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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삶에 홀리다

꽃 피는 삶에 홀리다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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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세이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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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36g | 142*207*30mm
ISBN13 9788993824674
ISBN10 8993824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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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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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나빠져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야가 좁으면 어떻게 될까. 나쁠 게 없다. 보이는 것만 보면 된다. 본다고 다 보이지도 않는다. 귀가 나빠져 병원에 갔다. 의사는 가는귀라고 걱정했다. 괜찮다. 큰소리치기를 바라지 않거니와 들리는 것만 들으면 된다. 듣는다고 다 들리지도 않는다.
아뿔싸, 문 열자 봄이 가고 버들개지가 진다. 구름 가고 구름 와도 산은 다투지 않는데,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삶은 이운다. 짧아서 황홀하다, 말하고 싶다.---p.5

1955년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다. 전시에 도움을 준 미국인 학자가 소 그림을 칭찬했다. “중섭의 소는 스페인의 투우처럼 박력 있다.” 이 말을 들은 이중섭이 눈물을 글썽이며 분을 참지 못했다는 것이 동석한 화가들의 증언이다. 그의 소는 화면을 뛰쳐나올 듯 역동적인 게 맞다. 그런데 왜 골이 났을까. 그는 반박했다. “내 소는 한우란 말이야!”---p.106

나그네의 심상을 처연하게 만드는 덧없음은 형상이 아니라 색깔로 구현된다. 한낮의 바다를 지배하던 에메랄드와 코발트블루는 생생한 실존이다. 그것은 현실을 영구히 지속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색깔이다. 그러나 스러지는 태양 아래에서 바다는 색깔을 바꾼다. 바다는 퍼플 또는 바이올렛이 뒤섞인 비현실적 색감으로 물든다. 그 색들은 형상의 끈질긴 구체성을 모호하기 짝이 없는 추상으로 내몬다. 석양은 이리하여, 형상의 정체성을 앗아버리는 시간의 수작이다. 시간의 거리낌 없는 농단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p.174

소재의 상징성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림의 마음씨를 읽어내는 일이다.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보면 세찬 풍파에 시달려 늙고 지친 나그네가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애절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림의 마음씨는 어떻게 아는가. 감상자가 자기 마음을 그림에 실어서 볼 때 가능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는 게 없다.---p.200

사석원의 황홀은 이미 울혈이 진 듯하다.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술이 서서히 두 사람을 삼키고 있다. 구양수가 그랬던가. ‘인생사 어느 곳이 술잔 앞만 하랴.’ 화가 아닌 나는 술이 그림보다 황홀하다. 그 황홀에 취해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더 나은 것이 있기나 한 거야?”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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