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하나를 가까스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또 다른 구덩이로 굴러떨어지는 나날들이었다. (……) 이제 좀 더 성취를 향한 삶 혹은 최소한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자격증이라도 갖춘 삶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막냇동생 레베카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년 반이 지나 겨우 다시 평상심을 되찾기 시작했을 때, 이번에는 레베카의 일란성 쌍둥이 레이철이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 어렸을 때 동기(同氣)를 잃는 일을 겪으면 함께 공유했던 역사와 유전자가 찢겨나가는 충격과 마치 한 인간의 정체성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 그동안 나라는 존재를 지탱해온 옛 서사는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새 서사는 아직 아무 형태도 갖추지 못한, 혼란과 고통만이 가득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을 나는 연이어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서문」중에서
그러나 아무리 토론을 통해서 확신을 얻으려고 애를 써도 공포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특히 보로프스키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의 가여운 아내가 생각났다.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막 동물적 영광을 누리고 출산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겪기가 무섭게 남편의 죽음, 그것도 자살로 인한 죽음이라는 정반대의 상황과 맞닥뜨린 느낌은 어땠을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레이철이 죽고 나서 언니 크리스틴이 보였던 반응과 비슷했을지 궁금했다. 6개월 된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언니는 수유를 중단해 야 했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슬픔이 이처럼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해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슬프고 놀라운 일이었다.
---「2月 - 돌로 된 세상」중에서
케스틀러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파국을 겪은 공동체 전체가 비극적 차원으로 이동하게 될 수도 있다고 썼다. 카트리나 이후에 달라진 우리의 삶이 바로 이 경우라는 데 모두 동의했다. 사람들의 삶이 순식간에 만천하에 공개되고 취약해졌으며 좌절감과 목표가 동시에 넘실대는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경험이 얼마나 기이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하지만 케스틀러는 이 공동체가 “머지않아 비극 자체마저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수라장 속에서 다시 일상적인 거래를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이 말 역시 사실이다. 뉴올리언스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긴 지 두어 달밖에 안 돼 도시가 여전히 텅텅 비었을 때 언니 크리스틴은 자기 남편 생일날 프랑스 거리에 있는 고급 식당에 사람들을 초대해 제대로 축하해주겠다고 고집했다. (……) 당시에는 별 다섯 개짜리 식당이건 별 하나짜리 식당이건 메뉴도 제한적이었고 모든 음식이 종이, 플라스틱, 스티로폼 같은 일회용 식기에 담겨 나왔다. 수도 공급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았고 일손도 매우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와인을 플라스틱 잔에 마시는 일을 끔찍하게 여기는 언니는 집에 있던 와인 잔 세트를 레스토랑으로 가져와 사용한 뒤 다시 집으로 가져가 직접 설거지하는 수고를 자처했다.
---「3月 - 고래의 배 속」중에서
몇 년 뒤 재건 숙취를 수반한 도시의 변화 뒤에는 끈질기고 자연스러운 그리고 상당히 미국적인 망각, 즉 “정상”으로 돌아가는 집단적인 생존 메커니즘이 뒤따른다. 하지만 일단 자기 집이 초토화된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결국 그 기억이 의식의 기층을 형성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 기억은 재건이라는 낙관적인 층 아래에, 새로운 토대와 벽, 새 길과 학교 아래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재건 숙취는 죽음이나 심한 상실 뒤에 찾아오는 형이상학적 숙취와 닮았다. 갑자기 형이상학적 숙취가 몰려오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그 무게 때문에 삶이 하릴없이 찢겨나가고, 시간 감각을 잃고, 집중력을 잃고, 욕망을 잃는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 조금씩 세상을 다시 받아들이고 일상을 되찾는다. 이를테면 냉장고 문을 열고 섰을 때 무엇을 찾는지 금방 생각해낼 수 있게 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신발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무엇인가를 다시 원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작은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낀다. (……)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른 일이 일어난다. 너무도 많은 덮개 아래로 파묻힌 트라우마는 뼛속 깊이 달라붙어 깊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우리를 바꿔놓는다.
---「8月 - 형이상학적 숙취」중에서
나는 에피쿠로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위험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모두 아무 방벽도 없는 도시에 사는 셈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생각과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 너무도 열심히 애를 쓰며 살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연결해준다. (……) 우리는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와인과 음식과 동료애와 책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가 무방비 상태에 놓인 허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임을 인정하고 서로 연결을 통해서 위안받고자 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곳에서, 안에 아무 칸막이도 없이 확 트인 구조의 중환자실에서 사람과 기계가 거의 춤을 추듯 조화를 이루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족은 이 방벽 없는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단 몇 분이라도, 몇 시간, 며칠, 몇 달이라도 더 살아보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존재들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10月 - 방벽이 없는 도시」중에서
오랫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레베카와 레이철을 “죽은 내 동생들”이나 “죽은 네 이모”라고 지칭했다. 왜 죽었냐는 질문에는 아주 많이 아파서라든지 때로는 슬픔 때문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늘 대충 둘러대며 스스로와 아이들에게 공포와 수수께끼라는 짐을 지워왔다. (……) 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서사에 자기 파괴를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쌍둥이의 진짜 삶, 즉 생기와 애정이 넘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너무도 슬픈 삶 대신, 고딕식으로 매장된 젊고 아름다운 쌍둥이라는 일종의 신화가 우리 아이들에게 내면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대화를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쌍둥이를 “너희들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내 동생들”이라고 불렀고 그 표현이 우리 모두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쌍둥이를 다른 표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지나치게 그들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우리 모두가 해방되었고, 그들이 살았던 삶과 그들에게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삶의 모습들이 스르륵 풀려나왔다. 그들은 절대 우리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와닿지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도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가끔씩 나는 한동안 보지 않았던 그들의 사진을 볼 것이다. (……) 그러면서 나는 불시에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았고 사랑받았다.
---「11月 - 니느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