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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사람들

종이로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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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6쪽 | 576g | 140*210*30mm
ISBN13 9788954617376
ISBN10 8954617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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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토성의 힘은 투시력이다. 석면과 나무로 된 지붕널, 타르 종이, 합판, 누렇게 바래가는 마분지 상자들을 쌓아둔 다락방의 어둠, 페인트칠을 한 석고보드 벽, 처음에 빙빙 도는 풍향계에 부딪친 다음부터 주의해서 피하는 납으로 된 날개가 달린 천장의 선풍기를 꿰뚫어볼 수 있다. 토성은 폴리에스테르와 아크릴 섬유로 된 시트를 꿰뚫어본다. 그 밑에는 잠든 꼬마 메르세드가 누워 팔로 베개를 감싸 안고 발을 맞비비고 있다. ---p.106

스마일리 토성은 이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앞으로 무슨 내용이 올지 몰랐지만, 내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팬티 바람으로 거실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그 자식이 느끼는 통렬한 슬픔과도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손톱과 발톱이 쑤셨고, 으깬 레몬씨를 문 듯 쓴맛이 입안 가득 차올랐다. ---p.130

소설가 플라센시아 너에게 편지를 쓰느라 밤을 꼬박 샜어.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편지였지. 내 삶에서 긴 세월을 앗아간 문장들. 너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 그러나 잠에서 깨어보니 편지는 재처럼 변해 있었어. 손을 대보니 산산이 바스라졌어. 지금 일어나는 일은 이 세계의 자연스러운 물리적 현상이야. 네가 백인 사내와 붙어먹는 바람에 내 천장널이 느슨해지고, 내 뼈의 칼슘이 감소하고, 내 옷의 솔기가 풀려나가고 있어.
모든 것이 약해지고 있어. 난 통제할 힘을 잃었어. 이야기가 제멋대로 엇나가고 있어. 소설이 그리던 궤적이 그놈 때문에 바뀌어버렸어. 그놈들이 모든 것을 다 식민지로 만들고 있단 말이야. 아메리카 대륙도, 우리 이야기도, 우리 소설도, 우리 기억도…. ---p.149

리즈넌 너 자신만 남기고 모든 것을 팔아먹었어. 그러니까 너는 남아 있지만 그 외에는 다 팔아먹고 없다고. 넌 그들의 손에 이 모든 것을 넘겨줬어. 도대체 무얼 위해서? 단돈 이십 달러 받고 책표지에 네 이름을 올린다는 허영심 때문이었지. 하지만 난 너를 책망하거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여기 온 건 아니야. 너 좋을 대로 해. 단 부탁이 하나 있어. 이 책 바깥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언젠가,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도 아이들을 갖게 될 거야. 내 아이들이 엄마가 부정하고 잔인하고 영웅을 모욕한 여자로 나오는 책을 보게 되는 건 싫어. 샐,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날 이 소설에서 제발 빼줘. 이 책을 나 없이 다시 시작해. ---pp.175~176

메르세드 데 파펠 그녀는 연인들이 남긴 흔적과 낙서들을 모조리 벗겨내고, 어쩌다가 세탁소에서 셔츠를 찾을 것, 오전 아홉시 치과의사와 약속, 우유, 빵, 시리얼 등등 남자들이 자기 몸에 적어놓은 메모나 장 볼 목록 따위만 남겨놓았다.
메르세드 데 파펠에게는 연인들의 흔적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남자들은 입술과 혀에 흉터가 져서 늙어서까지도 깊이 남게 될 벤 자국을 안고 떠났다. 남자들은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를 걷다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똑같은 종이에 벤 가는 흉터를 지닌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따금씩 상처의 깊이와 연륜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 입술을 빨았다. 가끔은 갈라진 혀를 도마뱀처럼 날름거리기도 했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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