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종종 지인들에게 농산물을 선물한다. 식구가 많은 어른이나 어느 정도 살림이 안정된 주부들은 이런 나의 선물을 무척 반기고 좋아한다. 하지만 1인 세대나 아이가 없는 부부, 3명 이하의 가정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얼굴이나 전화 통화에서 그대로 드러나 보내고도 미안해질 때가 많다. 그들은 아침은 굶거나 간단한 걸 마시고, 점심은 직장과 학교에서, 저녁도 만만한 아무거나로 대체한다. 그래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횟수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가 될까 말까다. 집에서 밥 먹는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해서 먹는 것을 싫어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만들어 먹는 것은 어려워하지만, 차려 주면 게 눈 감추듯 잘 먹는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와, 진짜 맛있어.” 또는 “나 원래 밥 이렇게 많이 안 먹는데,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다만 그들은….
만들 줄 몰라서!
만들기 번잡해서!
남는 재료가 부담스러워서!
집밥을 먹지 못한다.
먹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이 책에 나오는 한 그릇 집밥은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가, 편의점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간편식을 데우는 정도의 정성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당신도 제법 그럴듯한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한 그릇을 만들 수 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요령만 알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굶지 말고, 아무거나 먹지 말고, 시작해 보자. 집밥은 때로 당신의 지친 영혼도 위로해 주니까.
---「최소 한 그릇 집밥이란?」중에서
강하고 센 맛을 좋아하는 사람과 싱겁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
여 있을 때 음식을 만드는 입장에서 은근히 신경 쓰인다. 그럴 땐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좋은 불고기덮밥을 만들어 보자.
재료(1~2인분)
소고기 300g, 파 1개, 양파 1/2개, 당근 1/4개, 다진 마늘 1큰술, 양조간
장 3큰술, 올리고당 2큰술, 오렌지주스 3큰술, 참기름 1큰술, 식용유 1
큰술, 부추 약간(생략 가능), 후추 약간
순서
1 파와 부추는 송송 썰고, 당근과 양파는 채 썰어 놓는다.
2 소고기 300g에, 양파1/2, 파 1/2, 다진 마늘 1큰술, 양조간장 3큰술, 올리고당 2큰술, 오렌지주스 3큰술, 참기름 1큰술, 후추를 약간 넣고 30분 이상 재워 놓는다.
3 팬에 식용유 1큰술을 두르고 파1/2를 센 불에 볶다가, 양념된 고기와 당근을 넣고 고기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만, 빠르게 볶는다.
4 불끄기 직전 부추를 넣고 밥 위에 얹어 낸다.
tip
오렌지 주스는 배즙이나 사과즙, 귤 주스, 매실 주스 등으로 대체 가능하다. 과일은 고기를 부드럽게 해 주고 잡내를 제거해 준다.
---「싫어할 수 없는 맛, 불고기덮밥」중에서
어릴 적 나는 유난히 편도가 약했다. 환절기가 시작되거나, 조금 피곤하거나, 주변 누군가가 감기에 걸리면 곧장 편도가 부어 열이 났고 온몸이 아파 며칠을 앓았다. 그럴 때면 나와 한방을 쓰던 할머니가 두툼한 이불을 꺼내 덮어 주고, 아스피린을 먹이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얹어 주었다. 이렇게 좀 있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들었고, 눈을 떠 보면 온몸에 통증이 사라진 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약을 먹는다 해도 며칠은 아파야 정상인데 그냥 하룻밤 끙끙 앓고 나면 나았던 게 신기한 일이다. 아이 특유의 회복 탄력성 덕분이었을까? 하지만 통증은 나았어도 열로 크게 앓고 일어난 아침이면,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입이 쓰고 뻑뻑했다. 그런 날엔, 할머니가 늘 뽀얀 죽을 끓여 주었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었다. 석유풍로에 불린 쌀을 넣고 끓이거나, 밥덩이를 물에 넣고 풀어지도록 끓여 주는 게 다였다. 그런데 따뜻한 죽을 후후 불어 먹고 나면, 뒷목 어딘가에 조금 남아 있던 어지럼이나 묵지근한 감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체 죽이 뭐라고….’
그저 쌀과 물로 이뤄진,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 그릇일 뿐이었다. 맛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밍밍함, 함께 먹는 반찬이라고는 소금 간한 시금치나물이나, 비름나물, 강짠지, 동치미…, 그것도 없으면 맨 간장 한 수저가 다였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병을 씻어 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당히 건강한 편인 내 아이들도 가끔 아플 때가 있다. 아프면 일단 병원에 다녀와 약을 먹이고 해열을 하면서 쌀을 불린다. 어릴 때 돌봄을 받는 입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아이를 키워 보니 열을 앓는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다. 열이 심하면 심할수록 아이는 많이 아파하고, 자칫 영구적으로 건강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열을 내려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 옆에서 온밤을 꼬박 새워야 하고, 지친 몸으로 가족과 아이가 먹을 것까지 챙겨야 한다. 심하면 열이 내리기 전까지 잘 먹지도 못하고, 먹었다가도 토해 버리기 십상이다. 아이에게 뭐든 먹이고 싶어도 먹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끓여 주신 죽의 의미를 말이다. 할머니는 불 피우기도 불편했던 시절, 밤새 간호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어 풍로에 죽을 끓여 주었다. 죽은, 그냥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 아니었다. 금쪽같은 아이가 얼른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약이자, 휴식이자, 사랑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가끔, 쓸쓸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프지 않아도 아픈 것처럼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다. 그럴 때는 쌀을 씻고 죽을 끓인다. 내가 내 손으로 끓인 죽이지만, 어릴 적 할머니가 풍로에 끓여 후후 불어 입에 넣어 주던 죽처럼 밍밍하고 별 맛없는 뽀얀 죽이다. 한 수저 한 수저, 입맛이 없어도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연하고 하얀 죽을 후후 불어 먹으면 마음에 스민 한기가 스르르 풀어진다. 아플 때 내 배를 쓰다듬어 주던 할머니의 손길 같은 연한 죽 한 그릇에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최소 에세이 - 쓸쓸한 날에, 쌀을 씻어 죽을 끓이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