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떠난 뒤로 내 머릿속을 온통 뒤덮고 있는 질문을 언니에게 던졌다.
“엄마가 돌아오긴 할까?”
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케이트 언니의 ‘아니.’란 말이 천장에 부딪혔다가 다시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일 년만 있다가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하게 울렸다.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 그냥 잠깐 가 있는 거라고.”
“아빠하고 별거할 때처럼?”
나는 그 말을 짐짓 못 들은 척했다.
“엄마는 일 때문에 가는 거라고 했어.”
나는 달력에 엄마가 돌아오겠다고 한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엄마가 떠난 날에서 꼭 일 년째 되는 날이었다. 언니가 ‘그걸 믿니? 이 바보야.’ 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전에도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여러 번 보았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유리 몽돌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언니는 손톱에 바른 초록색 매니큐어 젤을 괜히 긁었다.
“난 네가 엄마를 왜 감싸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널 두고 떠났잖아.”
“엄만 돌아올 거야. 약속했어.”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나한테 계획이 있어.”
언니가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것도 엄마하고 똑같은 버릇이었다.
“계획이라니?”
언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야.”
“엄마를 캐나다에서 돌아오게 한다는 네 계획이란 게, 고작 학교 창작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라고?”
언니 얼굴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엄마 냄새」중에서
해너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주문해야 할 차례였다.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파란색으로 결정했다. 다섯 가지 색 모두 파란색으로……. 그런데 손을 막 들려는 순간, 그레그의 양말이 보였다. 한쪽은 목이 긴 갈색이고, 다른 쪽은 목이 짧은 회색이었다.
나는 반 아이들의 종아리를 차례로 살피기 시작했다. 양말이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맥의 양말은 한쪽이 올라가 있었고 다른 쪽은 내려와 있었다. 조시의 양말은 양쪽 다 발목으로 흘러내려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혔다. 해너의 양말은 아예 짝짝이였다. 감사하게도 브리짓만은 까만색 아가일 체크무늬 양말을 양쪽 모두 무릎까지 딱 맞게 올려 신고 있었다.
내가 양말 탐구에 빠져 있는 사이에 다른 아이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 브리짓이었다. 브리짓은 손을 높이 쳐들고서 마구 흔들어 댔다. 해너는 짐짓 브리짓을 외면하고서 그레타의 이름을 불렀다.
“해너, 네 아이디어 정말 좋아.”
그레타가 해너에게 칭찬의 말을 했다.
“고마워.”
브리짓의 손은 여전히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다음은…… 그레그.”
“그걸 계속 손목에 차고 다닐 거야?”
“그럼.”
그때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이제 의견은 하나만 더 받도록 하자.”
‘어서 손을 들어. 해너한테 파란색 팔찌를 사겠다고 말해.’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양말 생각뿐이었다. 우리 반 스물두 명 중에 오직 네 명만이 짝이 맞는 양말을 신고 있었다. 갑자기 누구나 맨발에 샌들만 신던 여름이 그리워졌다. 그러면 양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뻔뻔한 거짓말」중에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6시 30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저녁을 먹을 시각이었다.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선반의 피규어를 다시 배열했다. 그런 다음 뒤로 약간 물러서서 감상했다. 아름다웠다. 그제야 뻣뻣하던 목이 풀렸다.
그렇지만 이안에게 나쁜 일이 닥칠 거라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내가 뭐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이안이 혼자 아파하거나 무서운 일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안이 옆방에서 레고를 쌓으며 놀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장을 서랍에 넣어 두고 방에서 나왔다. 아빠가 저녁을 준비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해너 아빠는 최고의 요리사였다. 차라리 해너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우리 집 주방에서는 피자나 짜장면, 그게 아니면 세제 냄새뿐이었다. 이제 더는 엄마가 만든 땅콩버터 초콜릿 칩 쿠키나 걸쭉한 시나몬 사과 소스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심지어 냄비가 달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빠!”
아빠를 불러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아빠!”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계단을 쿵쿵 내려갔다. 창문 너머로 주황색 노을이 보였다. 이안은 소파에 앉아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 파괴왕 녀석! 오늘은 나한테 말 걸 생각도 하지 마.’
주방을 힐끗 보았지만, 식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싱크대도 깨끗했다. 서재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아빠는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화면에 뜬 글자에 쉼 없이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중에서
이제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를 차례였다. 갈색 코듀로이 바지에 분홍색과 갈색이 섞인 긴소매 티셔츠를 집었다.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 오른팔, 왼팔, 머리. 티셔츠 매무시를 가다듬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주름이 잔뜩 져 있었다. 이런 건 입을 수가 없잖아! 티셔츠를 벗었다. 오른팔, 왼팔, 머리. 오른쪽이 안으로 가게 접어서 옷 바구니에 잘 넣은 다음 쪽지를 남겼다.
‘다림질해 주세요.’
제대로 쓰느라 네 번이나 다시 썼다.
6시 10분. 다행히 갈색 바탕에 크림색 스웨터는 깨끗했다. 스웨터를 입고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번에는 머리가 메두사 같았다. 빗,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해.’
‘아니야.’
‘다시 할 수밖에 없잖아!’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오른쪽, 왼쪽, 뒤통수.
‘다시.’
6시 20분.
양말을 집어 들었다. 오른발 신고, 왼발 신고. 이제 갈색 부츠다. 왼쪽 밑창에 흙이 묻어 있었다. 화장실로 가서 수건에 물을 적신 뒤 부츠 밑창을 닦아 냈다. 그다음엔 오른쪽. 혹시 못 본 흙이 있을지도 몰라서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꼼꼼히 살폈다.
---「거짓말의 조각」중에서
‘나’라는 존재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들긴 하지만, 걱정과 싸우는 일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었다.
일기장은 차에 두고 내렸다. 해너네 집까지는 아빠가 데려다주었다.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휴대폰이 바르르 떨렸다. 라이안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창작시 낭송 대회 우승작인 서배스천의 [바다] 낭송 동영상 링크가 함께 왔다. 영상은 조회 수가 벌써 1,000회나 되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다음 창작시 낭송 대회에 출품할 시는 이미 써 두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였다.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해너네 마당으로 후진해 들어왔다. 오늘은 해너가 이사하는 날이었다. 해너 아빠는 요리사로 취직했다. 빅레드 토마토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하필이면 시애틀에 있었다.
해너가 달려나왔다. 나는 해너를 껴안으면서 두 가지를 꾹 참았다. 숫자를 세지 않아야 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했다.
우리는 함께 이층 해너 방으로 올라갔다. 옷장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삿날의 혼돈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손을 맞잡고 있었다. 내 뺨에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별 인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