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단순히 남성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최대한 주제넘지 않게 보임으로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옷을 입거나 말을 하거나 바라보거나 행동하는 방식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언제 말을 해야 하며, 무엇을 입어야 하고, 집에 아픈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일같이 여러 시간에 걸쳐 노력하며 수백 개에 달하는 사소한 결정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린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여성들의 이러한 노력은 대다수 남성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이 이렇게 노력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대부분의 남성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현실을 말할 뿐이다. 이것이 남성들과 일하는 여성들의 현실이다. --- p.36
여성이 겨우 용기를 내서 발언을 하더라도 첫번째 장애물을 넘은 것일 뿐이다. 다음 장애물은 훨씬 더 극복하기 힘들다. 여성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더라도 그 공을 남성이 채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올리비아가 똑똑한 발언을 하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다가 빌이 살짝 말만 바꿔서 동일한 요지로 발언을 하면 갑자기 천재 취급을 받는다. “역시 빌이야! 정말 날카롭다니까.” 한편 같은 회의실에 있는 여성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한다. “뭐 이런 엿같은 경우가 다 있어? 올리비아가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잖아!” 어떤 여성을 붙잡고 물어보아도 대부분 이런 상황을 경험해봤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어찌나 빈번한지 『마더 존스』라는 잡지에서는 「숙녀들은 마지막에: 남자들이 공을 가로챈 여성의 발명 여덟 가지」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를 싣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중나선 구조(로절린드 프랭클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이다 러브레이스), 그리고 모노폴리 게임(엘리자베스 매지) 등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공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린 카녜이 웨스트도 그 전형적인 사례다. “내가 그년을 유명하게 만들었어, 제기랄, 내가 그년을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 pp.48-49
남성이 디자인을 주도한다는 사실로 너무나 많은 삶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예전에는 왜 사무실은 항상 추운 걸까 궁금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제 피부가 특별히 얇은 편인가요? 물론 그렇지 않다. 대다수 사무용 건물은 몸무게가 7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40세 남성의 평균 신진대사율, 즉 신체가 열을 생성하는 속도를 기준으로 이상적인 실내 온도를 계산하는 공식을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신진대사율은 여성보다 높다. 따라서 이 구닥다리 공식 때문에 양복이나 긴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은 쾌적하지만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오들오들할 정도로 추운 사무실 온도가 산출된다. 낮은 사무실 온도 때문에 소름 돋는 게 여성들이 하는 가장 큰 걱정거리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스웨터를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2011년 한 연구를 통해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주로 남성의 신체에 맞게 설계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말인즉 교통사고 발생시 안전벨트를 착용한 여성이 부상당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47퍼센트나 높다는 의미다. --- p.66
수십 년 전 터퍼가 그랬듯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 대부분의 남성들은 공통적으로 성별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정치적 행보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남성 지배 판도를 바꾼다거나, 선조들의 차별을 속죄한다거나,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식의 거창한 목표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성평등을 그저 비즈니스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았다. 체육 수업에 빗대 이 문제를 설명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배구팀 주장이라면 방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선발하고 싶을 것이다. 여러분은 방에 모인 인원 가운데 절반 중에서만 선수를 고를 수 있는 반면 상대팀 주장은 모든 사람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당신이 이길 턱이 없다. 승리를 원하는가? 이용할 만한 모든 인재 중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내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전체 인원 중 절반을 제외해버리면 승리는 요원해진다. --- pp.82-83
포크는 하기스, 크리넥스, 코텍스와 같은 소매 브랜드를 보유한 제조업체 킴벌리클라크의 최고경영자다. 어느 날, 중역 회의에서 포크와 코텍스 사업부를 운영하는 남성 임원들이 탐폰 판매 전략에 대해 논의를 했다. 회의를 마친 후 어떤 임원이 조용히 다가와서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여성의 탐폰 전략 프레젠테이션을 들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사무실로 돌아와 기업 조직도를 살핀 포크는 자사의 소비자층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고위직 중 81퍼센트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탐폰 광고에 활짝 웃는 여성이 나와 몸에 딱 달라붙는 흰색 바지를 입고 빙글빙글 도는 걸까 궁금했다면 이제 그 이유를 깨달았을 것이다. 실제로 생리중인 여성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 p.89
한 연구에 따르면, 서른두 살 무렵에 남녀 격차가 확연하게 벌어지는데, 이 시기에 여성과 견줄 때 훨씬 많은 수의 남성이 관리직으로 승진한다. 미국여성법센터가 인구조사국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48년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41만 8800달러를 덜 번다. 흑인 여성의 경우 이 차이는 100만 달러로 벌어지며 라틴계 여성이라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러한 임금 격차는 줄어들 기미도 없을뿐더러 2015년에는 오히려 더 벌어지기까지 했다. 현재 같은 추세라면 여성이 남성과 임금이 같아지려면 무려 117년이 필요하다. 임금 격차는 다른 유형의 편견과 마찬가지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남성 직원이 더 나이가 많으니까, 아니면 연봉이 더 높은 다른 회사에서 왔으니까, 더 잠재력이 높으니까 등등 다른 요인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남성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도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격차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를 좁힐 수 있다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눈에 보이지를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 pp.227-228
워킹맘에 대한 담론은 주로 갓난쟁이나 어린아이를 둔 엄마에게 초점을 맞춘다. 엄마의 출산 휴가, 아빠의 육아 휴가,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에 주안점을 둔다. 물론 이는 모두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러나 육아를 어느 정도 마친 여성, 즉 성장한 아이를 둔 엄마에게는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중 일부는 이미 일터를 떠난 지 수년, 심지어 수십 년이나 되었으며 필사적으로 일선에 복귀하고 싶어한다. 계속 일은 해왔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린 동안에는 근무 시간을 줄이고 ‘엄마들을 위한 일자리’로 불리는 단순직에 만족했던 여성들 역시 다시 한번 도약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제부터 바로 이러한 경력 단절 여성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이들은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거나 정체된 커리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어한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갓 복귀한 젊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몇 년 동안 일을 쉬었지만 다양한 재능과 지혜, 다시 일선에 뛰어들고자 하는 야심을 갖춘 나이 지긋하고 경험 많은 여성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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