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날개가 하나뿐인데 어떻게 날 수가 있어요? 나는 지금 날개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날 수가 없잖아요?'
'엄마, 기다림이 뭐예요?'
'엄마, 사랑을, 어떻게 하죠?'
지금 나는 한쪽 날개만으로도 마음껏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나무들이 참되게 사는 길이다. 넌 참된 삶을 살기 위해 잠 못 이루며 고민하던 밤이 있었잖니.'
--- p.22-27 (비익조), p.73, (어린 왕벗나무 중에서)
어느 시인의 방에 사는 파리 한 마리가 고요히 유리창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 밖엔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낙엽이 지고 있었습니다.
지는 낙엽을 보자 파리의 마음은 퍽 쓸쓸했습니다. 이제 낙엽이 다 지고 겨울이 오면 곧 죽음이 찾아올 것이었습니다. 파리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일 뿐입니다. 물론 봄이 오면 새로운 삶을 사는 파리들이 태어나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파리는 어떻게 하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지나면서부터 슬슬 느껴지는 추위도 잘 견디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입동이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중략)
겨울이 오기 전에 파리는 이제 남은 삶을 후회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볼수록 그동안 후회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육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육체적 쾌락에 탐닉한 일도 후회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친구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일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배고픈 친구들의 먹거리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먹은 일이 가장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었습니다. 음식 생각을 해서 그런지 겨울이 오기 전에 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다면 정말 후회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지금 생각해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p.106-107
'아들아, 중요한 것은 사랑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게 아니야. 사랑을 하다 보면 자연이 원했던 삶이 이루어지는 거야.'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나머지 하나의 날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아,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해라. 사랑을 잃으면 우리는 다시 날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사랑해라.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줄 생각만 해라. 그러면 자연히 사랑을 받게 되고, 우리는 영원히 나머지 한쪽 날개를 얻게 된다.'
--- p.
비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산에 물을 뿌렸으나 산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강가에 어린 제비붓꽃이 막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였다. 갑자기 날이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는 처음에 봄비답게 부슬부슬 내렸으나 곧 여름 장대비처럼 거세게 쏟아졌다. 산불이 꺼지고 강물은 불어났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빗속을 뛰어다녔다. 불은 참담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쏟아지는 빗방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불은 마지막 남은 불씨 하나를 가슴에 품고 강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때 물이 불을 힘껏 껴안으면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넌 이제 나와 하나가 된거야. 난 널 사랑해.'
--- pp.48-49
버려지고 잊혀진 자의 가슴은 무척 아팠습니다. 항아리가 된 내가 그 무엇을 위해 소중하게 쓰여지는 존재가 될 줄 알았으나, 나는 버려진 항아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면 빗물이 고였습니다. 빗물에 구름이 잠깐 머물다가 지나갔습니다. 가끔 가랑잎이 찾아와 맴돌 때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이따금 별빛들이 찾아와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만일 그들마저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다.
--- p.14
돌의 마음은 아무 말 없이 한참동안 소년을 쳐다보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년아, 네가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 마음속에 있는것을 네가 드러낸다고 생각해라'
돌의 마음은 그말을 하고 나서 얼른 달빛속으로 숨어버렸다. 소년은 푸른 달빛속으로 사라진 돌의 마음을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돌의 마음이 한 말을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년 자신이 돌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의 마음속에 있는 형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 pp.97-98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 그삶의 꿈은 이루어 진다는....
--- p.13-20
그러나 그것은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너무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종소리가 내 몸안에 가득 들어왔다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토하듯 내 몸을 한바퀴 휘돌아나감으로써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박이 세상의 모든 바위 위에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갈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이나 실비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는 이어지는가 싶으면 끝나고,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내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 착각에 몸을 떨었습니다.
--- p.19---항아리 중에서
그러나 나는 뜨거운 가마 밖으로 빠져나온 것만 해도 기뻤습니다. 처음에 가마 속에 들어갔을때 불타 죽는 줄만 알았지, 내가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가 아래위가 좁고 허리가 두둑한 항아리로 태어났으니 그얼마나 스스로 대견스럽고 기쁘던지요.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기쁨일 뿐 젊은이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로 뒷간 마당가에 방치되었습니다. 나의 존재는 곧 잊혀졌습니다. 버려지고 잊혀진 자의 가슴은 무척 아팠습니다.항아리가 된 내가 그무엇을 위해..
--- p.14
고요히 산사에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요즘 나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범종의 음관 역활을 함으로써 보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내 존재의 의미이자 가치였습니다.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