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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 어디에 가지 않아도, 무엇을 사지 않아도, 함께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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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top100 1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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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98g | 135*205*20mm
ISBN13 9788960516762
ISBN10 896051676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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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모든 일에 당당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할 말이 있으면 눈을 맞추고 제대로 이야기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아니라고 어엿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어른이 되고 나니 모든 일에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말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면 어떡하나 고민하다 입을 닫아 버리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 뒤로 숨어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꾹꾹 눌러 낸다.
버티기 힘든 날이 찾아와도 그저 참고 또 참는다.
소란스러운 길을 지나가는 것보단 조용한 길을 지나가는 게 좋으니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기」중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유명한 맛집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본다.
좋은 카페가 있다는 소식에 먼 거리를 감수하고 발걸음을 한다.
행복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행복을 얻으려면 집 밖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고, 그렇기 때문에 발견한 행복이 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매일 숨 가쁘게 보내다 마주하는 이 시간은 생각보다 더 달콤해서,
그 속에 녹아들고 싶게 만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른해
눈꺼풀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면 그냥 그대로 눈을 감고 있어도 된다.
그저 주어진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시간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행복이 스며 있다.
바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알 수 없는 행복이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특별한 계획이나 약속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방 창문 밖의 아름다운 하늘이 주는 행복도 그에 못지않으니까.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하늘의 색과 구름의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서 벗어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다 스르르 잠들어 버리면, 그게 그날의 행복인 거다.
부지런하지 않아도 참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가만히 있어도 좋아」중에서

그동안 나는 빵보다는 밥이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주장하며
밥 애호가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세월이 무색하게 집 밖을 나서면,
빵을 탐색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동네마다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빵집도 많고,
커피와 빵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카페도 많아
빵을 탐색하기에 어렵지가 않다.
어딜 가도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나는 탓에 하나둘 맛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빵의 맛.
담백하거나 짭짤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바게트나 깜빠뉴,
치아바타를 사랑하게 되었고 발 도장을 찍은 빵집이 늘어나면서
나만의 빵집 리스트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십리에 가면 플레인 치아바타와 올리브 치아바타,
상수에 가면 바질 크런치, 도산공원에 가면 버터 프레츨.
빵을 사랑하게 된 후부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겁다.
집을 벗어나 특별한 음식을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끔 허전함이 밀려오곤 했는데,
이제는 ‘오늘은 또 어떤 빵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소소한 기쁨이 하나 생겼다.
자주 갈 수 없으니 한가득 사 오는 탓에 팔이 좀 아파도,
빵을 사 오는 날은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빵 투어」중에서

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 불협화음은 피하도록 한다.
클래식을 말하고 싶은데 펑크록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우니까.
펑크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클래식을 말하면
궁금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되니까.
반대로 클래식이 클래식을 만나면 아름다운 화음이 생긴다.
“당신도 이걸 좋아하는군요. 저도요! 혹시 이것도 좋아하나요?”
“와! 이걸 알고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유쾌한 앙상블이 생긴다.
웃음소리가 늘어나고, 한 시간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대화가
두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된다.
나와 앙상블을 함께해 주는 사람, 이게 바로 인연 아닐까. ---「앙상블」중에서

따뜻한 물에 추위를 벗어 던지고, 물의 온기가 남은 몸으로
가장 따뜻한 곳에 앉는다. 양손 가득 귤을 가져와 손끝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먹으면, 겨울에 맛보는 최고의 순간 완성. ---「겨울의 행복」중에서

무척 뜨거웠던 여름날, 문득 맥주 맛이 궁금해졌다.
답답한 속이 풀어진다는 말이 진실인지 알고 싶었다.
무더운 그날의 날씨 탓이었는지, 아니면 즐겨 봤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맥주 마시는 장면에 마음이 동한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술에 관심도 없고, 술 마실 일을 만들지도 않아서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그 맛을 모르고 지냈다.
한번은 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거 마시면 진짜 속이 시원해?”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묻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해 여름은 유독 맥주를 마시면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청춘시대]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는데,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어둠 속에서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런데 한 캐릭터가 유독 마음을 콕콕 찔렀다.
힘들고 벅찬 매일을 견뎌 내면서 일주일에 딱 한 번
네 캔에 만 원짜리 편의점 맥주에 기대는 주인공 ‘진명’이.
그날은 진명처럼 나도 맥주에 기대어 보고 싶었다.
그 여름의 나는 의지할 데가 없어 많이 힘들었으니까.
기댈 곳이 없다는 건 내 세상을 차지하지 않던 것까지
원하게 되고 떠올리게 만드는 걸까.
그 여름 맥주를 마셔 봤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내 대답은 아니다.
외롭게 사는 것에 익숙하고, 꾹꾹 담아 두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어쩌다 마주치는 시원한 맥주 광고를 보며 상상에 맡기고 있다.
그런대로 살 만한가 보다. ---「맥주의 맛」중에서

나는 내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범하게 사는 일이란 보통을 유지하는 삶이다.
특별히 화나는 일, 짜증 나는 일, 슬퍼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마음 요동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잠깐 쏟아지는 소나기이길 간절히 원한다.
끙끙 앓게 만드는 일만 아니면 소나기는 얼마든지 맞을 수 있다.
사는 동안 나쁜 일 한번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니까.
나를 뒤흔들어 버리는 큰일만 아니면 된다.
대신 아주 큰 행복도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행복도 적당히, 슬픔도 적당히.
적당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돌멩이 하나 던져도 금세 잔잔해지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가기를 원한다.
---「적당히, 평범하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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