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가 웃음 지었다. 「재미있는데요. 그런데 왜 바보의 알파벳이라고 해요? 제가 듣기엔 아주 그럴듯한데.」
「그냥 그렇게 제목을 붙인 거야. 바보스러워서가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단다. 초보자의 알파벳이나 혼자만의 알파벳이라고 하는 것들도 다 비슷한 거야. 누구든 자기만의 알파벳 노래를 만들 수 있어.」
「그렇군요.」 피에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전쟁 중에 북아프리카에 파견되었을 때, 우리 소대에 패짓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말이 자기는 한 번도 요크셔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대. 그런데 그는 장소마다 붙여진 이름들, 그러니까 지명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그러면서 자기가 죽기 전에 알파벳의 각 문자로 시작되는 곳에서 하룻밤씩 묵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아마 그렇게는 못 했을 거다. 요크셔에는 X, Y, Z 같은 문자로 시작하는 곳이 별로 없거든.」
--- pp.66~67
편지를 다시 들여다본 그는 마침내 마음이 닫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본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삶이었다. 이 우주에서 그들이 각자 따라가던 외로운 궤도가 어느 한 시점에서 서로 겹쳐졌었지만, 이제 그의 작은 세계의 중력은 바뀌어 있었다. 이제 그가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한 여인, 아직도 좋아하지만 다시 만나기를 바라지는 않는 여인일 뿐이었다. 그녀는 떠나간 것이다.
--- p.318
홍콩에 갔을 때, 그는 바다 건너 중국을 응시하면서 살아생전 그곳에 갈 일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호텔에 돌아온 뒤, 중국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국경선 너머로 보았던 그 원시적이고 아름다운 나라를 가만히 음미해 보았다. 내륙 깊숙한 곳에는 셴양Xianyang이라고 불리는, 적어도 영어로 음역하면 그렇게 불리는 도시가 있었다. 그 도시는 그의 마음속에 들어와, 그가 가보지 못할 모든 장소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정사와, 치유의 생명이 생겨났던 그 시간과 장소에 마음속으로 셴양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