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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비도 없는 여름
내 이야기 새로 온 아이 배고픔은 달랠 수 있다 남자애 둘이서만 가엾은 작은 개 고자질쟁이 리셔 오버르바트르 츠반이 사는 저택 독일로 가는 아빠 「소니 보이」 스무 번 듣기 암스테르담의 어느 월요일 피 이모한테 찾아온 손님 미안하다고 하지 마요 꼬부랑 골목 한밤중의 모험 여자애의 방 고양이가 집에서 나가면 저기 울타리 위의 셋 데벤터르로 가는 기차 얼음이 녹을 때 아펠도른 구름도 비도 없던 여름 옮긴이의 글 |
Peter van Ges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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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길었던 그 겨울의 이야기
박희라 (컨텐츠팀)
2012.03.21.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나 이별에 마주한다.
그 이별은 때로는 가족의 것이기도 하고, 친구의 것이기도 하며, 사물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다. 『그 해 봄은 더디게 왔다』는 바로 이러한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1년 반 전에 엄마가 죽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 p.17 토마스는 엄마를 잃었다. 소년의 아빠는 엄마를 묻고 난 뒤 한 주일 내내 밤마다 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물을 넣지 않은 주전자를 가스 불 위에 얹어 놓거나, 얼어붙은 수도꼭지에 말을 걸었다. 엄마의 언니인 피 이모는 토마스를 돌보아 주고, 토마스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년과 아빠가 엄마의 죽음을 외면하던 겨울, 토마스는 학교에서 피에트 츠반과 그의 사촌 누나 베트를 만난다. 유대인인 소년과 소녀는 전쟁의 과정에서 부모를 혹은 아버지를 잃었다. 어느 날 부모님은 독일로 끌려갔고 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 상황을 피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정작 아이들을 덮쳤을 때,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야 하고, 자신을 정리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토마스의 아빠는 아들에게 그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주지 못한다.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그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겪고 있는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토마스의 감정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정확히 정리되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그저 붙잡고 있게 된다. 유대인인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은 베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소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집을 꾸려나가는 것은 아이의 몫이 된다. 베트는 그러한 엄마를 비난하고, 아빠를 잃게 만든 세상을 미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한 친척들의 사진을 가득 놓음으로써 스스로를 과거에 가두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 모두를 잃은 츠반은 부모의 추억을 물어볼 이가 아무도 없고, 스스로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어른들이 자신의 상처를 추리기 위해 필사적인 동안, 아이들 또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더듬고, 기억을 회상한다. "우리 엄마는 손이 언제나 젖어 있었어." "어떻게 알아?" "우라지게 자주 내 코를 꼬집었거든."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밨을 때 난 여섯 살도 채 안 됐어. 그래, 우리 아빠, 아빠 손은 아직도 기억이 나. 손가락이 길고 검은 털이 나 있었어. 아빠는 언제나 짙은 색 양복을 입었고 엄격해지고 싶을 때면 아주 나지막하게 말했지." --- p.207 우리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둘 다 던 턱스 거리의 환한 방이랑 거기서 열린 생일잔치랑 이제는 다 죽어버린, 웃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 p.208 작가 페터 반 게스텔은 전쟁의 비극이나 유대인 학살의 끔찍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이 겪은 이별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아픔을 이겨내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사람들은 꿋꿋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한가지 아픈 질문이 남는다. 아이들이 겪었던 그 슬픔이, 아픔이, 어른들의 올바른 선택이 있었더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
어느 날 피 이모가 나를 데리러 왔다.
