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두려운 존재는 귀신이 아니야
--- 이지영 jylee721@yes24.com
남들 다 본 공포영화 '식스센스'를 혼자서 뒷북 치듯 비디오로 감상했을 때, 무슨 이유에선지 '백귀야행' 생각이 났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듯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공포영화 답지 않게 따뜻했던 영화 속 분위기도 그러하거니와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꼬마가 어딘지 모르게 '백귀야행'의 리쓰와 닮아 있던 탓이다.
'나는 죽은 사람을 봐요', '할아버지, 자꾸만 귀신들이 쫓아와' 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두렵고도 피곤한 날들이었다.
'식스센스'의 그 공포에 질린 아이가 (여전히 두려운 와중에도) 귀신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이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상처를 보듬는 아이로 성장하는 결말은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더라'는 반전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백귀야행'의 대학생 리쓰처럼, 혹은 리쓰의 어머니처럼 강해질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 지나치는 지혜도 터득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여기 소개하는 '백귀야행'은 귀신을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 '공포'가 제1의 목적이 아닌 참 이상한 공포만화다. 영화, '식스센스'가 공포영화이면서 동시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멜로 드라마였듯, 이 만화 역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바탕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백귀야행'이라 하면 어쩐지 여름보다는 겨울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싹함으로 더위를 잊자'가 아닌 '오싹함은 무슨. 그저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얘기나 나누지 뭐' 이런 식이랄까.
강한 영력을 가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귀신과 거의 함께 생활하다시피 한 리쓰.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 덕에 그는 하루라도 쉴 틈이 없다. 만화는 주인공 리쓰가 제발 날 좀 내버려달라고 투덜대면서도 귀신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온갖 사건사고에 관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아주 어릴 땐 할아버지에게, 좀 더 자라서는 '아오아라시'라는 요괴에게 의지하며 근근히 살아가던 리쓰는 회를 거듭할수록 강해져서 시리즈 후반부에 다르면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일본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낡고 예스러운 느낌이다. 등장하는 귀신들도 병풍 뒤에서 마작 하는 요괴, 시집가는 여우, 항아리 속 할머니 귀신 등 전래동화에서 한번쯤 봤음직한 귀신들.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4권의 '눈길'인데, 리쓰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식스센스'의 꼬마처럼 하루하루가 괴롭던 그 시절의 일화를 담았다. 이 에피소드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공포심리가 여럿 등장한다. '홍콩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사람 잡는 할머니 귀신'이라든지 우리의 그 '쫓기는 꿈'과 흡사한 '귀신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이라든지. 너무 흔하고 단순해서 때로는 사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간의 공포심리를 읽는 작가의 시선이 놀라웠던 작품.
인간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미련을 갖는가. 결국 진정 두려운 존재는 귀신이 아니라 '집도 마음도 황폐해지도록 방치하고 귀신에게 너무나 쉽게 안주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라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다. 그런 면에서 '네가 무서워하니까 따라오는 거란다. 보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라는 할아버지의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알면서도 모른 척, 보고도 못 본 척, 그렇게 조용히 지내는 리쓰의 어머니는 또 어떤가.
겁쟁이 소녀였다는 내 친구 녀석 하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귀신은 없어, 귀신은 없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허나 어느 날엔가, 그 없다는 말에 화가 난 귀신이 '뭣이라?'하며 눈앞에 나타날까 무서워져 '아니야, 있어. 있어' 그렇게 말을 바꿨다나.
어른이 된 지금. 그 친구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꼭 귀신이 아니라 해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현상, 존재를 떠올려 볼 때, 좀 더 강하고 의연해지라는 '백귀야행'의 메시지는 그것이 한낱 귀신 만화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