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정말 많이 헤맸다. 우선 단순히 ‘치매 환자의 섬망을 치료해 보자’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조사해 보니 원래 섬망이란 치매 같은 배경 질환이 없으면서 생겨난 병태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바로 이런 지식수준에서 출발했다. 치매 환자의 다양한 정신증상을 BPSD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우선은 어떤 처방을 대상으로 연구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황련해독탕이라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치매가 진행된 고령자에서 폭언 폭력이 나타나 가족들이 곤란해 할 때, 황련해독탕을 처방하여 안정시킨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황련해독탕을 복용하는 동안은 확실히 안정되나, 점차 기력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음식을 먹지 않게 되다가 계속 누워있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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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너지와 그것을 매개로 한 정보전달 자체를 아울러 ‘기’라고 한다. 그리고 체내를 흐르는 붉은 액체를 ‘혈’이라 부른다. 혈은 대체로 혈액 그 자체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와 혈의 작용이 둘 다 저하된 (허해진) 것이 기혈양허이다. 무기력 권태감, 쉬이 피로함, 안색이 나쁨, 숨참, 사고가 둔해짐, 식욕부진, 사지 무거움, 머리 흔들거림, 눈이 흐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추가로 불면, 불안, 두근거림 같은 심신불녕(心神不寧)이라 불리는 증상이 있는 경우, 또는 만성 기침, 가래 등이 동반된 경우 인삼양영탕을 사용한다. 기력이 없는 치매이면서 불면, 불안 같은 정신증상이 동반된 경우 사용하면 좋다.
--- p. 70
*처방해설
· 마자인환(마자인, 작약, 지실, 대황, 후박, 행인, 봉밀)
· 주치: 비위조열(脾胃燥熱), 비약변비(脾約便?)
장관점막(腸管粘膜)에서 나오는 분비액이 감소하여 장관이 건조해진 결과, 변도 건조해지고, 변비가 생긴 경우에 좋다. 본래는 위장염 때문에 발생한 변비가 적응증이었다. (《금궤요략》) 하지만, 고령자에서는 장관 점액분비 감소로 변이 쉽게 건조해지는데, 이런 병태에 쓰기 좋다.
조금조금씩 제대로 효과를 보이며
센나나 대황말로 인한 내성이 잘 생기지 않으며,
고령자의 체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
이 바로 ‘마자인환’이다.
마자인환에는 사하작용이 있는 대황이 들어있다.
--- p. 80
◎증례-1 21세 남성
38.2℃ 고열에 인후통을 동반한 상태로 내원한 21세 남성. 독감신속검사키트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증상과 발생 시기를 고려하여 임상적으로 독감으로 진단. 쯔무라 마황탕 4포, 코타로 길경석고 4포를 1일 4회로 나누어 복용시켜, 2일 만에 치료되었다.
--- p. 98
환자가 설사와 함께 구토하며 ‘꿱~꿱~’ 거릴 때, 한방을 하는 의사라면 맥과 혀 정도는 진찰하겠지만, 한가롭게 변증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탈수에 빠져버릴 지도 모른다.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일단 오령산을 1포 복용시킨다. 구역이 심해서 마실 수 없으면 오령산 엑기스 1포를 미지근한 물에 녹여 5mL 주사기로 장관주입하면 구역이 감소한다. 자 한 번 해보고 효과가 없다면 지체 없이 정맥주사를 하도록 하자.
--- p. 108
빈뇨에 효과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럭저럭 듣는 상황은 ‘소변 지림, 잔뇨감’이다. 어떤 사람에게 잘 듣는가면 고령자보다는 중장년의 증상에 잘 듣는 경향이다. 대략 50~60대 정도의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앞서 드라미틱한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되었던 쯔무라 우차신기환이 그럭저럭 듣는다. 대개 1개월 정도 치료를 해보면 좋다. 그래서 효과가 없을 때는 그다지 좋은 약이 없다. 그런데 이 우차신기환, 팔미지황환, 보신약(신기를 보하는 약)이라는 것들은 지금 말하는 고령자, 곧 70대 이후보다 50, 60대 정도의 사람에서 나타나는 노화 증상에 잘 듣는 인상이 강하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인생이 50년 정도였기 때문에 (뭔가 고도경제성장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일본의 평균 연령은 50대 전후였다.) 보신약의 대상도 그 정도 연령대일 듯하다. 과거의 70대, 80대는 거의 신선의 영역이었을테니….
--- p. 128
가능하다면 건너뛰고 싶은 증상이다. 그렇다 해도, 고령자 불면에는 그다지 잘 듣는 약이 없다. 고령자 불면은 대개 여러 해 지속된 증상이다. 수십 년간 수면도입제, 안정제를 지속적으로 투약해 온 경우가 많다. 수면도입제는 야간에 화장실에 가려할 때 흔들거림과 넘어짐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정말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미 수십 년을 계속 복용해 온 분들에게 약을 끊으라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게다가 사실, 나 자신도 불면증으로 항상 복용하는 약을 끊지 못하고 있는 사정도 있다. 나 자신도 잘 치료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치료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 p. 134
대부분 침치료는 통증에 적용되나, 전술한 것처럼 자율신경, 내장, 마음의 조절에도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침치료를 할 때 어떤 생체반응이 나타날까? 딱 한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필자 연구팀이 실제로 시행한 임상연구 결과로 알게 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건강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차비교시험에서 족삼리혈, 태충혈, 족삼리혈 외하방, 무자극을 시행한 결과, 소화기 상태를 조정하는 족삼리에 침자극을 시행했을 때, 소화관에 혈액을 보내는 상장간막동맥의 혈류가 유의하게 증가했다. 또한 건강 성인을 대상으로 한 RCT에서 족삼리혈, 태충혈, 족삼리 외하방, 무자극을 시행한 결과, 초조함이나 불면, 사지 냉증 등에 사용되는 태충혈에 침치료를 자극했을 때, 상완동맥 혈류가 유의하게 증가했다.
--- p.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