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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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72g | 153*224*30mm |
ISBN13 | 9788936472153 |
ISBN10 | 8936472151 |
발행일 | 2012년 0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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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72g | 153*224*30mm |
ISBN13 | 9788936472153 |
ISBN10 | 8936472151 |
"세상에는 내가 죄의식을 느끼는 방탕한 행위들을 오히려 떠벌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 때문에 그런 행위를 거의 병적이라 할 정도의 수치심을 가지고 보았고 또 숨겨 왔다. …… 내가 지금의 이 모습이 된 것은 특별한 타락 때문이라기보다 이처럼 높은 지위를 열망하는 나의 본성 때문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지킬 박사와 하이드」중 p123, 더클래식, 2014.
더 이상 원할 것이 없을만큼의 명예와 부를 지니고 있었던 지킬 박사는, 선천적으로 향략에 쉽게 빠지는 기질의 소유자였었습니다. 그러나 ---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부와 명예, 거기에 더해 ('높은 지위를 열망하는'이라는)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라 보는 것이 합당할) 사회적 본성/욕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선천적인) 욕구를 숨긴 채 살아갈 것을 요구했었죠. 그러나!
"나는 무미건조한 학문 생활의 지겨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가끔씩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쾌락을 즐긴다는 것은 아주 관대하게 봐도 점잖지 못한 짓이었다. … (하지만) 한 잔의 약을 마시기만 하면 나는 즉시 유명한 교수의 몸에서 벗어나 두꺼운 망토를 껴입듯이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바뀔 수 있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위의 책 pp131~132.
자신의 타고난 (혹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쾌락에의) 욕망을 (숨길 수는 있었으나) 끝내 버릴/지워낼 수는 없었던 지킬 박사는 결국 '하이드'라는 또 다른 자신을 탄생시킴으로 그 욕망을, 타인의 형체로 맘껏 표현하게 됩니다.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그 뿐만 아니라,
지킬 박사가 고민했었던 인간 본능/본성의 발현을 이야기하고 있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투명 인간」속 주인공이 투명 인간으로 변신하자마자 가졌던 감정 또한, 예의 환희 그 자체였었죠.
"나는 … 불가시성(不可視性)이 인간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 - 비밀, 힘, 자유를 상상했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점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p154)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고, 그것의 놀라운 이점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을 뿐이었지. 이젠 아무리 엉뚱하고 놀라운 일을 저질러도 벌을 받은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내 머리는 벌써 온갖 터무니없는 짓을 할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네."(p171)
- 허버트 조지 웰스,「투명 인간」중, 열린책들, 2014.
자, 그렇다면 --- 위 두 소설의 결말은 어떠했을까요?
"내 기분은 10분 전에 힘차게 밖으로 나왔을 때와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지. 이 불가시성이란 정말! 나는 오로지 이 궁지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네."
- 허버트 조지 웰스, 위의 책 p174.
주인공이 결국 광기의 살인자/지배자가 되어 버린다는「투명 인간」의 결론은, 예의 지킬 박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지킬 박사는 자살로 그의 생을 끝맺음 하지요. 그저, 본인의 본능에 따르고자 했었을 따름인 두 주인공은 왜 그렇게 불행한 결말을 맞는 것으로 그려졌던 것일까요?
"수많은 금지의 규범과 그보다 더 많은 강제 규범들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 규범들의 공통점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규범히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불온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자꾸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하면 대답은 점점 궁색해지고 규범은 힘을 잃기 때문이다."
- 박현희,「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중 p4, 뜨인돌, 2011.
체제의 지배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세뇌'로서의 교육을 그 이유(중 하나)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위 두 소설이 쓰여진 19세기 말 영국의 체제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관제적 장치로서 위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할 수도 있겠고, 혹은 두 작가 스스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알아서 관제적으로) 생각했었을 수도 있겠는, 어찌되었든 --- '보아라, 본능이 하고 싶은대로 하다보면 결국 남는 것은 불행한 결말 뿐이다'라는 훈계, 다시 말해 사회/권력이 상정해 준 '통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잔혹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란 협박1만큼은 너무도 명확하지요.
