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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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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68g | 128*188*20mm
ISBN13 9791160271515
ISBN10 116027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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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대번에 병원이라는 걸 알았지만 받을 용기가 없었다. 뭐하러? 무슨 말을 들을지 아는데. ‘아버님께서 오늘 아침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고통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다. 마흔다섯 살짜리 고아는 정말이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피붙이가 아무도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흔다섯 살이나 먹은 나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 p.7

“정직하게 말할까요? 크게 도와줄 건 없어요.”
“좋습니다, 그럼 여길 왜 왔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사실 자살할 동기는 많지만……. 내가 온 건, 그러니까…….”
“확신을 갖기 위해서?”
“네, 바로 그거예요.”
심리치료사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잡담을 하고 있다는 듯. 무슨 얘기든 잠자코 들어주기 위해 심리치료사들이 어떤 특수 훈련을 받는진 모르겠지만 나의 심리치료사는 아주 프로인 것 같다. 내가 진짜 미쳤나. 이 남자를 쳐다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건 심리치료가 아니라 한 방의 허리 힘이라고 생각한다. 먼지를 털 듯 모든 걸 날려버릴 정도로 아주 강력한 허리 힘. --- p.20

“부모님은 늘 말했어요. 우수한 성적과 좋은 직업이 중요하다고. 행복한 거, 즐기는 거, 친구를 사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어요. 내 부모님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한 아이였는지, 나에게 행복한 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제 부모님은 안 계시잖아요.”
상담료에 포옹이 포함되지 않은 게 유감이다. 이 남자의 근육 질 품에 꽉 안기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도록.
“네, 그래서 나는 길을 잃었어요. 마흔다섯 살의 노처녀가 슈퍼마켓에서 미아가 된 것 같다고나 할까요.” --- p.35

“그 여자가 죽었다는 걸 몰랐어요. 내가 왜 그 여자에게 갔을까요, 바닥에 누워 있는 노숙자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파리에는 거리나 지하철역에 거지가 많잖아요. 근데 왜 그 여자에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여길 나가면서 분명히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마치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절망한 여자들끼리의 교감 같은 거였을까요? 그 여자는 떨고 있었고, 침묵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오줌을 지리면서 혼자 외롭게. 아무도 그 여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악취를 풍기고 있었어요. 지독한 냄새였죠. 하지만 나는 자석에 끌리듯 다가갔어요. 그 여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 손을 잡아줬어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잡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에는 그게 맞는 행동이었으니까. 내미는 손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어요?” --- p.136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 그녀가 중얼거린다. “한 남자와 20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딴 여자 때문에 버림받는 게 어떤 기분인지 너는 몰라. 더 젊고 더 예쁜 여자 때문에.”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부부 생활을 몰라. 하지만 고독은 아주 잘 알지. 베로니크, 너는 지금 고독한 길을 가고 있어. 너는 깨닫지 못하지만 너의 슬픔, 복수심은 너 자신만 힘들게 할 뿐이야. 슬픔과 복수심이 너를 고립시키고 있어. 너는 다른 사람들, 네 자식들과 단절하고 있잖아. 집에 혼자 처박혀서 지난날을 되씹으며 너는 지쳐가고 있어. 고독은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 다쳐서 고통스럽고 아픈데 크레바스에서 다시 올라가려면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디에도 너를 보거나 네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하지만 너를 에워싼 얼음은 깨지기도 쉽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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