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지점은 총 시청시간이나 TV 시청 그 자체로 인한 영향보다는 프로그램에 담긴 내용이 미칠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폭력이나 욕설, 유해한 광고나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영웅의 폭력은 괜찮다.’처럼 프로그램이 은연중에 퍼뜨리는 가치기준에 대해 걱정한다.
우선 직접 실험해 보기를 권한다. 아이가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며 노는 모습을 그냥 가능한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라. 몇 분만 지나면 아이의 눈이 풀리고 초점이 없어지며, 입은 헤벌어지고 몸이 축 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의 최면 효과는 신속하게 발휘된다. 인터랙티브 게임을 할 때는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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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생애 첫 3년은 사람의 한 평생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감각과 정서, 신체적으로 뭔가 부족하다면 발달이 지체될 것이고, 지나치게 자극이 많다면 신경질적이며 매사에 불만스럽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아이는 주어진 감각적 인상들을 그대로 감각 기관 속으로 받아들인다. 어른과 달리 원치 않는 정보를 거르거나 가려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환경이다. 만일 부모가 아기를 텔레비전 앞에서 재운다면, 아니면 2살짜리 아기를 텔레비전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속도의 전자 영상에 내맡겨버린다면, 그들의 감각은 너무나 민감하고 연약한 시기이기 때문에 분명 아이의 저 깊숙한 곳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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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2살이 되었는데도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2살 반 된 아이들이었는데 말 그대로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했다. 꿀꺽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왈드는 이들을 너무 이른 나이에 텔레비전에 지나치게 노출된 경우로 분류했다. 듣고, 배우고, 대화를 주고받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상대방이 끝까지 말하기를 기다린 뒤 말하는 능력 역시 손상되었다. 왈드는 한 아이의 예를 들었다.
“그 아이는 방으로 들어와서는 당신 곁을 그대로 스쳐지나간다. 장난감 상자를 바닥에 놓아두어도 본체만체 지나치고, 목적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보지 않는다.”
관찰 능력 역시 텔레비전 시청으로 증진되진 않는다. 아이들이 꽃과 동물, 새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만나본 많은 유치원, 저학년 교사들은 TV 시청시간이 중상 정도인 아이들이 감각으로부터 ‘위축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들에게 ‘모래 한 알 속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치유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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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어린 아이들은 미디어와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TV 속 폭력 장면이 이들에게는 사실이다. 14개월 된 아기들이 만화와 코미디 쇼의 폭력을 모방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공격적, 폭력적 행동을 습득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22년 동안 추적했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폭력적인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것과 성인이 되어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TV 시청이 아이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태니스 맥베스 윌리엄스는 캐나다 로키 산맥의 노텔 지역에 TV가 들어오는 과정을 자연적 실험을 통해 관찰했다. 태니스는 텔레비전이 마을에 들어오고 난 후 노텔 지역 아이들의 공격적 행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은 성별의 구별 없이 동일했으며, 언어폭력과 신체폭력 모두 증가했다. 처음부터 폭력성 수치가 높았던 아이들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낮았던 아이들도 점차 수치가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노텔에 텔레비전이 들어온 지 2년이 지난 후에는 훨씬 분명해졌다. 그 결과는 지능지수의 차이로 설명할 수도, 사회적 계층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특정한 프로그램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TV 시청 자체가 원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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