"가난하고 외로운 소녀는 분홍신2을 신고 싶어 한다.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 소녀의 유일한 낙이다. 분홍신에 대한 소녀의 꿈은 소녀가 숨 막히는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가난한 그 소녀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뜻한 저녁 식사와 포근한 침대, 추위를 막아줄 외투, 포근히 어루만져 줄 애정 어린 손길 …. 그런데도 소녀는 분홍신만을 원한다. 드디어 소녀는 분홍신을 갖게 되었다.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최고의 행복을 맛보면서 춤을 추는 소녀 …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계속해서 끝도 없이 춤을 춘다. 분홍신은 절대로 벗겨지지 않고 신을 신고 있는 동안은 춤을 추어야만 한다. 결국 소녀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춘다."
- 박현희, 위의 책 pp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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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잘 통제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학교, 직장, 가정,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방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어두고 반복하여 자물쇠를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하도 많은 자물쇠를 채우다보니 어느 순간 그 방의 존재 자체를 아예 잊어버립니다.(p5)
그것이, 사회 규범에 순응한 결과인지 혹은 세뇌의 결과인지에 상관 없이 저자 김두식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하고 싶었던 화두는 --- 그렇게 사라져 버린/사라지게 한 개인적 욕망의 발현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라는 것, 그리고 그건/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울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슬픈 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감격하지 않아서였다. 감격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격할 수 없게 되어서였다."
- 목수정,「야성의 사랑학」중 p303, 웅진지식하우스, 2010.
더욱 행복해졌다가 아닌 --- '행복'이 무엇인지조차까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삶을 낳게 되었다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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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온 세계에서는 타인들의 존재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것은 우리를 규범 속에 묶어둔다. … 우리의 동류, 다른 인간들은 세계의 현실을 확인해준다. 도시에서는 눈을 감아도 현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감고 있더라도 타인이 현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실벵 테송,「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중 pp108~109, 까치, 2012.
다니엘 디포의「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에 대한 저의 견해는 너무도 안좋습니다. 저의 신앙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해당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기독교인'은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기독교인의 모습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죠. 해당 작품을 약간 비틀어서/응용하여 써낸「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대한 저의 감상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719년에 발표되었던) 원작「로빈슨 크루소」가 '타인의 부재(不在)로 인한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었었다면, (1967년에) 미셀 투르니에는「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통해 그 정반대인 '타인의 부재로 인한 자유'를 (사뭇 극단적인 모습을 포함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다라는 점에서만큼만은, 그 지나온 세월만큼의 ('진일보한'이란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달라진/지긴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었다라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주위를 뒤덮는 대홍수에 보잘것없지만 자신의 몫을 보태는 것이 재미있다고 여기면서 오줌을 누었다. 그는 문득 휴가를 얻은 기분이 되어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기쁨을 가누지 못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덩실거리다가,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몰아치는 빗물을 뚫고 달려가서 나무들 밑으로 몸을 피했다.(p37) …… 지난밤, 내가 반쯤 잠든 것 같은 상태로 웅크리고 있을 때 나의 정액이 흘러나왔다.(p139) …… 구멍 속으로 그의 성기가 들어갔다. 어떤 행복한 혼수상태가 그의 전신을 굳어지게 했다.(p148) …… 그는 여러 달 동안 킬레나무와 행복한 관계를 맺었다.(p149)"
- 미셀 투르니에,「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중, 민음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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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회적 삶은 억압과 함께 시작된다.(p305) … 헤어날 수 없이 겹겹이 둘러쳐진 통제의 틀 속제 자신을 방치하며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 날 통제할 삶 자체를 잃게 된다.(p33) … 당신이 받은 억압을 배설하라. 그렇지 않으면 억압이 당신을 배설해 낼 터이니.(p306)"
- 목수정,「야성의 사랑학」중, 웅진지식하우스, 2010.
