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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차례
20주년 기념판 서문 10주년 기념판 서문 초판 서문 넬리 맥케이가 쓴 서문 ― 페미니스트는 유머 감각이 없다 감사의 말 25주년 기념판 감사의 말 1부 고기의 가부장제 텍스트들 1장 육식의 성정치 2장 동물 성폭행, 여성 도살 3장 은폐된 폭력, 침묵의 목소리 4장 말이 살이 되어 2부 제우스의 복부에서 5장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 6장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채식주의자 괴물 7장 페미니즘, 1차 대전, 현재의 채식주의 3부 쌀을 먹는 것이 여성을 믿는 것 8장 채식주의 신체에 관한 왜곡 9장 페미니즘-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위하여 에필로그 가부장제의 소비문화 뒤흔들기 25주년 기념판 후기 참고 자료 그 밖의 참고 자료 25주년 기념판 참고 자료 저작권 협조에 드리는 감사 찾아보기 |
저캐럴 제이 애덤스
관심작가 알림신청Carol J. Adams
역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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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육식의 성정치》는 독자들의 삶을 바꿔왔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억압의 또 다른 측면에 기반하는 세계의 가능성을 납득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행동주의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몇몇 사람에게 《육식의 성정치》는 여성, 동물, 환경을 위한 오랜 실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책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그토록 소외돼온 이유를 깨달을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소개해줬다. 우리들의 삶이 지닌 의미를 이해시킨 셈이다. ― 15쪽
《육식의 성정치》는 우리가 먹는 어떤 것, 더 정확히 말해 어떤 존재가 우리의 가부장제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고, 또한 육식에 부여된 의미가 사나이다움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인종주의와 가부장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세계에서는 남성들이 공적 영역(고용과 정치)이나 사적 영역(하루 평균 네 명의 여성이 구타로 사망하는 미국의 가정)에서 여성보다 큰 권력을 행사한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하려는 주장은 성정치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구조화되는 방식이 우리가 동물, 특히 소비되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연관된다는 사실이다. 가부장제는 인간/동물 관계 속에 내재돼 있는 젠더 체계다. 더욱이 이 젠더 구조는 성별에 따라 알맞은 음식을 교육하는 교육 체계도 포함한다. 우리 문화에서 남자라는 존재는 스스로 인정하든 부인하든 여러 가지 정체성을 공유한다. 그 정체성은 ‘현실의’ 남성들이 공유하기도 하고 공유하지 않기도 한다. ― 33쪽 무엇이 고기를 남성 지배의 상징이자 이 지배를 찬양하는 도구로 이용되게 만들었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일 테지만, 젠더 불평등이 육식이 선포하는 종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에서 고기를 수중에 넣는 쪽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가치 있는 경제 상품이었다. 이 상품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성보다 훌륭한 사냥꾼이기 때문에 이 경제적 재화를 통제하는 일도 남자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고기가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하고 반비례 관계에 있었다. ― 92쪽 우리에게는 서로 평행선을 그리는 사안들, 곧 여성과 동물에 공통된 억압의 흔적을 추적하고 은유의 문제와 부재 지시 대상의 궤적을 뒤쫓을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나는 대상화, 절단, 소비의 주기를 제안한다. 이 주기가 우리 문화에서 동물 도살과 여성 성폭력을 서로 결합한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대상화는 억압자가 또 다른 어떤 존재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억압자는 이 존재를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를 부정하는 성폭행과 살아 숨쉬는 존재인 동물을 죽은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도살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과정은 절단, 또는 잔인한 해체, 마지막으로 소비로 이어진다. 앞서 예를 든 대로 남성은 글자 그대로 여성을 먹기도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여성에 관한 가상적 이미지들을 소비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비란 억압의 이행이며, 자유 의지와 산산이 조각난 정체성이 완전히 소비돼 사라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주체는 우선 은유를 통해 판단되거나 대상화된다. ― 113~114쪽 잘못된 명칭의 문제는 글자 그대로 또는 상징적으로 이분법적 사고의 이면에 숨겨져 있다. “고기란 죽은 도살된 동물의 살점”이라는 문장이나 “고기는 살인”이라는 좀더 노골적인 문장은 글자 그대로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상징적 사고하고는 거리가 멀다. 