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은 새로운 것들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130억 살 된 이 우주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창조력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사역의 동반자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정보 테크놀로지, 예술, 음악, 시스템 디자인 등등. 이 세상을 지탱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신다.
지탱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탱하고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숨을 들이마실 수 없다. 대다수의 집안일과 서비스 산업 분야의 일은 이처럼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집안 청소, 도로 정비, 사무실 관리, 도시의 하부구조 및 정부의 기능 관리 등,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구속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치고 수선하고 변혁하는 일에 동참하라고 초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과 새 생명의 분출을 증언하는 것은 물론 이런 일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기술자가 자동차나 고장 난 기구를 수리할 때, 상담가가 깨진 심령을 치유할 때, 의사가 신체적·정서적 건강을 가져올 때, 법조인이 정의를 세울 때도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전체를 멋지게 마무리하신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 그 위대한 랑데부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계셨다(계 19:9). 작가와 미디어 종사자의 작업은 사물의 의미를 가리키는 일이다. 교육자, 목사, 부모는 사람들을 성숙시키고 각 사람이 자기 운명을 펼쳐 나가게 돕는 일을 한다.
_1장 하나님은 무슨 사업을 하고 계시는가?
성경에 따르면 어떤 일이 ‘주님의 일’이자 본질적 가치를 지닌 일이 되는 것은, 종교적 성향이나 하나님의 이름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 때문이 아니다.
첫째,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일이어야 한다. 창세기 1:28과 2:15에 나오는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창조세계를 돌보고 그 잠재력을 개발하며,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일을 통해 일꾼들은, 창조하고 유지하고 구속하고 완성하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목적에 꼭 들어맞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천사가 되는 것이거나 종교적이 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인간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 열방을 축복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셋째, 하나님의 방식대로 덕스럽게 수행되는 일이어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은 성경에 흔히 함께 등장하는 그리고 열두어 번에 걸쳐 따로 언급되는 핵심 미덕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넷째,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일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영혼과 관련된 일만 영구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랄 때는 “금방 사라질 단 한 번의 인생.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남게 되리”라는 시를 들으며 컸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머리치장은 금방 풀어질 것이고, 우리가 만든 대다수의 물건이 쓰레기 더미로 직행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전서 3:10-15과 13:13에서 분명히 밝히듯, 영구히 남는 것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순수’ 미덕이 아니
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수행된 일이다.
_1장 하나님은 무슨 사업을 하고 계시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거나 자아성취를 위해 선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해방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부르심 중 일부다.
소명과 직업 소명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출세주의와 전문기술주의로 삶의 의미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마법사’로 변한다. 우리 각자의 정체성이 마치 소비하거나 업적을 성취하는 데 있는 것처럼 설득하는 미디어의 매력적인 소리에 빠지기 쉽다. 폭풍에 휘날리는 먼지처럼 뚜렷한 방향감각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이와 반대로 소명 의식은 우리 삶에 방향과 목적을 부여해 준다.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를 불러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 세상을 능가하는 놀라운 목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_2장 사업도 소명인가?
사역이란, 섬기는 리더십의 개념이 흔히 연상시키듯 그저 사람들이나 조직을 섬기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섬기는 일이다. 종이란 자기를 다른 사람의 처분에 맡기는 자다. 따라서 사역자는 하나님의 처분에 자기를 맡기는 자다. 더 나아가 사역자는, 하나님이 섬기고 사역하시는 데 있어 통로 역할을 하는 자다.
사역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이다(마치 삼위 하나님 안에 사역과 섬김이 존재하는 것같이). 사역에의 부르심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는 자가 되라는 부르심이다. 그것은 창조주의 창조 사역과 구원 사역, 즉 하나님이 주도하고 능력을 부여하고 완성한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이다.
_3장 사역의 사업적 측면
태초에 그리고 마지막에 회사가 있었노라!
회사를 세우는 일을 지지하는 신학적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창 1:27). 이는 사람이 공동체, 관계성, 사랑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 땅에 신앙 공동체와 인간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들이 가정, 인종 집단, 신앙 집단, 국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모습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실패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지만, 그래도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서로 협조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업체도 이런 신적 사명의 일부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의 끝부분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과 인류의 합동 작업이 지향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목표란 완전히 부활한 인간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변형된 창조세계를 일컫는다.사업체는 마이클 노박이 옳게 주장하듯 ‘찬양할 만한 공동체’다.
회사는 삶과 기업 활동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종종 교회나 이웃보다 더 깊은 사역의 맥락을 제공한다. “맨 처음부터 현대의 기업 경제는 ‘모든 국가들의 부’를 체계적·사회적인 방식으로 끌어올리는 데 관심이 있었으며 국제적 조직이 되도록 고안되었다. 그것은 결코 특정한 개개인의 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_4장 찬양할 만한 공동체
선교는 세상에 좋은 소식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예수와 관계를 맺으라고 초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세상에 샬롬을 약속하는 일이기에 좋은 소식이기도 하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안식의 샬롬(Sabbath shalom)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완전히 얻게 될 하나님·창조세계·인간 사이의 삼중적 조화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중간기에 우리가 할 일은 확실한 종말,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내다보면서, 이 땅에서 애쓰는 우리의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노력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날을 향해 진력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에 적용하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_5장 일터선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