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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속의 폭풍

바늘구멍 속의 폭풍

문학과지성 시인선-151이동
리뷰 총점8.5 리뷰 2건 | 판매지수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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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수상내역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17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07168
ISBN10 893200716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을 따뜻하게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 p.11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 p.89
가지가 되다 말았을까 잎이 되다 말았을까
날카로운 한 점 끝에 온 힘을 모은 채
가시는 더 자라지 않는구나

걸어다닐 줄도 말할 줄도 모르고
남을 해치는 일이라곤 도저히 모르는
그저 가만히 서서 산소밖에 만들 줄 모르는
저 푸르고 순한 꽃나무 속에
어떻게 저런 공격성이 숨어 있었을까
수액 속에도 불안이 있었던 것일까
꽃과 열매를 노리는 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일가
꽃을 꺾으러 오는 놈은 누구라도
이 사나운 살을 꽂아 피를 내리라
그런 일념의 분노가 있었던 것일까

한뿌리에서 올라온 똑같은 수액이건만
어느 것은 꽃이 되고
어느 것은 가시가 되었구나
--- p.41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8.5

혜택 및 유의사항?
-한없이 고요한 폭풍-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d**********8 | 2000.05.30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김기택의 시들은 참으로 독특하다. 그의 시적 대상들은 큰 것, 잘 알려진 것, 예쁜 것, 화려한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의 눈은 차원이 다른 공간을 바라보려 꿈꾸는 과학자처럼 밝은 대낮에 어둠을 보고, 뱃속의 태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정갈한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먼지 덩어리를 찾아내고, 식탁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갈비요리에서 소·돼지의 숨넘어가는 비명 소;
리뷰제목
김기택의 시들은 참으로 독특하다. 그의 시적 대상들은 큰 것, 잘 알려진 것, 예쁜 것, 화려한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의 눈은 차원이 다른 공간을 바라보려 꿈꾸는 과학자처럼 밝은 대낮에 어둠을 보고, 뱃속의 태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정갈한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먼지 덩어리를 찾아내고, 식탁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갈비요리에서 소·돼지의 숨넘어가는 비명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작고 가려지고 감춰지고 잊혀진 것들, 있으되 없는 듯 취급 받고 무심하게 버려진 것들, 빛을 잃고 떠도는 어두운 것들에 천착한다. 김기택의 첫 시집『태아의 잠』에 펼쳐진 상상력의 길은 '인간적인 것'으로만 머무르기 쉬운 시적 상상력의 범위를 인간 아닌 것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확대시켜놓았다. 소, 돼지에게도, 바퀴벌레와 송충이에게도 삶의 욕구와 이해가 있다는 그의 사상, 그것은 단순한 휴머니즘이나 장자류의 자연친화하고는 거리가 먼, 참으로 신선한 김기택만의 것이었다. 두번째 시집『바늘구멍 속의 폭풍』에 이르러 그의 작은 것에 대한 천착은 절정에 이르른다.『바늘구멍 속의 폭풍』은 뿌연 시집이다. 시집을 펼치는 순간 시집 구석구석에서 뿌옇게 날아오르는 먼지들. 공중에 떠다니는, 걸레로 닦아야 하는 쓰레기로서의 먼지가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떠나 살 수 없는 먼지의 세계. 생명 알갱이들. 시집을 따라서 먼지와 함께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공기 속에 가득한 이 먼지들은 무엇인가? 한때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식물들의 풍화된 모습이 아닌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사랑했을지도 모를, 얘기하고 만지고, 그 눈동자만 생각해도 온몸에 열이 나고 떨렸을 어떤 아름다운 몸을 내가 지금 마시고 있지 않은가?-(김기택『태아의 잠)후기) 먼지의 세계에 대해 이토록 세심하게 관심 쏟는 시인을, 예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김기택이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웠다. 먼지의 모습이 그러하듯 김기택의 시들은 조용하다. 시들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와 왁자한 웃음소리마저도 조용하다. 어쩌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김기택의 시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조용한 가운데 휘몰아치는 폭풍. 그의 시들은 한없이 고요한 폭풍이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파워문화리뷰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오***스 | 2018.05.0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해골 껍데기에 붙은 얼굴         눈이 피곤하고 침침하여 두 손으로 잠시 얼굴을 가렸다   손으로 덮은 얼굴은 어두웠고 곧 어둠이 손에 배자   손바닥 가득 해골이 만져졌다   내 손은 신기한 것을 감지한 듯 그 뼈를 더듬었다   한꺼번에 만져버리면 무엇인가 놓쳐버릴 것 같아   아까워하며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나갔다  
리뷰제목

해골 껍데기에 붙은 얼굴

 

 

 

