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딴 애들을 박살내주고 싶어요.”
……복수인가. 뭐, 그렇겠지.
“그리고, 으스대고 싶어요! 흥, 나는 너를 넘어섰어! 하고 말하면서 말이에요. 가능하면 저한테 다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게 이상적이겠네요. 뭐랄까, 빌어먹을~ 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요.”
으스-- 어, 뭐?
“잠깐만. 그게 네 나름의 복수야?”
“아뇨~. 그냥 취미 같은 거예요. 저는 옛날부터 자이언트 킬링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다양한 경기에 참가해서, 무명인 상태로 대활약을 하는-- 예전 세계에서는 제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요즘 들어 욕구불만이었어요. 그러니 이 세계에서의 이 상황은…… 정말 이상적이에요. 아, 그래도 치나츠는 예외예요. 치나츠는 제 단짝친구인데다, 끝까지 저를 감싸줬거든요. 현재 목표는 저를 가장 비웃어댔던 아키라 일파에요. 그 녀석들을 제대로 비웃어주고 싶어요!” --- p.31
하루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컴뱃 로브를 반쯤 걸치다 만 상태인 하루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던 것이다.
“이 옷, 어떻게 입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건 알겠어. 알겠는데…… 너는 좀 수치심이라는 걸 가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사부님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러지 않는다고요!”
너는 왜 자신만만한 투로 그딴 소리를 늘어놓는 거냐고. 아무리 내 취향과 정반대라고 해도, 너는 일단 고등학생이잖아. 누구한테나 실수라는 걸 할 때가 있단 말이다. 나도 옛날에 의도치 않게 실수를 범한 적이……. 아, 지금은 그런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지!
“하루, 부탁이니까 나한테도 함부로 속살을 보여주지 마. 오늘 마을에서 들었던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그 녀석들은 진짜로 소문내는 걸 좋아하니깐,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라도 하면 진짜로 난리날 수도 있어.” --- p.90
“예! 아, 저희는 습격자예요! 그러니까 잘 부탁드려요!”
““……뭐?””
귀여운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느닷없이 그렇게 말한다면, 다들 얼이 나갈 것이다. 소녀로서는 형식미를 지킬 겸 그런 선언을 한 것이지만, 그 덕분에 상대방에게 빈틈이 생겼다. 뭐, 그녀는 그 어떤 일에도 평생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으니 상대가 빈틈을 보였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었다.
습격 전의 인사를 나눈 순간, 보초의 복부에는 죽음을 선사하는 각렬한 일격이 꽂혔다. 복부에 꽂힌 손바닥은 그대로 뼈를 부쉈고, 슬로 모션으로 본다면 복부 한가운데까지 박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보초 중 한 명은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날아가더니, 뒤편에 있던 저택 문에 내동댕이쳐졌다.
--콰직!
저택 문은 그 인간 탄환에 의해 박살이 났고,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남아있던 보초 또한 멍청했다. 튕겨져 날아간 자를 쳐다보고 만 것이다.
소녀는 그 틈에 보초의 품속으로 파고들더니, 다음 공격을 날렸다. 그 보초의 턱에 어퍼컷이 꽂힌 것이다. 이 일격은 상대의 목뼈를 박살내더니, 그대로 몸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게 할 정도의 위력을 선보였다. 보초의 생기를 잃은 눈동자에 감시대 위에 있는 자의 모습이 비쳤다. 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던 시체 한 구가 지면을 나뒹굴었다. --- p.213
“어험! 저기…… 나도 제자를, 들였어.”
“……뭐?”
제자? 넬이, 제자를……?!
“열이라도 있어?”
“내가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이상한 소리를 했어?”
내가 넬의 이마에 손을 대며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저건 짜증이 살짝 치솟았을 때 짓는 표정이다. 정예 중의 정예인 기사들도 자기들의 단장인 넬의 저 표정을 보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하지만, 아니, 저기 말이야.
“너는 육성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잖아? 부하인 기사 육성도 방임주의고, 하루 때도 거절했다고 캐논한테서 들었다고.”
“그러는 데리스도 마찬가지 아니었어? 흥미가 생기면 열중하는 버릇이 또 튀어나온 거지?”
“으, 그건 그렇지만…….”
“나도 이번에는 같은 증상에 걸린 것 같아. 얼마 전에 하루나한테 버금갈 정도로 재미있는 애를 발견했거든. 아마 두 사람은 멋진 라이벌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해.”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