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7
그렇다면 지금부터 읽을 『대승오온론』은 세친 보살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우선 『대승오온론』은 세친 보살의 저작일까? 틀림없는 세친 보살의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티베트 전승을 보면 세친 보살에게는 여덟 개의 대표적인 논서가 있다고 하는 ‘세친팔론(世親八論)’이 있는데, 이것에 『대승오온론』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구사론』에 대한 야쇼미트라의 주석에서 『구사론』의 저자 세친을 『대승오온론』의 저자로서 기술하고 있다. 세친 보살의 저작은 종종 무착 보살의 저작과 혼동되지만, 『대승오온론』에 대해서만은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모든 자료에서도 『대승오온론』을 세친 보살의 저작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승백법명문론』, 『불성론』 등처럼 내용적으로 세친 보살의 저작인지 의심스러운 것도 있지만, 『대승오온론』만은 내용적으로 다른 저작과 모순되는 것도 없기 때문에, 확실한 세친 보살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pp.45~46
-한역
大乘五蘊論
世親菩薩造
三藏法師玄?奉 詔譯
-현대어 역(한역)
대승[의 입장에 의한] 다섯의 집적[集積(오온)]에 관한 논.
세친 보살이 짓다.
삼장법사 현장이 조칙[詔,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奉] 번역하다.
-현대어 역(티베트어 역)
다섯의 집적(集積)[에 관한 논]
동자 모습의 만주스리(문수보살)에게 귀의합니다.
(namo manju?riyo kum?rabh?t?ya)
한역에서는 『대승오온론』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산스크리트본과 티베트어 역에서는 판차(panca, 다섯) 스칸다(skandha, 모임 ? 집적), 즉 ‘오온’뿐이고 ‘대승’이라는 말은 없다. 오온설은 초기불교에서부터의 가르침이지만, 『대승오온론』은 그 골격을 이어받았으면서도 내용을 유식사상에 기초하여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玄?)은 전통적인 오온설과 쉽게 구별하기 위해 ‘대승’을 추가하였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한역에서는 저자명과 번역자 이름이 등장하지만, 산스크리트본에서는 전통적으로 텍스트 마지막에 저자명을 기입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세친 보살이며[世親菩薩造], 한역한 사람은 현장(玄?)이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역에서 ‘三藏法師玄?奉 詔譯(삼장법사 현장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번역하다)’에서 ‘조(詔)’ 자 앞에 공백이 있는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조(詔)는 ‘황제의 명령’이라는 뜻이다. 당시는 황제가 가장 높았기 때문에 조(詔) 자 앞에 다른 글자를 두는 것은 불경스럽다고 생각하여 공백을 두었던 것이다.
pp.76~77
색온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세친의 저작인 『유식이십론』에서는 그 실재성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유식, 즉 외계의 인식대상[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식작용[識]뿐이라는 입장[唯識無境]에서 색(물질적인 것)의 실재성을 부정해 버린다. 이른바 색온에는 앞에서 언급한 법(法)의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유식이십론』의 유식사상은 오온에서 물질적인 것인 색온을 제거하고, 정신적인 수·상·행·식만으로 설명하려는 입장(4온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대승오온론』은 똑같이 세친 보살이 저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색온에 일정(一定)한 실재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안혜소에서는 궁극적으로 외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식이십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승오온론』은 전통적인 오온이라는 사고방식과 수·상·행·식뿐이라는 철저한 유식적 사고방식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할 것이다. 유식사상 전체를 보면 유식 문헌 전체가 외계의 물질 등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철저한 유식사상을 설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유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해심밀경』에서는 명상수행자의 관찰대상을 ‘유식’, 즉 식(識)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고 표현하고 있어, 명상을 하고 있지 않는 평상의 정신 상태에서는 유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아뢰야식은 유식사상을 대표하는 사상이며, 『대승오온론』에서도 설하고 있지만, 유식의 모든 문헌에서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유식하면 바로 외계의 부정이나 아뢰야식을 생각하지만, 문헌마다 다양하게 기술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