채식주의자의 투쟁 대상의 일부는 상징적으로 사유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에서 글자 그대로 문제가 되는 요소다.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채식주의의 메시지와 방법은 지배적인 견해하고 충돌한다. ― 159쪽 이 장에서 나는 ‘중단’이라는 텍스트상의 전략 덕에 현대의 여성 작가들이 소설을 쓰다가 채식주의에 관련된 사건을 이야기 중간에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채식주의적 ‘중단’이 생기는 경우는 다음 네 가지 주제에 관련된다. 첫째, 남성의 폭력 행위에 맞선 거부, 둘째, 동물과 여성의 동일시, 셋째,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을 향한 거부, 넷째, 여성 억압, 전쟁, 육식으로 구성된 타락한 세계에 맞선 대립항으로서 채식주의, 평화주의, 페미니즘으로 구성된 이상적 세계의 구상이다. ― 239쪽 역사에서, 그리고 문학 작품에서 여성과 채식주의의 동맹 관계는 꽤나 왜곡돼 있다. 그 결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들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과거의 여성 채식주의자들은 자기가 페미니스트 이론가라는 사실을 숨긴다. 우리는 두 개의 감춰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감춰진 여성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혼동하기 쉬운 동물 행동주의와 여성 채식주의의 역사다. 역사가들과 문학 비평가들이 채식주의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상황이 지금 여성사가 맞닥트린 현실이다. 그러나 역사와 문학 비평에서 일어나는 왜곡은 역사가와 문학 비평가들이 텍스트에서 마주치는 채식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유지하는 육식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역사가와 문학 비평가들은 채식주의 신체가 갖는 의미에 관심이 없다. ― 294쪽 인류학적 포르노그래피에 따라 종의 불평등은 젠더 불평등을 전달한다. 삶의 특징으로 보이는 현실은 사실 한쪽으로 향하는 구조다. 광고, 신문 삽화, 포르노그래피와 대중문화의 융합을 통해 반복된 완전한 문화라는 관점은 특수한 관점일 뿐이다. 인류학적 포르노그래피는 남성들이 곳곳에 도사린 여성 혐오에 드러내놓고 결합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보통 사적이라고 여기는 대상을 공공연히 소비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은 여성들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소비하는 행위를 그저 장난스럽고 해롭지 않은 행동(“그냥 농담이야”)으로 만들어버린다(결코 비하는 아니라는 뜻이다). 여성들은 보통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상처받은 듯 보이지 않아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솔직해지지 않으면서도 추락한 여성 이미지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그냥 돼지를 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후터스나 펜트하우스에서 밥을 먹을 뿐이다.” “이건 그냥 광고 포스터다.” ― 382~383쪽 --- 본문 중에서 |
채식주의, 동물권, 페미니즘 ― 육식과 남성 지배 아래 억압받는 존재들의 연대
페미니즘과 채식주의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애덤스는 육식과 가부장제 남성성을 짝짓는다. 또한 가부장제가 지닌 폭력성의 근원을 육식에서 찾는다. ‘사냥하는/돈 버는 남성’과 ‘농사짓는/육아하는 여성’이라는 고정된 성역할은 육식하는 남성과 채식하는 여성이라는 도식으로 연결된다. ‘부재 지시 대상(absent referent)’으로서 동물과 여성을 똑같이 ‘그 여자(her)’라고 동일시하는 은유를 통해 육식 안에 숨겨진 폭력성은 남성 지배 구조로 이어진다. ‘힘’을 써야 하는 가장이나 남성이 먹을 음식으로 당연히 고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통념을 드러내는 여러 텍스트는 고기가 그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힘 또는 권력 같은 남성 지배 문화의 가치를 상징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나아가 고기, 곧 음식의 재료로 쓰려고 도살된 동물을 다루는 여러 텍스트를 살펴본 뒤 동물과 여성이 동일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애덤스는 육식이 단순한 식품의 범주를 넘어 문화적 범주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버지니아 울프의 《야곱의 방》과 《3기니》, 앤 타일러의 《태엽 감는 사람》,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을 비롯해 문학 작품, 신문, 잡지, 광고 등 많은 텍스트 자료를 활용했다. 이런 여러 텍스트에 내재된 육식의 가부장제적 의미를 탐색하면서 애덤스는 육식이 ‘여성화된 고기’를 먹어서 남성 지배를 강화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을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평화의 가치를 지지해온 페미니즘과 채식주의에 내재된 대안성을 드러내고, 여성들이 채식이라는 선택지에 침묵하게 만드는 남성 지배 문화의 은폐된 전략을 날카롭게 추적한다. 애덤스는 동물과 여성을 똑같이 ‘그 여자’라고 부른다. 