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가 펴낸 『백남준: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2010 초판/2018 개정판)는 그가 왜 백남준인지를 말해주는 진솔한 자전적 수필집이자, 작가의 철학적, 예술적, 인간적 실체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집이다. 독일 아방가르드 서클에 데뷔했던 1958년부터 60회 생일을 맞는 1992년까지 친지와 동료들에게 보낸 서한, 작품 악보, 단상, 논고들을 싣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20세기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고결한 비저너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편집자들인 이르멜린 리비어와 에디트 데커는 책제목으로 백남준의 1981년 논고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 문구가 백남준의 사상을 요약,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남준은 이 글에서 과거 운송과 통신의 화신이었던 말(馬)에서, 오늘날 텔레비전/비디오 시대를 거쳐, 미래의 강력한 소통 수단이 될 ‘심령력’에 이르는 미디어의 역사적 변화 또는 진화적 발전을 은유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백남준은 집시의 고장으로 심령력의 지수가 가장 높은 불가리아 출신의 크리스토를 미디어 소통의 종착역에 위치시키고 있다. 요셉 보이스의 유라시안 신비주의, 한국 샤머니즘 문화에도 해당될 수 있는 이 심령력의 의미는, 소통 매체가 영적 매체로 확장 또는 병치되는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샤먼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샤먼적 해석은 백남준 예술의 핵심 개념인 불확정성(비결정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서양의 결정주의에 대립되는 동양의 비결정주의, 구체적으로는 선사상과 샤머니즘 정신에 내재된 불확정성은 복합성, 융합성, 가변성, 유동성, 특히 우연성에 대한 미학적 사유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우연은 준비된 정신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는 파스퇴르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그의 행위음악, 해프닝, 비디오아트는 모두 통제 불가능한 우연과 사고, 삶과 같은 불확정성에 근간하고 있다. 그는 비디오합성기를 통해 ‘고도의 정확성 대신 고도의 불확정성’을 획득하였고, 전 지구를 연결하는 생방송 위성예술이나 멀티모니터 작품들에서와 같이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다다익선 미학으로 불확정적 융복합 예술을 성취하였다. 실로 그는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컨버전스(convergence)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 책에는 웬만한 대하장편소설을 방불케 하는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9∼20세기의 역사적 현학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만나고 교류한 과학자, 철학자, 미술가, 음악가, 무용가, 시인, 방송인, 큐레이터, 비평가 등, 그의 광대한 인맥은 그 자체가 광대역과 같은 정보통신의 플랫폼이자, 케이블로 연결된 ‘상상적 비디오 경관’ 즉 ‘글로벌 그루브’이다. 보들레르적 ‘코레스퐁당스(Correspondence)’ 의지, 소통과 변화에 대한 갈증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록 독려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 인물을 알아보는 통찰력과 예지력, 만남을 귀중한 인연으로 발전시킬 줄 아는 친화력과 동화력, 동료들과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열정과 탁월한 기획력이 백남준의 작가적 성공을 뒷받침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남준은 이 책에서 플럭서스 친구들인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조지 머추너스, 샬럿 무어먼 등의 예술세계를 소상히 그리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슬픔과 연민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치열한 예술가, 치밀한 기획자이기 이전에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 끈끈한 정을 가진 틀림없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백남준의 최초 에세이 선집은 1974년 시러큐스 에버슨 뮤지엄이 발행한 『백남준: 비데아 ‘n’ 비디올로지 1959-1973』였다. 이번 책은 그 당시 그 책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되살려주고 그의 귀환을 실감케 해준다. 이에 대해 백남준아트센터에 개인적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덧붙여 센터가 앞으로 1992년 이후부터 2006년 타계할 때까지 그의 후기 시대 친필을 모으고 출판하여 백남준의 예술과 삶을 하나의 순환 고리로 집대성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개정판에 부쳐
- 김홍희 (전 시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