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열반경大涅槃經은 시방삼세十方三世 부처님께서 생사고生死苦를 완전히 해탈하시고 대열반大涅槃을 증득하신 일승원교一乘圓敎로서 혹?업·고惑?業?苦 삼장三障이 두터운 중생들을 제도 하시기 위하여 우리 세존께서 성불하신 후 49년간 설법하신 오교십승五敎十乘 중의 최상법문이며 최후설법이다.
이 경에서 말씀하신 가장 큰 특징을 말한다면 중생의 개유불성皆有佛性과 여래의 상주불멸常住不滅 하심과, 일천제一闡提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과, 부율호법扶律護法 등과 다른 경보다 가장 많은 팔백비유설八百譬喩說 등이다. 그리고 범부와 외도들이 보는 허가虛假, 허망虛妄의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인 사전도四顚倒와 성문, 연각이 수행한 반자교半字敎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 등인 사전도四顚倒를 모두 타파하시고 여래의 사진실덕四眞實德인 진상眞常 진락眞樂 진아眞我 진정眞淨의 열반사덕涅槃四德을 잘 밝히신 만자교滿字敎이다.
그 의미는 설산雪山의 비니肥? 향초香草만을 먹는 대력백우大力白牛에게서 얻어지는 우유牛乳 중의 최상인 제호醍?의 맛과 같은 것이다. (6p)
※ 대반열반경은 남북조시대 초기에 활약한 역경승(담무참, 385-433) 삼장법사에 의해서 한역되었다. 이로써 열반경은 화엄경, 법화경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정수를 담은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널리 유통될 수 있었다. 담무참이 당시 벌인 역경사업과 불사는 역대 최고의 역승으로 추앙받는 구라마집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담무참의 업적은 열반경의 편역 하나 만으로도 족하다고 할 만하다. 그만큼 열반경의 역출은 이후 대승불교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담무참의 일생 자체가 열반경과 갚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담무참의 행적에 대해서는 양고승전(양나라 때 혜교스님이 편찬했다)에서 비교적 자세히 술(術)하고 있다. (10p)
※ 담무참이 대승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열반경과의 인연에 의해서이다.
당시까지 그의 강설은 매우 정밀하고 논리적이어서 학문과 변론에 있어 능히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대승학자인 백두선사를 만난 후 상황은 달라졌다. 담무참은 백두선사와 논쟁을 벌였으나, 100여 일이 지나도 끝을 보지 못하였다. 담무참이 아무리 정교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논리로 공격하여도, 백두선사에게서 허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담무참은 논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무참은 선사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물었다.
“스님의 설법이 심오함을 보니 제가 감히 접하지 못한 경전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어떤 경전을 공부하신 것입니까?”
이에 백두선사는 나무 껍질에 새긴 열반경을 보여줬다.
담무참이 그 내용을 살펴보니 그 뜻이 광대무변하여 자신이 공부한 소승경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틀 안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크게 깨우치게 되었다. 이후 담무참은 대승에 전념하여,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대소승의 경전 2백만 자를 암송하게 되었다. 담무참에게 있어 열반경은 그를 대승의 바다로 뛰어들게 한 계기일 뿐 아니라 대승의 사상을 가장 대표하는 경전이었다. 때문에 그는 평생토록 열반경을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역경사업에 있어서도 가장 공을 들였다.
담무참은 대승을 공부한 이후 지금의 중앙아시아를 따라 홍법의 역정에 들어선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0권 보살계경(菩薩戒經), 보살계본(菩薩戒本) 등의 경전을 지참하고 계빈국(지금의 중국 카슈미르 지방)을 거쳐 구자국(지금의 중국 산산현 남동쪽 지방)에 머물다가, 다시 동진하여 돈황에 다달았다. 돈황은 당시 중국과 서역의 교류의 통로로서 경제와 문화가 발달하고 불교가 성행하여 불국(佛國)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담무참은 돈황에서 몇 년간 머물며 중국어를 배우고 난후 역경사업을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보살계본이 바로 돈황에서 역출된 경이다. 이후 담무참은 다시 동진하여 고창국(高昌國=현재 감숙성 무위시, 당시 북량국의 수도)에 도달해 당시 북량국의 왕(王) 저거몽손(401년-433년 재위)을 만나고 평생을 그와 함께 홍법과 역경사업에 치중하게 된다. (11p)
※ 그중 가장 의의가 큰 경전은 말할 것도 없이 대반열반경이다. 담무참 이전에 동진의 법현과 불타발타라가 공역한 (니원경=니원(泥洹)은 열반을 의미하는 다른 번역어이다) 6권이 열반경에 해당하나 그 내용이 소승불교에 국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대승의 열반경을 역출한 것은 담무참이 최초인 것이다. 그가 처음 인도에서 지니고 온 열반경 10권은 그 중 일부분으로 초분에 해당한다. 담무참은 이 10권을 모두 역출한 후 다시 인도로 돌아가 나머지 부분을 구하고자 하였다. 마침 모친상을 당한 인도에서 1년여를 머문 후 돌아와 우전국(타림분지 남단의 고대국가, 지금의 신장 화전현)에서 나머지 분량을 수집하여 북량국으로 돌아왔다. 이로서 대반열반경 36권(현재 40권)을 역출할 수 있었다(417). 그런데 나중에 인도 사문 담무발이 이 열반경을 보고 완본이 아니라 하자, 담무참은 다시 나머지 부분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담무참은 이때, 저거몽손에게 살해를 당해(433, 향년49)끝내 숙원의 사업이던 열반경의 완역을 이루지 못하였다. (13p)
※ 담무참이 역출한 대승경전 중에서 특히 열반경은 일승원교의 불신(佛身) 및 불성론(佛性論)을 통하여 대승의 근본사상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한 경전으로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대승경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담무참은 열반경을 통하여 대승의 진리를 깨달았고 평생토록 열반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마지막에도 열반경을 구하다가 생사를 달리한 인물이다. 담무참이 왜 평생토록 열반경을 중요시 하였을까? 아마도 그는 열반경에서 다른 그 어떤 경전에서도 얻지 못할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열반경에서 얻은 무상(無上)의 진리가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오늘날 열반경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하나의 화두일 것이다. (15p)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