이런 호명을 통해 동물 도살과 여성 성폭력을 동일시하면서 남성 지배 문화를 전복하는 데 필요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1차 대전을 비롯한 침략 전쟁에 찬성한 정통 좌파들하고 다르게 페미니스트와 채식주의자들이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에 적극 반대한 사례를 살펴보면서 폭력적 가부장제를 넘어설 대안을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찾으려 한다. 나아가 침묵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육식 문화와 그런 공고한 체제가 지닌 위협을 고발하는 페미니즘-채식주의 사이의 변증법을 발견해야만 페미니즘, 채식주의, 평화주의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육식의 포르노그래피를 넘어 ― 페미니스트가 되자, 채식주의자가 되자, 《육식의 성정치》를 읽자 한 개인의 육식이 지니는 의미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밝히기 위해 1부 ‘고기의 가부장제 텍스트들’에서는 ‘부재 지시 대상’과 ‘여성화된 단백질(feminized protein)’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고기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1장 ‘육식의 성정치’에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고착된 성역할이 고기의 분배를 결정하는 현실을 살펴보고, 2장 ‘동물 성폭행, 여성 도살’에서는 여성 억압과 동물 억압이 서로 의존한다는 전제 아래 여성적 언어를 남성적으로 소비하는 문제를 다룬다. 3장 ‘은폐된 폭력, 침묵의 목소리’와 4장 ‘말이 살이 되어’에서는 고기/여성의 소비에 관련된 가부장제 언어에 주목한 뒤, 지배적 세계관에 맞서는 채식주의자가 자기들이 내는 작은 목소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견고한 육식 문화 속에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치는지를 들여다본다. 1790년부터 오늘날까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채식주의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살펴본 2부 ‘제우스의 복부에서’는 이 시기의 문화 전반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는 대신에 육식의 성정치를 좀더 뚜렷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문학 텍스트와 채식주의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5장 ‘해체된 텍스트들, 분해된 동물들’에서는 육식의 성정치에 저항하는 텍스트들이 지닌 특징을 ‘채식주의 단어 낳기’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6장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채식주의자 괴물’에서는 채식주의 단어를 낳고 있는 텍스트들, 곧 페미니스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버지니아 울프의 《야곱의 방》과 《3기니》, 앤 타일러의 《태엽 감는 사람》 같은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과 채식주의 역사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7장 ‘페미니즘, 1차 대전, 현재의 채식주의’에서는 서구에서 1차 대전 시기에 틀을 갖춘 뒤 20세기를 거치며 발전한 페미니즘, 채식주의, 평화주의의 황금시대라는 관념을 추적한다. 다양한 시도를 거쳐서 애덤스는 오늘날 채식주의가 지니는 포괄적이고 누적적인 성격을 밝힌 뒤, 페미니즘과 채식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을 역사적이고 내재적으로 규명한다. 이런 독특한 논의를 바탕으로 3부 ‘쌀을 먹는 것이 여성을 믿는 것’에서는 여성 억압과 동물 억압 사이의 의존성을 다시 확인한다. 나아가 오늘날의 페미니즘 담론이 육식 문제에 관련해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8장 ‘채식주의 신체에 관한 왜곡’은 《육식의 성정치》의 주된 관심 대상인 윤리적 채식주의를 넘어 채식주의를 선택함으로써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부과한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불행을 비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9장 ‘페미니즘-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위하여’에서는 이른바 채식주의의 탐색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윤리적 채식주의를 수용하는 양상(고기의 무의미성을 고발하기→인간이 동물하고 맺는 관계에 새로운 이름 붙이기→육식과 가부장제 세계를 비판하기)을 분석한다. 출간 25주년 기념판에 추가된 긴 후기에서는 ‘인류학적 포르노그래피’라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여 음식으로 소비되는 가축을 성애화하고 여성화하는 육식의 성정치를 보여주는 최근 사례와 많은 시각 이미지를 제시한다. 전세계 독자들이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보낸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애덤스는 문학 작품, 팸플릿, 미디어, 광고, 일상 대화 등에 내재된 육식의 가부장제적 의미를 탐색하는 ‘고기의 텍스트’ 분석, 곧 ‘텍스트의 성정치’를 시도한다. 이런 시도는 페미니스트와 채식주의자 사이에 대화의 통로를 열어줄 뿐 아니라 페미니즘-채식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채식을 해야 하고 채식주의자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