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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기 선생

우나기 선생

리뷰 총점9.8 리뷰 4건 | 판매지수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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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708g | 145*225*30mm
ISBN13 9788960905450
ISBN10 896090545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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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집이 두 번이나 불타서 부모님은 홋카이도 요이치에 계속 피해 있었고, 나는 입학금을 지불하니 벌써 굶주렸다. 그래서 오지중학교의 교사였던 사촌 형에게 부탁해 Y 군이라는 중 2 아이의 가정교사를 하게 됐다. 주 이틀에 월급이 1500엔 정도였던 것 같다. Y 군의 아버지는 작은 공장 주인으로 전쟁 중에는 무기 부품을 제조해서 나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지금은 별로 좋지 않고, 불그레한 얼굴의 듬직한 인상이지만 심한 공처가인 듯했다. 후처인 부인은 건장하고 알뜰하며 느긋한 분위기로, 저녁밥을 먹지 않고 매일 밤 외박하는 남편 일을 살짝 물었더니 “첩한테 가 있어. 벌써 몇 년이나”라고 태연하게 말하고는 호쾌하게 웃는다. 전 부인의 딸이 한 명 있는데 당시 나보다 한 살 위인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로, 서민가에서 자라 좀 깍쟁이 같은 데가 있고 후처와는 잘 못 지내는 느낌이었다. 몸집이 작고 귀여워서 나는 내심 그 누나와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오지에 부지런히 일하러 다녔다. 물론 Y 군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호되게 시키기도 했다.
--- p.19

호객꾼 여러분이 구사하는 슬랭은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호객당하는 수병의 눈에는 왕년의 용맹스러움이 없고 풍채도 호객꾼 쪽과 큰 차이 없으며 체격조차 미국의 식량 사정이 나빠진 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안 좋아서 피아의 격차가 줄어든 듯이 보였다. 호객꾼도 한가한 탓인지 몇 사람은 길가에 의자를 꺼내 빨간 연필을 한 손에 들고 경륜 신문을 연구하고 있다. “양키 고 홈” 하는 목소리가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본국 젊은이의 일반적 풍조를 억누를 수 없어서인지 미군은 수병들을 평복으로 거리에 내보내게 되었다. 주름진 셔츠에 장발에 청바지라 군기는 느슨하고, 용돈도 없으니까 히피와 전혀 다르지 않다. 주류점에서 산 맥주를 길가에 주저앉아 돌려 마시며 지나가는 여성을 희롱한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크박스에 100엔짜리 동전 하나 넣고 제멋대로 춤추다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돌아간다. 일대일 남자다운 싸움은 안 해도 집단으로 라면 기습 정도는 한다. 영양 만점에 멋지고 돈 많은 양키 지금 어디에.
--- pp.23-24

그 후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9년 만에 하게 되었다. 각본은 언제나처럼 ‘큰일이군’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싫어하던 배우를 마음껏 써보니 배우도 아직 기대할 만하다. 그들이 개개의 배역에 몰입해 있는 것을 보면 그들 개인과 배역 사이에 신을 발견하는 방도도 틀림없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배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우와 여우는 간단히 성으로 나누지만 양자는 전혀 질이 다르다. 남우는 그대로도 괜찮지만 여우 쪽은 여수(女?, 짐승)라든지 여호(女狐, 여우)라든지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성이 아니라 직감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 p.43

입학식에서 늘 나는 말한다. “얼마든지 널린 수지 잘 맞는 일을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한데 일부러 수지가 안 맞는 영화의 세계에 들어온 제군은 일종의 미치광이다.” 신입생들은 “아하하……” 하고 웃는다. 교장은 저렇게 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 수지가 안 맞지는 않겠지, 대히트할 영화를 만들어서 수지 잘 맞게 살아가는 일도 꼭 있을 것이다 하고. 크게 버는 영화도, 우두머리는 번다고 해도 아래쪽에서 일하는 치들까지 버는 건 아니다. 졸업생은 대부분이 텔레비전영화의 하청 프로덕션에 가서 월급 없이 한 편에 얼마로 싸구려 노동력으로 일한다. 인망이 있고 세심하고 일 잘한다는 평판을 따내면 차례차례 다양한 일에 끌려간다. 어디서 일하든 당연히 밑바닥이니까 어느 정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중 몇 퍼센트가 시나리오를 쓰고, 독립해서 연출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카메라맨으로서 독립한다. 스물 무렵에 졸업해서 10년이나 그 정도는 견디는 시절이 되는 것이다. 이 견딤을 얼굴을 찌푸리며 참을 뿐 아니라 9할 괴롭지만 1할 재미있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 pp.48-49

