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전통에 속한 학자들은 에클레시아 셈페르 레포르만다, 혹은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동성애 주제를 연구하고 재고하는 내 마음이 이것과 같았다. (지금도 이어 가고 있는) 성경과 동성애에 대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성경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겠다고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도 그렇게 하기를 도전한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를 아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왜 믿는지도 탐구해야 한다.
_서문
인간 본질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저자들, 특히 바울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실재의 본질에 대해서 그들이 가졌을 다른 많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우주가 수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 믿음이나, 이 세상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순서대로 7일 만에 지어졌다고 하는 믿음이나, 원래 인간은 남자 하나였고 그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믿음이나, 출산의 고통과 가시와 엉겅퀴는 하와의 죄 때문에 생겼다고 하는 믿음도 포함된다. 그들이 가졌던 우주론도 여기에 덧붙일 수 있다. 우주가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거나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새로운 이해를 촉발시켰다. 예를 들어, 우주가 수십억 년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의 나머지 부분도 다 저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단지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이성애자도 될 수 있고 동성애자도 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을 저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_제1장 동성애와 성경
고대사회에서는 이성애나 동성애나 모두 착취와 지배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았는데(남자가 여자를, 주인이 노예를, 가진 자가 가난한 창기를, 상위 계층 남자가 하위 계층 남자를 지배했다), 이런 성행위는 기독교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서로 사랑하는 대등한 지위의 파트너들 사이의 동성 결혼을 확고부동하게 정죄하는 성경 본문은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 번, 기독교의 결혼 전통을 수정해서 성스러운 결혼으로 자신들의 연합을 공식화하고자 하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이웃들도 거기에 포함될 수는 없는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_제2장 공통 기반을 찾아 성경에서 기독교 윤리로 가는 여정
성경의 내용은 (대체로) 금지나 명령의 형태로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동성 간 성관계를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동성 간의 신의와 사랑의 결속을 금지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가톨릭 주교 회의가 최근 출간한 문서에서 말하듯, “동성애 지향은 새로운 인간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길을 막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본질적인 성적 상호보완성을 배제하는 성관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의미에 국한해서만, 객관적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objectively disordered)이다.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은 남자가 다른 남자를?혹은 여자가 다른 여자를?깊이, 신실하게, 현대 문화가 보여 주는 빈약한 ‘우정’보다 더 헌신적으로 사랑하고픈 욕망이다.
_제3장 그리스도, 성경, 영적 우정
교회가 거의 보편적으로 지난 1,500년간 지켜 온 방식으로 성윤리를 이해한다면, 그 본문들은 이 윤리적 논쟁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본문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자리는 각주다. 훨씬 더 무게가 있는 다른 석의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를 통해 도출한 그 결론이 실제로 옳다는, 반가운 그러나 크게 비중은 없는 확인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 본문들이 성경에 없었다 하더라도 교회는 동성 간 결혼에 대해 마찬가지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출산과 다름(타자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대한 아주 최근의 논의에 대해서만 아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놀랍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예를 들어, 결혼에 대해서 긴 글을 썼고 성경에 깊이 잠긴 신학으로 유명한 칼 바르트를 보자. 결혼에 대한 기독교의 교리에는 동성 간 결혼이 설 자리가 없다는 지적을 하면서(그는 이것을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레위기 18장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로마서 1장 26-27절에 대해서도 한 번 언급만 하고 만다. 이 본문들은 이 논쟁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보다는 출산과 상호보완성이 논의의 기반이 된다.
_제4장 과거에 귀 기울이며 현재를 성찰하기
성경이 확고하게 동성 간 관계를 금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목사들은 사역의 실제적 문제는 그렇게 흑백으로 쉽게 갈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성경이 동성 관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한 목사 그룹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내 강의의 마지막 한 시간은 질의응답 시간으로 열어 두었다. 그때 (비긍정 관점에 있는) 어느 목사가 말했다. “지난 주일에 처음으로 레즈비언 커플이 교회에 나왔는데, 둘이 같이 손을 잡고 예수님을 영접하러 앞으로 나왔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_결론: 동성애, 성경, 교회
이러한 문화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변화는 한편으로는 전통적 결혼과 가족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통적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애적 관계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진 것입니다. 전자는 비혼의 증가로 나타나고, 후자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심각한 윤리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성과 결혼은 기독교가 발전시킨 성과 결혼의 신학과 이미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성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은 마치 그 신학을 잘 지킨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혈연관계 중심의 가족과 결혼에 집착함으로써 싱글들을 문제적 존재로 대하고 동성애자들을 사회악처럼 대하는 것을 볼 때, 교회가 지킨 것은 유교 사회의 보수적 성이지 기독교가 발전시킨 성과 결혼의 신학은 아닙니다. 너무도 산적해 있어 해결도 포기했다는 남성 목회자들의 성범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_옮긴이의 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