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무 속 새집의 횟대에 앉아 있는 암컷은 몸통과 다리 전체가 붉게 달아올라 파랑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지금 파자마를 입고 하늘을 날아 검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꿈속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는 두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과는 반대로, 왼쪽 하단의 나비는 품속에 들어온 꽃을 한가득 가슴에 안은 채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나비의 기쁨은 붉은 색과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반쪽 날개로 절절이 묘사되어 있다.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하다.---'가국현'
불꽃처럼 타오르는 단풍으로 뒤덮인 숲속 풍경이다. 연못조차 붉게 단풍들을 반사시켜 하늘과 땅 그리고 산지사방이 온통 붉게 끓어오르는 만추! 갑자기 천지가 신이 만든 삼면의 거울요지경처럼, 위아래 분별조차 없어, 한발짝 디딜 곳이 어지러워, 천지간에 자유로운 영혼들인 사슴 부부마저 순간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다. 붉은 단풍 위로 가물하게 보이는 핑크색의 기운들은 바로 화가의 신명이요 흥이다. 이 순간 바로 이곳에 화가도 와 있다. 바깥에서 지켜보지 않고 온통 가을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는 사슴의 마음속에 앉아 화가도 넋을 잃었다. 오직 핑크빛 신명만이 홀로 깨어 캔버스 위에서 기뻐 날뛸 뿐이다.---'구병규'
꿈속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는 두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과는 반대로, 왼쪽 하단의 나비는 품속에 들어온 꽃을 한가득 가슴에 안은 채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나비의 기쁨은 붉은 색과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 반쪽 날개로 절절히 묘사되어 있다.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하다.---'김석중'
그림 오른쪽 하단의 벽으로부터 갑자기 툭 불거진 나무판대기(?)와 그 위에 달랑 놓인 모과 세 개는 긴 세월 속에서 아직도 싱싱하기만 한데, 이들로부터 희미한 향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다면 여러분도 이제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그리움의 기억이 이제 막 코끝으로부터 벌름거리기 시작하고 있음을…. 그렇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단순한 기억이라는 뇌의 생리현상을 넘어 가슴 깊이 간직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긴 여행의 시작은….---'김순겸'
저 랜턴에 불을 붙인다면 산예에게 걸린 저주가 풀리고 서수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옛 기상을 회복할 것이다. 깃털은 글 쓰는 자를 상징하는 펜일 것이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입에 오르내림으로써 그 생명이 탄생되고 또 유지되는 것이다. 이놈은 오랜 세월 잊혀지고 화석이 되고 또 그렇게 기다려온 것이다. 관객의 관심으로 마법의 램프에 불이 환하게 켜질 그날을!---'김영일'
아, 이렇게 청량한 느낌이었던가? 겨울의 금강산, 개골산의 실체란? 분명 설경임에도 눈의 볼륨감과 푸근함은 찾을 길이 없고, 나무들마저 의도적으로 배제된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바위의 디테일은 기름기를 싹 제거한 섬세한 근육처럼 미세한 결까지 알알이 드러내 보인다. 시원하다 못해 아플 정도로. 가려울 때 제대로 등을 긁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 기분을 알기 힘들 것이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금강산 만물상도 모처럼 시원했을 것이다. 만물상 머리에 털난 이래(?) 이렇게 알알이 시원하게 묵은때 한번 잘 벗겨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테니까. 작가의 20년 내공이 긁고 후벼낸 나이프 작업이 만들어낸 만물상의 본모습, 오늘 한번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김용선'
