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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서영인 저 / 보담 그림 | 서유재 | 2018년 10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21건 | 판매지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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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08g | 135*193*20mm
ISBN13 9791189034078
ISBN10 1189034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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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하고 가지각색의 집에서 말끔하고 쨍한 얼굴로 다들 장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이만하면 용케 잘 살고 있다. 망원동의 지붕 밑에서. --- p.27

때를 미는 데는 순서가 있다. 심장에서 먼 곳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 가되 특정 부위를 중복해서 밀어서는 안 되며 타올이 건너뛰고 지나가는 곳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몸에 나도 모르는 때의 결이라도 있는 것처럼(살결이 있고 숨결이 있고 때결이 있다) 순서를 따라 차곡차곡 타올이 그 결을 밟고 지나가되 마찰과 압박의 강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균질해야 한다. --- p.36

고지식하게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고자 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 당위로 시작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당위의 내면은 풍부하고 섬세하다. ‘민주주의의 학습장’이라는 상투적 단어가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잘 먹히는 케이스가 바로 나다. ‘표현과 행동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나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다시 배웠다. --- p.41

혼자 먹는 밥이란 그런 것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르고 깎고 끓이고 냄새 맡고 씹고 삼키는 모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익숙하게 해 내지만 그런데도 자꾸만 내가 먹는 밥상으로 누군가가, 어떤 일이 끼어들었다 사라졌다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러다가 벽을 보고 앉은 내가 낯설고 낯설어서 잠시 멈칫하고,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리면서 내 얼굴의 기색을 읽는다. 그러니 성찬이 아니더라도 일인용 식탁은 되도록 정성껏 차려져야 한다. 이왕이면 예쁘고 착한 얼굴을 읽고 싶으니까, 그럴 때는 잘 갖추어진 디테일이 중요하다. --- p.52

교보문고와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목록보다 동네 서점의 처음 보는 책들이, 길 건너 한강문고의 ‘청년을 위한 책’이나 ‘여름밤의 추리소설’ 같은 목록이 나는 더 좋다. 예상 못한 언더그라운드가,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꾸만 깨우쳐 주는 맨홀처럼, 존재감을 발하는 동네서점들도 더 많이 생겨서, 주야장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보이는 세계 안쪽의 지층에서 원룸의 구석에 작은 책장을 놓고 이상한 목록을 구성하는 인류가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저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하고 답하며 고개를 돌려 조용히 책을 읽는. --- p.80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 말고는 별로 하는 일이 없는 처지이지만 괜히 픽업하듯 이곳저곳 지명하는 것을 정보 제공이라 생각하는 무신경함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뜨는 동네든 가라앉는 동네든 동네가 동네로 존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름을 자주 제대로 불러주는 일은 생각보다 꽤 중요하다. --- p.154

이 정도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래도 아직 생존을 위한 백반집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수창골’의 추어탕을 먹고, 어느 날은 ‘박가네’의 동태찌개를 먹고, 좀 멀리 가 볼 엄두가 날 때는 ‘청어라’나 ‘고향식당’을 가고, 가까운 데 한두 군데 더 염두에 둘 수 있는 집이 있으면 딱 적당하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길 가다가 쓰러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므로 너무 멀면 곤란하고, 오매불망 통깨만이라도 제대로 뿌려 주는 집, 나는 아직도 백반집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 p.176

늘 주장하는 말이지만 예쁜 것들, 맛있는 것들은 까다롭다. 조금씩 비위를 맞춰 가며 담아내고 맛보고 즐겨야 한다. 싸고 맛있고 푸짐한 것은 없다. 조금 아쉽고 부족하더라도 맛있는 것들은 조금씩 자주 맛보아야 한다. --- p.181

창가에 앉아 밥을 먹다 보면 망원시장 초입의 오래된 골목마저 정겹고 아련해 보인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조용조용 가만히, 오래 말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어울린다. 물론 그런 애인이 있다면 더 좋고. 명란구이나 고로케 같은 간단한 안주를 시켜 놓고 따뜻한 사케를 마시는 것도 좋겠다. 그래도 생맥주는 다른 것이 있으면 좋겠다. 산미구엘 같은 무던한 맛과 이 집의 요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 p.185

망원동의 특산품은 누가 뭐래도 골목이라서,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또 길을 내는 골목을 떠돌다 보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골목을 돌고 돌아 큰길로 나오고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인 것이 또 망원동 골목길의 매력이다. --- p.215

그리고 그날 밤 시메이를 마시면서 이제 생각날 때면 언제든 시메이를 마실 수 있다고, 가끔 여행이 그리운 날은 시메이를 마시면 된다고 흡족했다. 물론 언제든은 아니다. 위트위트에서 산 시메이 파란 병은 만이천 원, 파리에서는 이 유로가 채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함부로 아무 때나 추억에 잠겨서는 안 된다. 추억은 비싸다. --- p.221

다정함과 무심함 사이, 모르는 척 지나칠 때마다 잠시 뒤통수를 긁적이는, 이 골목에서 우리는 딱 그만큼의 공동체로 산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생활과 비밀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재미있을 거라고 호의적으로 상상하고 내색하지는 않으면서.
--- p.2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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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평범한 맥줏집 어딘가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넘치는 매력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까 봐. 이 책의 주인공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기도 하다.
-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할 말은 꼭 하고야 말지만 지성과 품위를 잃지 않는,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라고 제일 먼저 당당하게 말할 것 같은 사람. 내가 아는 서영인은 삶을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답게 요리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은 대놓고 진지하지만 대책 없이 순수하고 유쾌한 글쟁이 서영인의 파란만장한 일상과 촌철살인의 비평정신이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에세이집이다.
- 정여울 (작가)
“우리 첫 잔은 아사히生으로 마실까?” 서영인 작가를 만날 때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작가는 그때도 망원에 있었고 지금도 망원에 있다. 사실 망원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겠다. 울산, 도쿄, 뉴욕, 혹은 또 다른 어디든. 작가 곁에는 늘 가난이 있을 것이고 가난을 후려치는 유머가 있을 것이며 마르지 않는 맥주와 멈추지 않는 문학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더 슬픈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처럼.
- 박준 (시인)
나는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공간만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망원동이었다. 이처럼 반짝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망원동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었다.
- 김민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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