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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연인들

사랑의 기초 연인들

: A Couple’s Story

[ 양장 ]
정이현 | | 2012년 05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30건
정가
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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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10g | 128*188*20mm
ISBN13 9788954618182
ISBN10 895461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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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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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질문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모든 게 멈춰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예감 탓이었다. 동그랗게 자른 여자친구의 새끼손톱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다정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 남자아이가 갑자기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먼지 가루로 우수수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첫사랑이 아닌 사랑들에서였다면 결코 견디지 못할 불안이었다. ---「최초의 타이타닉」p.63

만 스물일곱의 민아는 1번의 자리에 오랫동안 첫사랑이라고 의심 없이 믿어온 이름 대신 빈 괄호를 그려넣는다. 비어 있는 그 여백을 검지의 지문으로 문질러본다. 무언가 아련한 향기를 머금은 실한 시절이 봉합된 기분이다. 나쁘지 않다. 2번부터 차례대로 그녀는 헤어진 연인의 이름들을써본다. 그녀의 펜이 4번에서 멈춘다. 아직은 편치 않은 이름이 거기 있다. ---「당신과는 다른 이야기」pp.74~75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급하게 몰아닥친 태풍은 어느새 그쳤고, 그 후에는 폭풍우가 쓸고 간 해변을 서서히 수습해가야 한다. ---「당신과는 다른 이야기」p.78

준호가 가만히 민아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잡은 채 밤길을 걸었다. 누가 왼손이고 누가 오른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별은 높이 반짝이고 봄꽃들이 뿜어내는 향내는 아스라했다. 귓가에 종소리가 잘랑거리는 밤, 저 우주 만물 사이에 작동하는 오묘한 섭리 앞에 무릎 꿇고 고해성사를 바치고 싶어지는 밤, 봄밤이었다. ---「기적의 비용」p.111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떠 뒷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SBS의 「동물농장」과 MBC의 「서프라이즈」를 연달아 보고 아침 겸 점심으로 짜파게티 두 개를 끓여 냄비 째 먹는 생활이 가끔은 그리웠다. 그것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마음과는 명백히 별개의 문제였다. ---「시외버스 터미널」p.138

그 밤, 민아는 오래 울었다. 울먹이면서 어떤 공식 문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별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남은 생 동안 그녀 역시 여러 이별들 앞에 놓일 것이고, 맞서거나 순응하거나 속죄할 것이고, 그 순간들 사이에서 움직이며 살아갈 것이다. 단단한 바위틈을 뚫고 샘물이 고이듯 비밀스러운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날의 사랑은」p.173

그날 나란히 걸었던 네 개의 발이 여기 남아 있다. 빠닥빠닥한 종이 한 장으로. 잠시 멈춰 선 네 개의 발들. 앞코가 동그란 분홍 플랫슈즈는 그녀 것이고, 흰색 매듭을 묶은 검정색 나이키 운동화는 그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신발들은 비슷하다. 순간들은 희미하고 둥그런 원을 그리며 천천히 소멸해간다. ---「나란히 놓였던 발」p.177

그들의 사랑이 지금 고갈되어가고 있다 해서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비극적 파국에 이르렀다는 뜻도 아니다. 이곳은 보기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세계였다. 치정 때문에 죽고 죽이는 고대 희랍식 드라마는 자주 일어나지 않으며, 드라마 퀸이 되기를 열망한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그런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착륙」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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