된다. ---p.133
남성 인물들의 모험이 부각된 『프랑켄슈타인』은 한편 “여성”이 부각된 작품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내는 점에서 여성 작가의 원형이며 금단의 열매를 따 먹어 천형을 받게 된 이브이기도 하다. 괴물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타자로서의 여성을 상징한다. 빅터와 괴물 모두 남성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여성인 메리 셸리 자신의 분신들이다.
한편 메리 셸리는 이 작품에서 영웅적인 남성적 자아가 지나치게 확대되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두려운 결과를 괴물이라는 기형적 존재의 탄생과 그로 인한 인간의 공포와 절망과 분노의 끝간데라는 고딕적 분위기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동시에 남성 중심 사회에서 깊이 억압되어 있다가 언제 분출될지 모르는 위험을 바로 괴물의 존재로 응축시키고 있다. 빅터와 괴물은 창조자와 피조물, 주인과 노예이지만, 역할이 뒤집히는 때가 있다. 오히려 빅터보다 괴물이 권력을 갖고 더 웅변적 힘을 휘두르며 작가의 위상을 보이는 순간이다. 이는 안정되어 보이는 기존의 질서가 쉽게 전복될 수 있으며, 그 힘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가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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