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행성에서 온 형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현성이는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가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지도 않고 즐거운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느직느직 집에 들어서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옆집이 달라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마당에 웬 젊은 남자가 서 있습니다.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만난 옆집 사람. 그런데 이 옆집 형, 어쩐지 심상치 않습니다. 분명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형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지를 않나, 현성이가 하는 생각은 또 어떻게 알고 대답을 척척 하는 건지…….
“이름이 뭐야?”
“차현성이요.”
“현성……. 밝은 별이란 뜻이구나. 내 이름은 무지 길고 어려워. 그냥 뮤라고 불러.”
나는 입속말로 형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뮤…….”
(중략)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 생각을 어떻게 아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까부터 이상했어.”
형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뇌파를 통해 말을 주고받는 거야, 이렇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형을 쳐다보았다.
‘우아, 이게 어떻게 가능해?’
‘같은 주파수끼리 통하는 뭐 그런 원리야. 서로가 같은 뇌파를 내보내어 난 네 생각을 읽고, 넌 내 생각을 읽는 거지.’
‘신기해!’
‘우리 행성에서는 이렇게 소통해.’
‘우리 행성? 거기가 어딘데?’
‘시리우스 행성.’
‘처음 들어 봐.’
‘지구인들이 마젤란은하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 작은 행성이야. 지구랑 아주 많이 닮았어.’ --- pp.76~77
매일 조금씩?
따뜻한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나직 자신을 걱정해 주는 뮤에게 현성이는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뮤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지요. 그림을 그리면서 보낸 하루 동안의 이야기, 남몰래 키워 온 꿈 이야기, 그리고 아빠가 자신을 할머니 집에 버리고 떠났던 그날의 이야기까지…….
잠들기 전, 나는 늘 생각한다.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할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새엄마랑 이혼하지 않았을 텐데. 아빠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생활비를 부쳐 주겠다는 약속, 전화 자주 하겠다는 약속, 자리 잡히면 데리러 온다는 약속, 아빠가 할머니에게 한 약속들을 꼭 지켜 주면 좋을 텐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빠가 날 찾으러 영영 안 오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스케치북에다 아빠를 그렸다. 아빠는 돈이 열리는 나무에서 동전을 따고 있다. 새엄마는 아빠더러 뜬구름 잡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 뒤엔 꼭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시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 눈이 삐었던 거지.”
다음으로 나를 그렸다. 나는 멋진 차를 운전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은 모습을 그리기가 힘들어서 자동차와 사람을 따로따로 그렸다. 이 차를 몰고 아주 멀리 씽씽 달려가고 싶다.
형이 옆으로 와서 그림을 보며 말했다.
“돈이 열리는 나무야? 그런데 현성이는 걱정이 열리는 나무 같네. 걱정이 주렁주렁…….”
고개를 들자 형의 파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으응, 그런가? 휴우…….”
머릿속에 형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현성이, 많이 외로웠겠네…….’
형의 눈빛과 목소리가 꼭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것 같았다.--- pp.35~36
그래, 한번 달려 보는 거야!
현성이는 뮤를 만나고부터 점차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없던 밥맛이 돌고, 앉아서 꼬박꼬박 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몸으로 이제는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도 거뜬히 해내지요. 게다가 낯선 여자아이와 마주 서서 이야기도 나누게 됩니다. 여자아이라면 눈 한번 제대로 마주쳐 본 적이 없었는데……. 혹시 뮤가 끓여 준 차를 마신 탓일까요?
달빛 좋은 날에는 마당에 나가서, 형이 꽃들에게 들려주는 음악을 들었다. 하루는 그렇게 서 있는데 갑자기 달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래, 한번 달려 보자. 나도 할 수 있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동네를 내달렸다. 몸이 공기를 가르며 나아갔다. 바람이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다리가 가볍지는 않았지만 무겁지도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렸다. 몸이 부서져라 달리다가, 토할 만큼 숨이 차고 나서야 멈추었다.
‘어라, 이건 뭐지?’
거친 숨과 함께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제 보니 달리는 것쯤 나도 할 수 있었네! 형이 봤으면 엄지 척을 해 주었을 것이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쉬웠다. 나는 날마다 달렸다.
--- pp.5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