  눈이 피곤하고 침침하여 두 손으로 잠시 얼굴을 가렸다

  손으로 덮은 얼굴은 어두웠고 곧 어둠이 손에 배자

  손바닥 가득 해골이 만져졌다

  내 손은 신기한 것을 감지한 듯 그 뼈를 더듬었다

  한꺼번에 만져버리면 무엇인가 놓쳐버릴 것 같아

  아까워하며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나갔다

  차갑고 무뚝뚝하고 무엇에도 무관심한 그 물체를

  내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그 튼튼한 폐허를

 

  해골의 껍데기에 붙어서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며 표정을 만들던 얼굴이여

  마음처럼 얇디얇은 얼굴이여

  자는 일 없이 생각하는 일 없이 슬퍼하는 일 없이

  내 해골은 늘 너를 보고 있네

  잠시 동안만 피다 지는 얼굴을

  얼굴 뒤로 뻗어 있는

  얼굴의 기억이 지워진 뒤에도 한참이나 뻗어 있는 긴 시간을

  선글라스만한 구멍 뚫린 크고 검은 눈으로 보고 있네

 

  한참 뒤에 나는 해골을 더듬던 손을 풀었다

  순식간에 햇빛은 살로 변하여 내 해골을 덮더니

  곧 얼굴이 되었다

  오랫동안 없어졌다가 갑자기 뒤집어쓴 얼굴이 어색하여

  나는 한동안 눈을 깜박거렸다 겨우 눈동자를 되찾아

  서둘러 서류 속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 김기택, 얼굴

 

 

얼굴은 표면으로 드러나 있다. 우리는 그 표면을 눈으로 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얼굴은 그러므로 시각을 감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대상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고 있는 신기한 사물이다. 김기택의 위 시에 표현되는 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우리는 손바닥 가득 해골이 만져지는 것을 느낀다. 얼굴의 이면에는 해골이 있다. 얼굴은 그 해골에 살을 덧붙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해골은 어떻게 생겼는가? “선글라스만한 구멍 뚫린 크고 검은 눈을 가진 해골은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과는 다른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 해골을 시인은 얼굴 위로 느낀다. “해골의 껍데기에 붙은 얼굴을 내 손은 신기한 것을 감지한 듯 그 뼈를 더듬는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나가면서 시인은 내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그 튼튼한 폐허를감상한다.

 

해골이 튼튼한 폐허라는 시인의 말에 주목해 보자. 해골이 없으면 얼굴도 당연히 없다. “해골의 껍데기라는 시구가 암시하듯 얼굴은 해골 위에 붙은 껍데기=살일 따름이다. 얼굴은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며 표정을 만들지만, 그 표정의 이면에 해골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표정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내 해골은 늘 너를 보고있다. 요컨대 해골은 얼굴의 타자이다. =타자가 되고, 얼굴=해골이 되는 시의 세계는 표면과 이면을 가로지르는 시적 사유로 넘쳐난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이유는 어둠 속에서는 무엇보다 시각이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의 차이가 얼굴과 해골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얼굴을 만지는 순간 우리는 해골 또한 느끼는상황에 곧바로 직면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의 3연에서 시인은 해골을 더듬던 손을 풀자 햇빛이 순식간에 살로 변하여 해골을 덮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어둠이 사라지자 빛의 얼굴이 다시 살아난다. 해골이 뒤로 물러나고 얼굴이 표면으로 드러났으므로 시인의 감각은 시각 중심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이제 보이는 얼굴이 전부가 된다. 시각의 세계에 맞춰 눈은 서둘러 서류 속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일상의 얼굴을 회복한 존재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노동은 빛의 세계에 드러난 얼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얼굴은 또 다시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는 표정을 만들어낸다. 일상의 반복이고, 얼굴-표정의 반복이다.

 

김기택은 이렇게 얼굴로 살아가는 일상인들의 강박을 얼굴과 해골의 미묘한 대립을 통해 표현한다. “마음처럼 얇디얇은 얼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부서지는 마음만큼이나 덧없이 나타났다가는 이내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얼굴-표정에 비한다면, 해골은 자는 일 없이 생각하는 일 없이 슬퍼하는 일 없이늘 얼굴을 보고 있다. 얼굴이 슬퍼한다고 해서 해골이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인은) 해골에는 표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얀 바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해골의 형상을 상상해 보라

 

시인은 눈으로 상상하지 말고 손으로 상상하라고 이야기한다. 눈으로 상상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손으로 상상하면 보인다는 것일까? 김기택의 이 시는 이렇듯 손으로 상상하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지금 이 순간 어둠 속에서 손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보자. 그러면 빛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던 해골이 손바닥에 느껴지고, 그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김기택은 온몸으로 느끼는 그것이 바로 당신=타자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얼굴 속에 해골이라는 타자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타자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김기택의 시작(詩作)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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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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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김기택의 시집을 모두 읽게 될 거야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아**르 | 2017.12.08
평점5점
우리의 일상은 바늘 구멍 속의 폭풍, 그 연속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아**르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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