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섭은 뿔이었다. 그림자에게 뿔은 나무와 같아 보이지만 과일은 달리지 않았다.
그림자는 뿔을 나무처럼 생각하고 동경했다. --- 본문 중에서
처음 정원섭 목사님을 만나러 갔을 때, 몇 마디를 나눈 그가 나에게 던진 한마디는 이거였다.
“너무 물러, 법정 얘기는 못 쓰겠어. 내 얘기나 쓰게.”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웠던 과정을 취재하러 갔던 나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국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넋이 나가 있었다.
도무지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 남자의 인생을 관통해가며 지나가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 문신 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 목격했고, 이미 사실 관계를 따지며 법정에서 다투는 그런 얘기는 관심에서조차 멀어졌다.
며칠 흥분해서 얘기를 곱씹었지만, 결국 며칠 뒤 나는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거대한 주물의 양은 감히 어린 조무래기가 흙장난을 하며 쪼물딱거릴 만한 분량의 재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이후로 나는 재심이 개시되어도 다시 무죄 확정을 위해 싸우는 늙은 한 남자의 피나는 결투를 멀리서 죄인이 된 것처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죄가 확정되던 날, 정원섭 목사님은 선물로 이 이야기를 나에게 안겼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목사님은 얘기했다.
“임작가, 이 얘기를 써. 나는 자네가 쓴 내 얘기를 듣고 싶네.”
정원섭 목사님은 그후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 이후 이야기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 이 거대한 분량의 얘기를 담아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한 남자의 가슴에 남은 절절한 사랑 얘기를 담기로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나갔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써가면서 나는 한 개인의 삶이 폭력과 권위 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하지만 동시에, 40여년 동안 진실을 찾아 묵묵히 순례자처럼 걸어온 그의 인생이 결국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원섭 목사님은 2011년 11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구속돼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정의란 혹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란 것이 결코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처절한 희생을 통해 숭고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진정한 영웅이었다.
비바람 치고 짐승에 뜯기던 외로운 시간을 걸어 온 그에게 이 인생의 기록을 바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1972년, 춘천 역전파출소 소장 딸 강간 살인 사건으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2개월을 복역하고 가석방으로 나와 재심을 청구한 나에게 어느 기자가 질문했다.
“형기도 다 마쳤는데, 왜 재심을 청구하느냐?”고 말이다.
그때 당시는 시국 사건이나 사상범도 아니고, 일반 형사 사건으로 재심을 청구한다는 것은 절차상 상식으로도 불가능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에 난 차분히 대답을 했다.
“재판은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곡되고 굴절된 진실을 찾아내서 나를 가해한 사람들을 명예롭게 용서하려고 모두가 안 된다, 어렵다고 말하는 재심을 청구한 것”이라고 말이다.
2008년 나의 제2차 재심 청구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무죄가 선고되자 세상의 각 신문과 방송은 마치 흉악한 강간 살인범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일제히 ‘이례적’이라느니 ‘대한미국 헌정사상 초유’라는 등 표현을 써가며 부정적 기사를 쏟아내 결국 검사의 항소를 부추겼다. 나는 법은 잘 모르지만 검사의 이런 이유 없는 항소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진실은 아무리 땅에 묻고 짓밟아도 절대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끝까지 굳게 믿고 기다렸다.
마침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었다.
소설 『뿔』은 사법부의 잘못된 시스템과 수사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하게 바로잡아주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순간에 강간 살인범이 될 수 있는 이 사회와 제도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