“얘, 너 발 좀 씻어야겠다. 일주일만 우리 집에 가 있자꾸나.” “아빠는요?” “아빠는 우리가 잘 돌봐 줄 테니 넌 걱정하지 마.” 이모는 나 같은 남자애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심지어 나는 길에서 이모 손을 잡아야 했다. 정말이다. 내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보름이나 이모네 집에 있었다. 그런 다음 이모가 레인반 운하 근처에 있는 우리 집에 다시 데려다 주었다. 아빠는 그동안 수염을 깎았다. 다행히 아빠가 나를 잊어버리지 않아서 기뻤다. 엄마를 묻었을 땐 아직 방학이었다. 아빠가 신문에 부고를 싣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선 아무것도 몰랐다. 나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누가 복도에서 밀치거나 등판에 사탕 껍질이라도 붙이고 가면 소리쳤다.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 p.18 다시 호허 슬라이스 가까이 왔을 때, 어떤 남자가 난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남자는 가로등 기둥을 꼭 붙잡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너무 어색하게 움직여서 누군지 당장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녕, 아빠.” (……)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빠가 환성을 내질렀다. “나, 일자리가 생겼어. 독일에 갈 거야. 토마스.” 울음이 터졌다. 내가 운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오늘 뺨을 맞아서도 아니고 리셔 오버르바터르가 소리를 빽빽 질러서도 아니었다. 아니, 달리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 난 울었다. --- pp.58-59 “너희 엄마 이야기를 해 줘.” “내가 미쳤냐?” “어땠어? 너희 엄마가 아직 살아 있을 때……그 얘긴 하고 싶지 않아?” “우리 엄마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엄마는 하루 종일 내 등짝만 후려쳤어.” (……) “계속 얘기해 봐. 그럼 나도 잠이 잘 올 거야.”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많아. 하지만 엄마가 아팠을 때 기억은 다 나. 크리스마스 때…… 지난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지지난해 크리스마스. 의사가 와서 보고 엄마가 독감에 걸렸으니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 의사가 돌아가자 엄마는 너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 댔어. 너 정말 이런 것까지 알고 싶니?” “아니, 하지만 네가 말하고 싶다면 말을 해야 돼.” 한동안 우리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츠반이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 pp.179-180 “엄마랑 싸운 걸 후회하니?” “누군들 안 그러겠어?” “엄마가 죽었을 때, 봤니?” “잠깐. 아무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는데 아빠가 눈치를 챘어. 그리고 얼른 병실에서 데리고 나갔어.” “너희 아빠는 너희 엄마를 생각하니?” “아빠 마음속을 내가 알 게 뭐야.” 베트가 다시 웃더니 일어나서 내 앞에 선다. 내가 말한다. “아마 츠반은 너한테 긴 편지를 쓸 엄두를 못 낼 거야.” 베트가 안경을 벗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말한다. “넌 눈이 참 예뻐.” 베트가 다시 안경을 쓰고는 말한다. “내가 미국에 가면 널 데려갈게.” 나는 씩 웃고 만다. 햇빛이 쏟아지는 공원에서 한 약속은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낫다. --- pp.393-394 |
열두 살 토마스는 아빠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전쟁이 끝난 바로 그해 크리스마스에 티푸스로 죽었다. 작가인 아빠는 원래도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지만, 엄마가 죽은 뒤로는 현실 감각이 더 떨어져서 토마스를 챙길 상황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웃에 사는 피 이모가 간간이 들러 토마스를 챙겨 주곤 한다. 늘 생각이 많은 토마스에게 학교는 성가신 장난을 거는 악동들이 득시글거리고 잔소리꾼 선생이 버티고 있는 재미없는 곳일 뿐이다. 게다가 토마스가 좋아하는 여자아이 리셔는 아무리 관심을 끌려 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2월 어느 일요일, 토마스는 이모네 집에 다녀오다가 작년 가을에 전학 온 피에트 츠반을 우연히 만난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 출신인 츠반은 아빠 친구네 다락방에 숨어서 나치 점령기를 넘겼다. 수용소에 끌려 간 엄마 아빠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은 숙모인 요스 아줌마네 집에서 산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토마스와 츠반은 민족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조금씩 가까워진다. 어느 날 츠반과 놀다가 요스 아줌마네 집까지 따라간 토마스는 요스 아줌마의 딸이자 츠반의 사촌누나인 베트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날 요스 아줌마에게 처음으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독일에 일자리를 얻은 아빠는 토마스를 피 이모네 집에 맡기고 떠난다. 토마스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거리를 헤매다가 츠반을 찾아간다. 집에 혼자 있던 츠반은 아빠의 유품인 축음기를 꺼내 「소니 보이」란 노래를 들려준다. 이 축음기와 음반은 미국에 사는 아론 삼촌이 193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 왔을 때 아빠에게 선사한 것이고 츠반의 아빠가 츠반을 소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두 아이는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간다. 피 이모가 다리를 다친 사실을 알게 된 요스 아줌마가 토마스를 몇 주 동안 맡기로 하면서 아이들의 우정과 첫사랑에 날개가 돋는다. 자신의 감정을 가리는 데 익숙했던 세 아이는 마침내 침묵의 얼음장을 깨고 자신들이 경험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금기를 깨고 발화함으로써 기나긴 치유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작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츠반과 베트를 통해 다른 이의 아픔에도 눈을 뜨고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온다. 요스 아줌마가 잠시 친척집에 다니러 갔을 때,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세 아이는 잠시나마 상실의 경험을 잊고 다시 아이가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강이 마침내 녹기 시작할 무렵 요스 아줌마의 신경증이 심해지면서, 세 아이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게 된다. 결국 츠반과 베트는 츠반이 나치 점령기에 숨어 살던 츠반 아버지의 친구 집이 있는 데벤터르로 떠나고 토마스는 피 이모네 집으로 되돌아간다. 토마스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으리라는 예감 때문인지 며칠 호되게 앓아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따라 이번엔 아펠도른으로 떠난다. 한여름이 되어서야 암스테르담에 돌아온 토마스는 츠반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야 츠반이 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네덜란드 3대 청소년 문학상 동시 수상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와 츠반의 이야기, 나와 베트의 이야기, 그리고 그 길었던 겨울 이야기를.” 