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여덟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예프Sergey, Sergeyevich Prokofiev라는 음악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 음악가의 작품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날 저는 외할머니 댁 안뜰에 있는 탁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께 이렇게 여쭈어보았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작품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려면 도대체 어떤 재능이 있어야 할까요?” 외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호르헤야, 보렴. 프로코피예프는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거란다. 그는 열심히 노력했고, 땀을 흘렸으며, 고통을 감내했고, 그래서 그렇게 이룩해 냈어. 네가 오늘 보는 아름다움은 어제의 일, 침묵 중에 고통을 감내하고 투자한 일의 결실이지.” 저는 외할머니와 함께한 이 대화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모습을 늘 생각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 27-28p '제1장 젊은 예언자들과 나이 든 꿈쟁이' 중에서
하지만 이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배제하는 만큼 청년들도 배제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청년들에게 기억을 전해 주는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노인들을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꿈쟁이로 만들어 줍니다. 청년들은 이런 노인들의 가르침, 그들의 꿈을 취하여 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비전을 가지려면, 그들 자신이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담하게 용기를 갖고 미래 시대를 대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선조들의 예언적인 꿈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젊은 예언자들과 나이 든 꿈쟁이는 뿌리가 뽑힌 우리 사회가 구원되는 길입니다. 배제된 이 두 세대가 모든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 46p '제1장 젊은 예언자들과 나이 든 꿈쟁이' 중에서
악마는 경쟁, 분열을 추구하며 이 사회의 청년들이 의기소침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서로 분열하고 길을 잃어버리길 원합니다. 악마는 각각의 청년이 혼자서 모두를 대적하게 되길 원합니다. 반면 주님께서는 청년들이 일치하기를 원하시며, 그들 모두를 찾으시고, 그들 모두에게 당신의 손길을 건네길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희망하지 않는 데서 오는 나약함을 질타하십니다. 희망은 매일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의기소침의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시 새롭게 희망하려면 종종 아주 작은 한 줄기의 빛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어두움이 짙을수록 작은 빛도 눈에 띌 수 있습니다.
― 116p '제2장 이 세상에서' 중에서
그분께 희망을 청합시다. 손에 묵주를 잡고 선을 행하는 겸손한 종의 마음으로 청해야 합니다. 종종 젊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할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저는 그럴 때 딱 15분이라도 마음으로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사랑의 행위를 하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몇 분이라도 고정된 시선을 묵주 기도에 쏟으십시오. 그러면 묵주 기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는 가상 묵주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서 기도하셔도 됩니다. 성모님은 형식이 아닌 내용을 보시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진실한 마음을 눈여겨보십니다.
― 126-127p '제2장 이 세상에서' 중에서
우리는 변화에, 다른 사람들의 전망에 개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전망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만일 그들이 다른 어떤 것, 우리에게 있어 새로운 그 무엇을 이야기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청년에게,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다름을 그리고 여러분의 나약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반복되지 않으며 우리의 존재 자체는 유일회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아침 우리가 잠에서 깰 때, 우리에게 이 선물을 맡겨 주시고자 기다리십니다. 사랑과 정중함 그리고 소박한 마음으로 이 선물을 지키기로 합시다.
― 178-179p ‘제3장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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