남산을 넘어 옥수동 산을 뒤덮은 판자촌 달동네에 어둠이 깔리면 사과 행상을 하시던 어머니가 막내아우를 업고 어린 화가를 데리고 귀가 길에 오른다. 화가의 집은 아마도 가운데 있는 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감나무가 있는 두번째 푸른 기와지붕 집일 것이다. 오른쪽 아래의 예배당에 다녔을 것이고,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신나게 술래잡기ㆍ다방구를 하며 누비고 다녔을 것이고 구슬치기ㆍ딱지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아,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세월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뇌리에 남아 있는 달동네는, 거대한 연극무대처럼 조명이 하늘로부터 휘황하게 내려온 가운데, 이제 막 집집마다 쌓인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질 듯 가볍게 들떠 있는 긴장된 분위기다.---'김정호'
압권인 것은 물고기의 표정이다. 그게 어디 죽은 물고기의 얼굴인가? 물고기의 표정은 분명 모나리자의 미소에 비길 만한 신비로운 그것이다. 물고기의 자세는 더욱 재미있다. 그림을 거꾸로 놓고 보면 오히려 물고기등에 안장을 얹어 그 위에 여인이 올라탄 것처럼 보인다. 여인이 물고기를 이고 있듯 물고기도 여인을 등에 태우고 있을 뿐 아니라 푸른 하늘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초현실적 풍경인데 다다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가 울고 갈 세기적 상상력이다.---'김종하'
여인의 머리카락이 왼쪽으로부터 머리 뒤를 타고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휘돌아 전방으로 뻗어 있다. 이는 들키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간접적으로…라고 하는 여성 특유의 바디 랭귀지와 내면을 관통하는 의식의 흐름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빼어난 수법이다. 재미있는 것은 길게 뻗은 머리카락이 새의 날개형상으로 활짝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김형주'
청춘의 멋진 몸을 갑옷으로 해석한 점이 너무 재미있다. 작가는 이것을 무슨 내복처럼 벗겨낸 다음 멋진 좌대에 받쳐놓았다. 생뚱맞다고 하기에는 벗어놓은 청춘이 너무 멋지다. 이것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나이의 슬픔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대신 입을 수만 있다면 얼른 하나 사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노대식'
소들은 저절로 밭을 갈게 놔두고 뿌려야 할 씨앗자루를 열어 젖혀놓고 신발도 아예 벗어놓고 털버덕 앉아 담배를 한 대 맛있게 피고 있는 남편은 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섹시해 보이는 마누라는 강아지풀만 지그시 깨물고는 눈을 감고 여운을 음미하는 듯한 묘한 표정이라니. 밭 갈고 씨를 뿌리는 농사는 땅에서만 짓는 것이 아니다.---'림용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애초에 관심 밖이다. 구별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나 보다. 갯가에 앉아 저물도록 바다만 바라보던 어린이가 한순간 잔물결에 반사되는 빛 한 조각이 부리는 요술에 넋을 잃었던 기억, 멍하니 바라만 보아도 부자 된 것만 같던 어릴 적 기억 한 조각, 저절로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한 조각, 시간이 멈추는 순간!---'문창배'
태양은 붉게 타오른다. 그 아래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몸통 쪽으로 붙이고, 마치 허공을 유영하듯 태양을 향해 느리게 접근하고 있는 고독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는 몹시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도 절대 권력인 태양을 향해 감히 투쟁하듯 맞서는 모습이 처절하면서도 장엄하기까지 한 것은 아마도 그 나무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신동권'
처마 밑의 유려한 곡선과 정교하게 짜맞춰진 나무들과 고태미가 흐르는 나무들의 생살들을 찬찬히 살피노라면 어느새 코를 찌르는 송진 냄새를 알싸하게 풍기며 피톤치트가 뿜어나올 것처럼 생생한 한옥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뿐인가? 그저 대나무 밭의 댓잎들을 감탄하면서 하나하나 조근조근 헤아리기만 해도 어느새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초여름의 열기가 무색해질 청량한 대숲의 바람 말이다. 좋은 친구가 있고 이 아름다운 집에 당연히 비장의 막걸리 한 사발이 없겠는가? 캬! 그저 생각만 해도 흐르는 땀이 식고 신선조차 안 부러울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이 아닌가?---'오종철'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들이 현대미술의 모노그램과도 같은 장식적 문양으로 표현되어 마치 고가구 표면에 오려박은 백동장식과 같은 고태미가 배어나온다. 그 위에 세 마리 학이 불로초를 물고 노닐고 있다. 이것은 이 하늘이 우리가 사는 그 하늘이 아니고 신선들이 살고 있는 다른 차원의 하늘임을 암시한다. 이 바다와 하늘 그 사이를 음양을 상징하는 푸른 색과 붉은 색의 겹기둥이 전후에 우뚝 서 있고 이 모든 환경을 배경으로 줄 범호랑이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우희춘'