전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아이의 우정과 사랑, 만남과 이별 이야기. 2차 대전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아이들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에 눈을 돌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아이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 토마스는 전쟁이 끝나고 몇 달 뒤 크리스마스에 엄마를 티푸스로 잃었고, 유대인인 츠반은 엄마와 아빠 모두를, 츠반의 사촌누나 베트는 유대인이자 공산주의자인 아빠를 홀로코스트로 잃었다. 세 아이는 가슴 깊이 응어리진 아픔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친구가 되고 사랑에 눈떠 간다. “어쩌면 겨울이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라.”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서운 추위는 아이들 마음속 풍경 그 자체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마음속의 얼음장, 세상의 얼음장이 녹아내리기를 함께 기다린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봄이 찾아온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되어 황금연필상을 비롯한 네덜란드 3대 청소년 문학상을 석권한 작품으로 “희망에 대한 위대한 소설”, “어른이 되는 법에 관한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의 작가 미리암 프레슬러의 번역으로 독일에 소개되어 2009년 독일 아동·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전쟁과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시리면서도 결코 암울하지 않게 펼쳐진다. 상실의 고통,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이 책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을 끌어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을 잃는 것, 특히 유년기에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겪을 수도 있는 수많은 상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축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토마스와 츠반, 베트는 바로 그런 고통을 겪은 뒤에도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 간다. 세 아이는 고통에 짓눌린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대놓고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비록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때론 활기차고 때론 명랑하기까지 한 걸음으로 제 앞에 펼쳐진 길을 그저 담담하게 걸어간다. 반면, 어른들은 기억에 옭매인 채 허우적대기 바쁘다. 그들은 아이들을 보듬어 주기는커녕 제 상처조차 가누지 못해서 휘청거린다. 예컨대 토마스의 아빠는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안쓰럽고 무기력하며 현실 감각이라곤 없는 존재이고, 베트의 엄마 역시 딸의 뒤치다꺼리를 받으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러다 결국 신경증이 도져서 요양을 떠나는 귀부인으로 그려진다. 세 아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상처를 서로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으면서 친구가 되고 사랑에 눈떠 간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마침내 치유가 시작된다. 실제로 몹시 추웠다고 전해지는 1947년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에는 세상을 온통 뒤덮은,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얼음에 대한 묘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사람들 마음속까지 뒤덮은 얼음이 마침내 녹아내리는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는 희망’에 바치는 벅찬 송가처럼 느껴진다. 너무 많은 상실, 너무 많은 이별, 너무 많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오늘, 연약하면서도 힘 있는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책 고통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침묵일 것이다. 저자 페터 반 게스텔이 이 작품에서 선택한 전략이 바로 침묵이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표출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큰 감정의 파고를 만든다. 또한 슬픔에 짓눌리지 않은 채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희망에 대한 조바심 없이 희망에 손을 내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정적 속에 잠잠히 가라앉아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결코 우울하거나 처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활기차고 명랑하다. 사춘기를 맞은 열두 살 사내아이답게 짐짓 걸걸한 척하는 토마스의 눈과 입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터라, 구절구절마다 풋풋하고 정제되지 않은 힘이 팔딱거린다. 아이들이 둘이나 셋이서, 혹은 어른까지 여럿이서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 천진할뿐더러 그들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구김살도 거의 없다. 언뜻 보기엔 의아하지만 어쩌면 그 모습이 차라리 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고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웃고 떠들고 친구를 만나고 어느 날엔 사랑에 눈을 뜨는 법이므로. 페터 반 게스텔이 선택한 침묵은 독일어판 번역자 미리암 프레슬러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서 얘기하자면 “말할 수 없는 것,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침묵이다. 아이들은 참새처럼 쉼 없이 재잘거리고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기 바쁘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격렬한 말이나 몸짓으로 대놓고 표출되는 법 없이, 그저 어쩌다가 문득 흘린 대수롭잖은 한두 마디로, 아무런 의도 없이 무심코 지은 표정이나 몸짓으로,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갑자기 흘린 눈물로 표출된다. 이러한 서술 특징은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과 은근한 유머 감각과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감정을 너무나 무분별하게, 그것도 날것으로 노출하는 작품들이 넘쳐나는 지금, 이 작품의 절제된 표현법은 결코 흔치 않은 미덕이라 하겠다.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안네 프랑크의 다락방이 있던 바로 그곳,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펼쳐진다. 나치의 검거를 피해 지인의 집에 은신한 끝에 살아남은 츠반은 그때 그곳에 실존했던 유대인들―츠반처럼 살아남았거나 안네 프랑크처럼 희생되고 만 수많은 이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만든다.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에서도 전쟁은 낯설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보아 온 대부분의 작품과는 달리 아이들의 일상과 심리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소리를 높여서 전쟁의 잔혹함을 폭로하지는 않지만, 세 아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쓰라린 상처에는 새살이 돋고,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지막이 일깨운다, 먼저 떠난 이들을 마음 깊이 애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