저자의 전작「불편해도 괜찮아」가 선사해주었던,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같은 건, 이 책에는 담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뭘 딱히 새롭게 배웠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었었습니다만, 뭔가 적어낼만한 교훈스러운 것 하나를 굳이 끄집어 내야 한다면 --- 법무부 장관 스스로가 생각하는 현 상황의 심각함이 어떠한지와 관계 없이, 그의 과거가 보여준 대한민국 권력층3의 실체란 것이 얼마나 한심한 것이지, 자칭 '니네 편'의 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비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성취가 자기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재벌 2세도 그 이후 기업이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자기 성과물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을 '운'이라고 말하면서도, 거기 투자했던 노력만큼은 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모든 성취도 어떤 경계선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중산층의 재산적 여유가 확보해준 시간이 공부할 기회를 주었고, 중산층문화에서 비롯된 규범의식이 매사에 '선'을 넘지 않는 제 인격을 형성했으며, 배우자나 친구를 사귀는 범위도 그 경계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친구들도 저도 그런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곤란하겠지만, 친구 부모님들의 소득수준에 따라 한 줄로 세워본다면 그 자녀인 우리 세대의 순위도 거기서 크게 변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태어난 공간적 위치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죠.(p193)
이 글을 썼었던 2012년의 김두식 교수는, 2019년 작금의 상황에 대해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여, --- "범죄가 되려면 반드시 유해한 행위여야 하지만, 유해한 행위라고 해서 모두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해성은 범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닌 거죠"(p256)이란 단문을 내세워, 자칭 '사회주의자' 이자 타칭 '좌파'라 불리우는 한 인물을 변호해주는 것은 아닐지, 부디 (이젠 제게 완전한 경멸의 대상으로만 각인되어버린 유시민과 같은 그러한) 되도 않는 억지가 이 분의 입/손에서 나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란 바람(願)을 가져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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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가 마음 속으로 거부한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에 의한 인간의 억압이었다."
- 부알렘 상살,「2084 : 세상의 종말」중 p100, 아르테, 2017.
A라는 책을 읽고 쓴 감상문에, 이처럼 A로부터의 인용문을 배제하고 쓴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책의 내용이 별 것 없었기 때문이 아닌, 그간 읽었었던 책들이 제게 가르쳐주었던 교훈들을, 맘좋은 어떤 아저씨가 상당히 친절히, 뭐 그런 톤으로 한데 모아 써놓은 책이란 느낌만이 남았기 때문이지요. 지독히도 재미없게 읽어냈었던,「1984」의 모작(模作)인「2084 : 세상의 종말」에서 그나마 건져냈었던 한 문장과 동일한 의미인 다음 구절이 아마도 --- 이 책, 전체를 아우러낼 수 있는 총체적 결론이 아닐까 싶네요.
규범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입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가 규범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p268)
적어도 --- 책을 읽는 행위에 있어 '헛수고'란 없는 건가 봅니다. 지나고보니, 그렇게나 잼없게/형편없다 생각하며 읽었었던 책들로부터도 이처럼 --- 얻어내는 것이 있는 걸 보니 말이죠. ^^;;
※ 저자의, 읽어 본 다른 책 :「불편해도 괜찮아」
※ 본문에 인용한 책들의 감상문 :「지킬박사와 하이드」·「투명 인간」·「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야성의 사랑학」·「희망의 발견」
「로빈슨 크루소」·「방드르디, 태평양의 끝」·「2084 : 세상의 끝」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어
'욕망' 과 '관계' 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상위권에 나온 책이 바로 "욕망해도 괜찮아" 이다.
심각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금방 읽혔다.
재밌었던 이유는
저자도 콩테가 아닌 꼰대이고, 나도 꼰대이기 때문이다.
성밖을 넘지 못하는 자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것을 재기롭게 말해주는 저자의 글은
같은 부류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끼니 걱정은 하지 않는 꼰대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재미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