차라리 폭풍우라도 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은 답답한 기운은 아마도 거대한 털실뭉치로 변한 하늘 때문일 것이다. 아름답고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집안에 걸어두기는 왠지 꺼려지는 것은 마치 그림 형제의 유명한 잔혹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잔혹함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화가도 자신을 이처럼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일까?---'이동업'
무심코 시선이 아래로 이동하는 순간 아차, 현기증이 날 정도로 휘황한 빛의 무리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이번에는 꽃이 아니라 항아리의 주둥이와 몸통 상단에 비친 빛으로 주제가 이동한 것인데 지금껏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에 천착했던 작가의 시선이 드디어 근원으로 와 닿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한 번의 클라이막스를 위해 소박하고도 조용히 숨죽이는 모습, 작가의 그림은 이제 한고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이석보'
가을비가 제법 굵은 빗줄기로 투두둑 떨어지는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시냇물은 이내 불어나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귓전을 때리고, 불어오는 가을 바람소리 나그네의 갈 길을 재촉하는데, 찬바람은 어느새 몸속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온다. 한 장의 그림으로 만들어낸 비 오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간결한 선 몇 개만으로 화가가 묘사한 자연은 이렇게 다이내믹하고 감각적인 풍경이다.---'이춘환'
산의 색은 푸르다 못해 보랏빛으로 발전하여 넘쳐나는 기운을 주체 못 하는 형국이다. 이 기운을 수려하게 빠진 주산이 고스란히 넘겨받아 파랗게 빛을 발하고, 그가 뿜어대는 기운으로 청보석처럼 밝고 푸른 빛줄기들이 횡으로 띠를 이루어 마을 뒷산을 향해 거침없이 밀려들고 있다. 그 아래 마을의 집들도 마당도 모두 따뜻한 색으로 이 기운을 한껏 받아들이다 못해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마저 덥혀놓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이한우'
그림 속에서 소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밟고 서 있는 푸른 언덕은 물론 멀리 보이는 산을 포함한 지구라는 땅덩어리 전체를 밟고 서 있는 거대한 존재감이다. 뿐인가? 별 저항감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우고 서 있다. 그리고 다리,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앞발 두 개일 뿐 나머지 두 뒷발과 몸통들은 어디까지 뻗고 닿아 있는 것일까? 작가는 그 거대한 상상력의 나머지를 관객 몫으로 남겨놓은 셈이다.---'전창운'
인물의 몸은 막 도약을 시작하여 허공에 걸려 있고 온 몸에 힘을 자연스럽게 빼고 있다. 얼굴은 없지만 분위기로 만들어낸 표정은 정말로 밝고 자유로워 보인다. 허공과 인물 간에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한순간 탁 터지는 장쾌함이 일품이다.---'정국택'
숲과 마을의 형태적 구분은 이제 더 이상의 의미를 잃고 서로를 색채적으로 보완하는 일에 몰두하는 듯 즐거워 보인다. 화가가 풍경에 쓰고 있는 색깔들은 따로 취향을 물을 것도 없이 필요한 모든 색들은 그저 그 자리에 예로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가히 전색성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색의 축제가 벌어져 있다.---'진양욱'
그림 속의 푸르게 빛나는 장미는 이 한겨울 깊은 산속 외딴집 창가에서 온산과 집앞 개울의 물에 두루 싸인 흰 눈과 더불어 달빛의 세례를 흠뻑 받아 잠을 설치고 있는 중이다. 창밖의 겨울의 냉기를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쌓인 눈에 반사된 푸른 달빛에 매혹된 장미는 뜻 모를 설레임에 달뜬 가슴을 온몸으로 푸르게 푸르게 뿜어내고 있다.---'최광선'
