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 독일 시인. 뒤셀도르프 출생. 본명은 하리 하이네(Harry Heine). 유대인 포목상 장남으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뒤 하인리히로 개명하였다. 어린 시절 프랑스 지배 아래서의 압박과 봉건적 독일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열망은 전 생애를 일관하는 사상이 되었다. 1819년 본대학에 입학, 이어 베를린대학·괴팅겐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문학·철학에도 관심을 가져 A.W.슈레겔과 G.W.F.헤겔 등의 강의를 듣고 변증법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21년 사촌 자매에 대한 사랑과 실연의 체험을 통해 완성된 처녀시집 《시집》을 발표하였고, 23년 비극 《라트크리프》 《아르만졸》과 시집 《서정삽곡(抒情揷曲)》 등을 내놓아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하였다. 졸업 후 변호사 개업에 실패하고 《여행그림(1826∼27)》 《노래책(1827)》 등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의 서정시는 소박한 민요풍의 리듬과 풍부한 음감의 언어가 조화되어 형상을 명확하게 조명, 독일 가곡에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노래책》 중의 시에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인류의 해방을 지향하였으며, 《여행그림》에서는 교회나 귀족을 날카롭게 비판하여 발매금지 처분을 받는 등 낭만적·서정적 범주에서 벗어나 냉혹한 현실에 대한 냉소와 편협한 독일인에 대한 반항을 담기 시작하였다. 28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여행기의 대작 《이탈리아 기행》을 썼다. <인류해방을 위한 전사>로서의 사명을 고하며 정치선언을 하였지만 객혈을 하는 등 몹시 쇠약해져 30년 헬골란트섬에서 요양을 하였다. 그 때 파리의 7월혁명에 대한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봉건독일에 대항할 결의를 새롭게 하였으나 정부비판에 대한 죄목으로 체포의 위협을 느껴 31년 파리로 망명, 그곳에서 제 2 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는 먼저 망명해온 L.뵈르네 및 프랑스 낭만파 시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정열적인 문필활동을 전개하였다. 《프랑스의 상태(1832)》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1834)》 《낭만파(1836)》 등을 써서 프랑스의 실태를 독일에 알리는 한편 독일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프랑스인에게 소개하여 독일·프랑스 문화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체제유지를 위한 반동정책에 계속적인 비판을 가하자 독일은 <청년독일파>의 대표적 작가로 지목, 35년 그의 모든 저작의 발매금지 처분을 내렸다. 그 후 소설 《플로렌스야화(1836)》 등의 순수문학 작품을 썼고, 독일 낭만파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장편풍자시 《아타트롤(1841)》과 혁명적 장편시 《독일, 겨울이야기(1843)》, 44년 파리에 와 있던 K.마르크스와 친교를 맺으면서 《교의》 《슐레지엔의 직조공》 등을 발표하였다. 48년 2월혁명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8개월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대한 비관과 신에 대한 귀의를 소망하기에 이르든 극한상황에서 발표한 《로만체로(1851)》 《고백(1854)》 《메모아르(1854)》 《회상(1855)》 등에는 고통을 해학적으로 감싸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실연의 슬픔과 사랑의 정열을 노래한 서정시인에서 반(反)전통적·혁명적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그리고 세상을 비관하며 신으로의 귀의를 소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최대의 혁명적 민중시인으로 평가된다. 부르주아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에로의 과도기에 서 있던 시인의 깨어 있는 자각과 신랄하고 독자적인 필치는 독일문학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또한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을 스스로의 모순이라 여기며 구현하였던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현대성을 느낄 수 있다.
1946년 해남 출생. 전남대 영문과 수학. 남민전 사건으로 오랫동안 투옥생활(1979~1988). 시집으로 『진혼가』『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사랑의 무기』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프란츠 파농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하이테,브레히트,네루다 시집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