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부터가 노무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은 언론과 검찰의 정치공작과 너무도 흡사했다. 당시 우리가 규정한 ‘언론과 검찰의 정치공작’의 정형화된 패턴은 이랬다. “검찰이 궁박한 처지의 누군가를 통해 유용한 진술을 확보한다. 적절한 시기에 특정 언론사에 피의사실을 흘린다. 해당 언론사가 첫 보도를 내놓는다. 후속 기사가 뒤따른다. 이로써 검찰은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게 된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피의자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피의사실을 추가로 흘려 피의자를 더욱 압박한다. 때로는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사안들을 언론에 흘려 피의자를 욕보이기도 한다.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피의자는 이미 ‘범법자’가 된다.”
… 공소장. 피고인의 인적사항과 공소사실이 적시되어 있는 형사소송의 기본 문서다. 이때쯤이면 돈의 전달 과정에 대해 공사장 변경을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우리 변호인단이 제안했다. 공소장 변경은 법이 규정한 절차 중 하나다. 하지만 공소장 변경은 기본적으로 검찰에 매우 불리하다. 상당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해 그것을 토대로 만드는 것이 공소장인데 이것을 재판 중에 변경하는 것 자체가 재판부에 ‘부실수사’의 인상을 준다. (중략) 결국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고’했다.
… “곽영욱의 5만 달러 공여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곽영욱의 진술이 모두 임의적이고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곽영욱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하나로서 이 사건 뇌물공여 부분에 관하여 검사에게 협조적인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그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 나머지 정황증거들만으로는 한 총리의 혐의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면, 달리 이를 이정할 증거가 없다.” (중략) “따라서 피고인 한명숙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로 한다.”
…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 사건을 헷갈려하는 것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검찰이 별도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거나(곽영욱) 아예 구속 상태에 있는(한만호) 인물들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해 사건의 얼개를 짜거나,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 등, 두 사건이 다르면서도 같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2차 사건 자체가 1차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무죄를 예상한 검찰이 별건으로 시작했다는, 즉 시기적으로 너무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사건이 처음 알려지는 과정도 1차 때는 《조선일보》 보도, 2차 때는 《동아일보》 보도로 시작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 2주 후에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급박하고도 중대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만호 사장은 이번 사건의 검찰 쪽 핵심 증인이다. (중략) 세 번에 걸쳐 3억 원씩 정치자금을 공여한 상황에 대해 본격적인 첫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한 사장은 이 대목에서 할 말이 있다며 증인석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는 한명숙 전 총리님께 돈을 준 적이 없습니다. 한 총리님은 지금 누명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 선고 공판이 열렸다.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2시였다. 1차 사건 선고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중략) 재판부가 선고문을 읽어 내려갔다. 1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역시 장문이었지만 결국 결론은 같았다. “(9억여 원 수수를 입증할) 유일한 직접 증거는 한만호 씨가 검찰에서 한 진술뿐인데,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어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변호인의 현장부재 주장은 이유가 있다. 따라서 피고인 한명숙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