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바람결에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임신 기간의 자유로움과 명랑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여행은커녕 혼자 마음대로 나가서 돌아다닐 수도 없는 삶은 그동안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이 한순간에 너무 바뀌어서 어디부터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헤아려볼 수도 없었다. 아, 그래서 다들 아기가 배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했구나.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안에 있던 얼이가 내 곁에 있는 게 좋았다. 그건 다른 무엇과 바꿀 수도, 다른 무엇에 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얼이를 품에 안고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따스했고,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고 있으면 손 안에서 심장이 콩콩 뛰었다. 향긋한 아기 냄새가 내게서도 났고, 눈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더 깊은 곳에서부터, 더 사소하게 피어올랐다.
---「셋이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중에서
그토록 치열하고 고된 여름을 보내면서도 끝내 지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언젠가는 이 계절의 기억들을 꺼내어 보며 그 온기로 마음을 데우고 그리워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이런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다지 길지 않으리라는 것은 가장 큰 위로이자 깊은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게 그 시간의 고단함을 지나갈 힘을 주었다. 계절은 쉼 없이 흘러가고, 아이는 멈추지 않고 자라고, 다시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가을이 왔다. 비로소 우리는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다.
---「셋이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중에서
거리의 보도블록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기꺼이 즐겁게 아이와 가족을 배려해주었고, 우리는 마음 놓고 편안히 거리를 함께 걸었다. 언제나처럼 감동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스며 있다. 내가 이 도시에 반한 것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금문교나 세련되고 멋스러운 건물들, 혹은 유려하게 길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아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보도블록에 반했다. 그 단단하고 평탄하고 사려 깊은 면에 마음이 녹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중에서
“얼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하는 거예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몇 주 전 얼이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지금까지 얼이와 함께한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을 다녀왔으면서도 왜 그 질문이 그토록 생경하게 들렸을까? 나는 대답했다. 내가 얼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얼이와 함께 있는 것이고, 우리가 늘 같이 있기 때문에 얼이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말했다.
“넓은 세상을 보는 건 내가 좋아해!”
걸음을 늦추고 어느새 곁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도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가 좋아서 가는 거지 뭐, 하하!”
사실이었다. 우리가 좋아서. 설레서. 가슴이 뛰어서.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을 좀 더 보고 싶어서.
---「멀리, 함께 가기」중에서
우리는 그 도시에서 집을 빌려 하룻밤을 지냈다. 장을 봐서 아침을 차려 먹고, 얼이가 탄 유모차를 밀면서 걸어 나와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탈린이 좋아졌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찬연하게 빛을 내는 골목과 집들도 좋았고, 걷다 보면 가려고 마음먹었던 곳을 자연스레 모두 만나게 되는 작은 도시라서 좋았다. 같은 골목을 여러 번 지나가도 시간과 사람과 구름과 햇살이 그 위로 아로새겨져 시시각각 다른 길을 걸었다.
우리는 찬찬히 걸었다. 작은 풀꽃 앞에서도 머물며, 골목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느린 여행」중에서
“엄마, 저 위에 올라가면 사자 발톱이 있대!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엄청 커다란 사자가 있었대. 정말 신기하지?!”
그 높은 바위산을 오르는 동안 지치지 않았던 얼이는 마침내 사자 발톱을 만나자 탄성을 질렀다. 감정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어서 각자 가지고 있는 서사에 따라 각기 다른 감동의 순간을 맞이한다. 나름의 감격이 여행 곳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가방에 담는다. 그림과 영상과 음악으로 짐을 꾸린다.
---「여행을 위한 준비」중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지인들이 스리랑카가 어땠는지 묻길래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린 바다거북과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나라에 대해서. 아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들에 관해서. 챙겨갔던 자물쇠는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내내 가방 속에서 꺼내본 적도 없다. 기차에 물건들을 턱턱 올려놔도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고 옆자리를 비워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듣고 있던 한 언니가 말했다.
“스리랑카는 선진국이네.”
---「좋은 나라」중에서
우리 삶의 어떤 것은 가라앉은 돌멩이처럼 세월에 닳더라도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나뭇잎처럼, 꽃잎처럼, 물고기와 잠자리처럼, 그림자처럼 우리를 두드리고 물 위로 떨어져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흘러가는 물 위에 떨어진 무언가를 나중에 주워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지금 주저 없이 첨벙이며 물속으로 들어가 고이 건져 올려야 한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애써 거슬러 올라야 한다. 발을 적시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다짐한다. 망설이지 말아야지. 미루지 말아야지.
---「잃어버리고 난 후에 알게 되는 것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