당연히 오랫동안 배우 일을 해, 그다지 좋은 배역을 맡는 일도 없는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빈틈없이 일하는 타입의 사람도 있다. 에서 오자와 쇼이치의 아내 역할을 어느 배우에게 맡겼다. 눈에 띄지 않는 고지식한 중년 여자다. 이전 [나라야마부시코] 때에도 수수한 조연 역을 맡아 견실한 배우라고 생각한 일이 있다. 현장에서 리허설을 해보니 뭔가 부족하다. 오자와 쇼이치와 기타무라 가즈오 두 사람을 장난기 있게 놀리는 장면으로 그녀가 재미없으면 안 되는 곳이다. 테스트를 거듭해도 재미가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 절차를 조금 바꾸거나 대사를 살짝 고쳐서 테스트했지만 역시 안 됐다. 움직임도 대사도 표면적으로는 연출의 지시대로가 틀림없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할 말도 없고 해서 “하룻밤 생각해 와달라” 말하고 다음 날의 본촬영을 기다렸다. 성실한 노력가니까 열심히 공부해 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본촬영에서도 아무 진보가 없는 게 구멍은 없지만 생기 있는 재미가 나오지 않아 촬영을 중지하게 되었다. 배역 미스인 것이다. 그녀가 타인을 바보 취급하며 놀리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실생활에서도 성실, 정직, 진지로 통해온 게 틀림없다. 즉, 불량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안달복달하면서도 그녀의 진지함을 야단칠 수 없었다.
--- p.60

제가 쇼치쿠 오후나에 들어갔을 무렵에는 실로 봉건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오시마 감독도 그렇고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도, ‘도라 씨’의 야마다 요지 감독도, 그럭저럭 세계의 영화제에 나가서 무슨무슨 상을 받든 받지 않든 적어도 뭔가 한마디 하고 오는 건 거의 쇼치쿠 오후나 출신이죠. 이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봉건적인, 아무래도 시어머니처럼 들들 볶는 그런 촬영소에 한해서 세계에 간신히 통용되는 영화감독이 나온다는 게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요. 봉건적인 편이 좋은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 p.124

이타이이타이병에 얽힌 흑백 회상 신은 촬영을 반나절 만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됐어. 마지막에 찍은 신이에요. 여자아이가 유유히 헤엄쳐나가는 거야. 아무래도 어머니가 그런 신이 있는 걸 각오하고 수영장에 데려가서 연습을 시킨 것 같아. 훌륭한 배영으로 헤엄치는 거예요. 거지반이 물속에 잠긴다고 얘기해뒀지만 억지로 잠기게 할 수도 없어서 난처했지. 이 작품은 닛카쓰가 출품하고 싶다고 해서 칸에도 가져갔지. 상이라도 타면 예상 밖에 성공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똑똑지 못해. 지금 일본의 영화 회사는 시나리오를 읽어도 아무 발상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뿐이야. 하나같이 그래요.
--- p.188

배우는 어디선가 정신적인 황폐를 느끼든가 경험하든가 하는 게 상당히 크지. 특출한 데가 없어서는 안 돼요. 나 자신도 더 특출해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가와시마 유조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요. 남달리 특출한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리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 p.195

외국을 다닐 때, 무엇을 찍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받고 얘기를 했더니 원폭 관련 작품을 왜 네가 하느냐라든지 쓸데없는 거 아니냐 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피해자 얼굴 하지 말라는 얘길 듣고 그런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해서 원폭을 다루면 어떨까라든지 폭격한 미국인의 딸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설정은 어떨까 하면서 우왕좌왕했지만 작품으로서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 결과 이부세 원작으로 하게 됐어요. 지금이라도 괜찮지 않은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의 감독이 원폭에 대해 이야기한들 무슨 이상할 게 있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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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칸영화제에서 [괴물]이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수많은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많고 많은 평론가와 기자 들의 그 어떤 코멘트보다 내 가슴에 강렬하게 새겨진 건 일본의 어느 나이 든 영화제작자의 코멘트였다. “이것은 마치 이마무라 쇼헤이가 만든 괴수 영화 같다.” 매우 가슴 설레고 영광스러운 코멘트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거장의 이름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도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복수는 나의 것], 실제 일본 연쇄살인마의 흔적을 그린 이 괴력의 작품에서 큰 영감과 자극을 받았고, [돼지와 군함]이라든가 [붉은 살의] 등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을 오랫동안 존경해왔다.
그동안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코언 형제 같은 거장들을 운 좋게 만나 영화 얘기를 나누는 행운의 순간들을 가졌지만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님은 없었다. 그분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는데,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사실상 한국어로 나온, 이마무라 쇼헤이에 관한 최초의 책이다. 그분이 쓰셨던 산문과 인터뷰 등을 보니 마치 가지런히 정리된 그분의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귓속말을 듣는 느낌이다. 거장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속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그의 이름을 들어보았거나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꼭 넘겨볼 만하다.
- 봉준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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