청동의 누드는 이제 한층 자연스러워지고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여유롭게 포즈를 취한 뒷모습은 완전히 무르익은 여인의 뒤태 그 자체며 넉넉한 모성의 감성마저 은은히 풍겨나올 정도다. 아직도 미처 걸러지지 않은 욕망은 벨벳의 붉은 기운이 반사된 왼쪽 옆구리에 남아 있고, 삶의 경험 속에 발견한 행복은 깔고 앉은 하얀 시트에 묻어 있는 푸른 물감으로 가득하다.---'최예태'
이번에도 화가는 자신의 상표와도 같은 푸른 색을 곳곳에 끼워 놓았다. 창틀과 소녀의 머리칼, 어깨와 허벅지 뒤편을 비롯하여 테이블보에 이르기까지 사실은 푸르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 그림에서 푸른 색은 희망과 우울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이중적인 코드로 작용하므로 그림은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게 된다. 여인의 뒷모습은 사춘기 소녀의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부푼 엉덩이를 가진 점이 이채롭다. 부풀다는 단어를 쓸 정도로 이 엉덩이는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소녀의 부푼 기대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아이콘으로 작용한다. 엉덩이는 생식의 상징이며 가슴보다 더 원초적인 여성의 2차성징, 사춘기의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보는 관객들의 마음마저 설레게 만든다.---'최정길'
다양한 형태의 나룻배들은 그 하나하나가 사연을 간직한 화가의 인생 한 토막들일 것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나룻배들은 말없이 한곳에 정박해 있다. 노도 없고 삿대도 없으니 이제 더 이상 강을 건널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오른쪽 말없이 깊어지고 있는 강의 중심江心이 점점 짙어지다 못해 검푸른 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회색에서 푸른 색을 거쳐 검정에 가까운 파란 색에 이르는 완만하면서도 일면 확연한 색의 경사(傾斜)로 인해 배들은 언젠가 강심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강력한 암시가 걸려 있다. 그러나 정작 배들은 그러기가 싫은 모양이다. 일제히 등을 육지 쪽으로 돌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추연근'
원하는 것을 얻은 이상 화가의 손길은 더욱 단호하고 정교해졌다. 전날의 광기의 흔적은 화가의 차분한 손길에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가면서 진眞ㆍ복釋ㆍ미美ㆍ고古ㆍ전典ㆍ길吉ㆍ성成ㆍ덕德과 같은 평소 마음에만 품었던 한자들도 새삼스럽게 떠올라 자연스럽게 화폭을 채워갔다. 그림이 점차 형태를 띄어가자 처음에는 일시적 만용으로만 보였던 뒤집힌 캔바스의 선택은 밭 전田자형의 나무틀과 천의 질감의 확연한 대비효과가 일종의 입체적 조형물이 되어, 화려하게 그려진 도자기의 파편들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묘한 시각적 쾌감을 주기 시작했다.---'한미키'
우선 군청색의 물감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 캔버스를 익숙한 솜씨로 긁고, 또 긁은 날카로운 나이프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으로 그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눈이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할 때가 되? 흰 색으로 뿌리듯 얹어놓은 붓자국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쯤되면 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움직임조차 관객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 격렬한 화가의 연장선상에 누드의 조형이 존재한다. 여인 또한 정확하게 배경의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다. 온몸의 근육을 곧추세우고 피부에는 소름까지 돋아가면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여인의 몸짓과 파란 배경에 작가가 펼쳐놓은 생명의 리듬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 그림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허진호'
시간을 알 수 없는 초현실적 배경은 여전하지만 그림 속에는 어떠한 반전도 없고 다만 오래된 에디슨의 축음기와 붉은 할미꽃이 대화를 나눈다. 축음기가 들려주는 음악이 어쩐지 닐 암스트롱의 색소폰 소리처럼 따뜻할 것 같지 않은가? 꽃과 솜털의 느낌 또한 따스하기 이를 데 없다. 화가의 현란한 기교에 인간의 감성이 깃들어 만들어낸 감동적인 장면이다.
---'황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