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두고 ‘한식 세계화’를 내세우며 정부가 한국 음식에 대한 개념 정립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모두는 다 같이 그것에 찬성했습니다. 그 누구도 특별히 의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한국 사회의 비극입니다. 음식은 문화입니다. 국가가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정체성을 감히 어떻게 국가 권력이 정의를 하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 개인이 주권을 가진 나라인데 시민의 정신 상태를 통제하겠다는 정책을 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걸까요?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민주 공화정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의 시간은 흘렀지만 정신적 고착 상태는 아직도 일본의 신민, 조선 왕국의 백성인 상태로 이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닐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의문을 던지며 우리의 전통, 음식, 한식 세계화와 관련한 음식 민족주의에 대해 처절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p84
우리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구매할 때 무엇을 보고 구매할까요? 우리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일상재로 보고 적당히 싼 가격의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구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기존의 공장형 사육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돼지와 닭들은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갇혀서 삽니다. 한 마리라도 아프기 시작하면 이런 밀집 사육에서는 금방 다른 개체에 전염됩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더 많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합니다.
물론 이런 공장식 사육도 중요한 장점이 있습니다. 대량생산을 통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과 균일한 품질로 다가간다는 점에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공장식 사육 방식이 없다면 저소득 계층은 고기 맛보는 것이 만만치 않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공장식 사육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고, 에너지를 덜 쓰고, 환경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농장이 생산하는 돼지고기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고, 100g당 1,000원 정도 더 지불해 보는 건 어떨까요?
- p106
현재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는 정체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이탈리아, 프렌치 비스트로 같이 안전한 길만 택하고 있죠. 미국에서 여러 나라 음식을 만들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소울푸드, 미국 남부 지방 음식이 저와 잘 맞았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즐겨 먹었던 햄버거나 핫도그가 바로 미국 남부 음식입니다. 저는 한 접시로 추억을 구현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손님 앞에 내놓고 싶습니다. 한 그릇의 감동, 소울푸드란 그런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제가 ‘더티프라이(dirty fry)’라는 남부식 감자튀김을 만들어서 미국인 손님 앞에 내놓았는데, 그가 식사를 다 마친 후 저에게 무척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더티프라이는 그가 어린 시절 먹었던 어머니가 해준 추억 어린 음식이고, 오늘 먹은 더티프라이는 자신이 35살, 지금까지 먹어온 음식 중에 최고의 음식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흐뭇했습니다.
저는 남다른 꿈 실현, 문화 전파, 음식 문화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낯설고 위험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항상 내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한다’고 생각하며 요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음식을 주면 즐거워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메뉴를 개발합니다.
-p150
통상적인 우리나라의 돼지 도축과 유통시장에서는 115kg 전후의 규격돈만 도축할 수 있습니다. 돼지 크기를 규격화?표준화하면 장점이 많습니다. 유통자의 입장에서는 돼지의 선별과 평가가 단순해지므로 도축 및 유통 작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특별한 육질을 고민할 필요 없이 규격에 맞춰 돼지를 키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육 방식도 단순해집니다.
하지만 ‘규격돈’으로 상징되는 표준화와 규격화의 틀이 지속되는 한 소비자는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를 맛볼 수 없습니다. 독특한 식재료를 구하여 자신만의 차별화된 요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셰프의 희망도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규격돈만 거래되고 유통체계도 표준화되었으니 도축장의 공정도 획일적일 수밖에 없기에 새끼돼지 한두 마리 도축하는 일종의 ‘소비자 주문형 맞춤 도축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규격화·표준화는 단지 돼지 유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의 식료품점을 가보면 판매되는 쌀이 다양하여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쌀 선택의 관심사는 개별 품종보다는 현미·백미 같은 사후적인 가공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나라 젖소 품종은 유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홀스타인 계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양계 산업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p224~225
우리가 먹어온 모든 음식은 뇌 속에서 ‘각자의 라벨’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과 습관에 지배받는 존재이며, 우리 몸의 감각은 어떠한 경우도 혼자 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감각은 여러분이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의 합입니다. 뇌는 머릿속에 들어오는 과거, 현재, 미래의 정보를 종합하고 예측하여 맛을 ‘지어’냅니다. 그러므로 뇌의 본질은 기억이고 맛의 본질도 기억입니다. 따라서 맛은 미각, 후각, 내장감각 같은 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뇌가 기억하고 이해한 뒤 내리는 해석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어떤 음식’이 특별한 이유도 과거의 경험과 추억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맛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특별하다’는 평가를 내리지 못합니다.
맛은 인간의 창작품입니다. 소위 말하는 표준이 되는 ‘본연의 맛’ 역시 각자의 뇌 속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맛입니다. 바나나의 맛도 딸기의 맛도 각자 머릿속에 꿈꾸는 이데아의 맛입니다. 맛은 아무런 가공을 하지 않은 것마저 창작한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맛은 뇌의 환각이자 착각이기에 맛을 파악하기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맛의 실체는 인간 진화의 역사와 함께 고스란히 우리의 뇌에 담겨 있습니다.
- p303~304
우리 몸에 먹는 것이 들어가면 모두 간을 통과합니다. 어떤 음식이든 해독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먹는 약은 성분에 따라 간의 해독작용(초회통과효과)으로 인해 약효가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먹는 약을 만들 때는 간의 해독작용을 피해서 약효를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를 보면 약의 성분을 몸에 빨리 흡수하기 위해 혀 밑으로 약을 넣고 녹여서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혀 밑에 약을 넣으면 녹으면서 간으로 통과하지 않고 전신으로 흡수되어 약 효과가 온몸으로 퍼지게 됩니다. 코로 흡입하는 약이나 좌약도 간의 해독작용을 피해갑니다.
우리 몸은 어떠한 음식물을 삼키든 해독을 하려고 하고 독이 있으면 걸러내고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식이든 약이든 과하면 우리 몸에 해가 되고 적당하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이런 노력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영양의 균형을 골고루 갖춘 다양한 음식을 먹되 소식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그런데 잡식 동물의 본성상 음식을 보면 양 조절을 못하고 뭐가 좋은지 나쁜지에 정신 팔려있어서 얼마나 먹으면 되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 p331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