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것, 줄 것 다 적어주소.”
“받을 것…?”
“당신 떠나고 나면 내 맘이 어떤지 알아요? 불안해서 잠이 안 와요.”
“잠이…?”
짧게 반문하는 것 말고는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와야 잠이 오지. 내가 얼마나 맘 졸이는지 말로는 다 못해. 정말 못해.”
“알았소.”
아내는 굳이 가려면 유서라도 쓰고 떠나라는 얘기다. 내가 유서라도 쓴다고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보다는 남편 걱정이 앞서는 아내의 가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꼭 떠나야 하는가 재삼, 재사 반문했다. 그런데 어찌하리 다들 이것도 병이라는데, 중독이라는데….
아내의 말이 하루 종일 귓전을 맴돌았다. '가지 말까' 하는 조그만 반란도 마음속에 일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으면 기나긴 겨울을 견디어낼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가야겠는데 또 다른 나의 마음도 도닥거려주어야 하니 어쩌면 좋을까? 궁리 끝에 타협안을 내놓았다. 춥고, 높은 히말라야 대신 따뜻하고, 평원이 드넓은 아프리카로 여행지를 바꾼 것이다. 아프리카가 히말라야보다는 아내의 마음을 덜 졸이게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프리카는 아내가 이미 경험한 대륙이 아닌가? 6년 전이던가? 아내와 함께 이집트 카이로로 입국해 아스완, 아부심벨, 룩소르, 다합, 시나이 산을 배낭을 벗 삼아 용감하게 다녔는데 다합에서 즐거웠던 스킨스쿠버와 시나이 산의 추위는 아직도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즐거운 기억들이 아내의 마음을 다소나마 보듬어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이렇게 해서 내 여행 계획의 마지막 순위인 아프리카가 급부상하여 우선순위를 차지하였으니 인생으로 치면 역전 드라마가 아닐까?
아내와 어색하게 작별하는 순간을 손자 준형이가 귀엽게 마무리해주었다. 인천공항행 버스정거장에 내린 내게 손자가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할아버지!” 하며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대는 손자가 착잡한 분위기에 주눅 들어 있던 내게는 곧 구세주이고 돌파구였다. 어느 누구의 작별 인사보다도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참이나 식지 않는 뿌듯한 흥분을 느끼면서 나직이 말했다.
“준형아, 고맙다! 네가 벌써 그렇게 컸구나!
--- ‘유서 쓰고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 중에서
뜻밖에 동양인 손님을 태운 자동차는 신이 났는지 '부르릉~' 하며 기합을 넣더니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시원스레 달리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가 제 세상인 양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해변 도로를 한참이나 달리다가 길 옆 전망 포인트에서 차를 세웠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해안에는 넓게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세일링하는 청년들이 여럿 보였다. 이곳은 바람이 좋은 바다 같았다. 알록달록한 돛을 달고 제 키만 한 파도를 뛰어넘는 모습들이 경쾌하고 신나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마주쳐오는 파도를 타고 넘는 듯한 착각에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생각 속에 있는데 그들은 바닷속에 있으니 역시 젊음이란 좋은 것이었다. 세일링이 어찌 젊은이의 전유물이라고 할까마는 세상살이에 쫓겨서 별다른 취미, 특기를 익히지 못했으니 이렇게 저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역시 내 탓이었구나. 내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이구나. 친구 D군은 이 나이에도 자주 한강에 나가 돛배를 탄다고 했지 아마.
카이트에 매달린 보드를 타고 물살을 가르는 카이트보딩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람이 강해서 인지 높게 뜬 카이트를 따라 보드는 빠르게 바다 가운데로 가마득히 나갔다. ‘아니, 어쩌자고 자꾸 바닷속으로 나가나?’ 아스라이 검푸른 바다에서 점처럼 가물거리는 보드를 보며 내심 걱정이 앞섰다. 젊은이들이라 뒷생각 없이 바람 따라 열정 따라 바다로, 바다로 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보니 역시 높은 파도를 가르며 카이트보더들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변으로 되돌아왔다. 그저 재미만 가득 담아온 것 같았다.
--- ‘희망봉에서 부른 만세’ 중에서
얼리 버드.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자주 들었는데 그간 무심히 들어 넘겼다가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새삼 떠오른 단어였다. 밝고 상큼한 뉘앙스와 함께. 케이프타운에 와서는 대개 아침 6시경 저절로 잠이 깼다. 6시면 창문이 어느 정도 환해지고 달리는 자동차 소음도 차츰 커지는 시간이지만 왠지 얼리 버드가 된 느낌이었다. 하기야 룸메이트들은 대부분 8시가 넘어서야 슬슬 타월을 걸치고 샤워장으로 가는 데 비하면 대단한 얼리 버드인 셈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도 젊은 여행자의 특권일까? 밤늦은 시간인데도 호스텔 바는 음악 소리에 천장이 쩌렁쩌렁 울리고 와인 한잔, 맥주 한잔을 걸친 청춘 남녀들은 마냥 웃으며 떠들어댔다.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이 다가와서야 잠자리에 드는 이들이니 이른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 덕분에 나는 정말로 얼리 버드가 된 듯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나는 여행 중에는 주로 아침 시간에 전날 일들을 정리한다. 호스텔 베란다에 앉아 테이블마운틴을 올랐던 일을 찬찬히 되씹어보고 있는데 열여섯 살 수줍은 시골 처녀 눈길처럼 보드라운 아침 바람 한 자락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휴! 좋구나!”
산들바람 없어도 조용히 앉아 있기에는 충분히 시원한 남국의 아침인데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임금인들 무슨 소용이며 사장인들 무슨 소용이리요? 한 줌 바람만 있어도 부러울 게 없는데.
--- ‘도미토리의 얼리 버드’ 중에서